‹ 목록으로 실력 좀 숨겼을 뿐인데

2화

그날 밤, 나는 오래된 외장하드를 뒤졌다. 방 한구석, 이사 올 때 짐도 제대로 안 풀고 처박아둔 종이상자를 열자 먼지가 훅 끼쳤다. 콜록, 기침이 나왔다. 상자 밑바닥에서 손바닥만 한 외장하드 하나가 나왔다. 케이스 귀퉁이가 깨져 있었고, 스티커는 반쯤 벗겨져 글씨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게 아직 있었네.' 컴퓨터에 연결하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왜 떨리는지는 나도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폴더를 열자 파일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날짜별로 정리된 영상 파일들, 그 아래 붙은 제목들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인천항_던전_1층_공략', '중층_입구_탐사', '드디어_하층_진입!!!' 클릭 한 번이면 되는 일이었는데, 마우스 위에서 손가락이 몇 초나 굳어 있었다. 결국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지지직 흔들리다 곧 밝아졌다. 화질도 낮고, 조회수는 세 자리 수에 불과한 영상이었다. 화면 속에서 젊은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인천항 던전 하층 도전기입니다!" 목소리가 낯설었다. 지금보다 한 톤 높고, 말끝마다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카메라 앵글은 흔들렸고, 배경엔 던전 벽면의 이끼 낀 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말이 많았고, 웃음도 헤펐다. '던전 스트리머'라는 꿈을 품고 매주 새벽까지 편집을 했던 시절. 장비도 부실했고 구독자도 없었지만, 그때는 그게 다 즐거웠다. 영상 속에서 나는 몬스터의 위치를 짚어가며 신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쪽에서 소리가 들리죠? 저 방향에서 하나, 저 뒤쪽에서 또 하나. 이거 감으로 딱 잡히거든요." 카메라 옆에서 누군가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의 주인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다 사고가 있었다. 동료가 눈앞에서 몬스터에게 당했고, 나는 그 장면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화면이 흔들리고, 비명이 터지고, 카메라는 계속 돌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정지 버튼을 못 눌렀던 건지, 아니면 그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건지,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채팅창은 순식간에 조롱과 비난으로 가득 찼다. '저거 연출 아니야?', '관심종자 새끼 사람 죽어가는데 찍고 있네', '역겹다 진짜' 댓글 하나하나가 아직도 눈에 선명했다.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채팅창을 몇 번이나 다시 열어봤는지 모른다. 매번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손가락은 새로 고침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 사건 이후로 카메라를 껐다. 다시는 켜지 않았다. 그날부로 계정도 비공개로 돌렸고, 채널명도 지워버렸다. 그런데 영상은 어딘가에 남아 인터넷을 떠돌고 있었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 같은 것이었다. 영상을 끄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화면이 검게 꺼진 모니터에 내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왜 지금 이걸 다시 꺼내본 거지.' 손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숨을 몇 번이나 크게 들이쉬어야 했다. 답은 알고 있었다. 서은하의 방송을 본 순간부터였다. 그 애의 목소리, 그 애의 말투, 카메라 앵글을 잡는 방식까지— 어딘가 그때의 나와 겹쳐 보였다. '설마 저 애도 똑같은 함정에 빠지는 건 아니겠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그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다음 날, 오태식의 사무실 겸 컨테이너에 도현수가 찾아왔다. 금발로 올백을 넘긴 머리, 늘 헤벌쭘 웃는 표정. 국가던전관리청 구조대 소속이지만, 예전엔 내 밑에서 훈련받던 후배였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소리부터가 요란했다. "선배! 저 왔어요!" "왜 왔어." "아니, 그냥 보고 싶어서요. 요즘 잘나가신다고 소문났던데." 도현수는 넉살 좋게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와 오태식 옆에 털썩 앉았다. 낡은 철제 의자가 삐걱, 소리를 냈다. 오태식이 전자담배를 뻐끔거리며 도현수를 흘겨봤다. "넌 근무 시간에 여기서 뭐 하냐." "잠깐 짬났어요, 아저씨. 딱 십 분만." "십 분씩 몇 번을 오는 거야, 너." "에이, 그건 또 다른 얘기고요." 도현수는 아무렇지 않게 컨테이너 안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린 낡은 지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여기 인천항 던전 지도네. 아직도 이거 쓰세요? 요즘은 다 앱으로 보는데." "됐고, 왜 왔냐고." 도현수는 내 쪽을 보며 씩 웃었다. "선배, 그거 아세요? 요즘 서은하 방송 엄청 화제예요. 인천항 중층 탐사한다고." 또 그 이름이었다.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내가 어제까지 붙잡고 있던 그 감정을, 이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건드리고 있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에이, 선배도 예전에 방송 했었잖아요. 저 그거 몇 편 봤어요, 진짜." 순간 손끝이 차가워졌다. 어젯밤 외장하드를 만졌을 때와 똑같은 냉기가 손끝에서부터 올라왔다. "···그거 어디서 봤어." "인터넷에 아직 돌아다니던데요? 근데 왜 그만두셨어요? 되게 재밌었는데." 도현수는 아무 생각 없이 물었을 것이다. 그 눈빛에는 정말로 순수한 궁금증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질문이 가슴을 후벼팠다. "그만둘 만해서 그만둔 거야." "그래도 아깝잖아요. 선배 그때 몬스터 위치 잡는 감각이 진짜 미쳤었는데. 지금이랑 똑같아요." '미쳤었지, 그리고 그거 때문에 사람이 죽었지.' 머릿속에서 어젯밤 영상의 비명 소리가 다시 재생됐다. 나도 모르게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오태식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야, 그 얘기 그만해라. 태호 표정 봐라." 도현수는 그제야 눈치를 채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굳어 있었다. "아, 죄송해요 선배. 저는 그냥···" "괜찮아." 짧게 대답했지만 속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심장이 이상한 박자로 뛰고 있었고, 목 안쪽이 바짝 말라갔다. 도현수는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괜히 오태식의 책상 위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이건 뭐예요, 아저씨. 또 무슨 사건이에요?" "손대지 마, 인마." "아, 네네." 그렇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뒤, 도현수는 손목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저 진짜 가야겠다. 선배, 조심히 지내세요. 다음에 또 올게요." "안 와도 돼." "에이, 그런 말씀을." 도현수가 떠난 뒤, 컨테이너 안엔 정적이 내려앉았다. 전자담배 연기가 천천히 위로 퍼지고 있었다. 오태식이 조용히 물었다. "진짜 괜찮은 거야?" "네." "거짓말하는 거 다 보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괜히 창밖을 봤다. 오태식은 더 캐묻지 않고 서류를 정리했다. 서류 넘기는 소리만 컨테이너 안을 채웠다. "그나저나 방금 서울 본부에서 연락 왔어. 한서연이라고, 너 아는 사람이야?" "···네, 몇 번 일한 적 있어요." "중층 구조 건이래. 급하다고 하는데." 중층. 서은하가 방송하러 간다던 그 층. 가슴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반갑다기보다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먼저 왔다. 어젯밤 그 영상을 다시 꺼내본 것부터가,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한 전조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수락할 거야?" 오태식이 물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전자담배 연기가 컨테이너 안을 느리게 떠돌았고, 오태식의 시선이 내 얼굴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서류 뭉치를 정리하던 손도 잠시 멈춰 있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해야죠." 그 대답이 앞으로 얼마나 큰 소용돌이를 불러올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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