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방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마당에서 뛰어놀던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촐랑촐랑, 흙바닥을 밟는 발톱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강아지는 반년 전에 죽었어야 할 녀석이었다. 늙어서 자다가 조용히 숨을 거둔, 그래서 아무도 원망할 수 없었던 그런 죽음을 맞은 놈이었는데, 지금 저렇게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있으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죽었던 개가 살아 있다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사실 그게 제일 이상하긴 했지만—더 무서운 건 그 사실이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지금이 반년도 더 전의 시간이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채영이도...'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그 생각을 곧바로 눌러 삼켰다. 확인할 방법도 없는데 먼저 흥분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심장은 이미 제멋대로 뛰고 있었지만, 적어도 발걸음은 침착하게 옮기려 애썼다.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채 쪽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최대한 순서를 세워 상황을 정리했다. 첫째, 나는 동해에서 붉은 검에 찔려 죽었다. 그 감각은 아직도 명치 쪽에 남아 있는 듯했다. 둘째, 지금 나는 도성의 저택 마당에 서 있고, 죽은 강아지가 버젓이 살아 뛰어다니고 있으니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 게 분명하다. 셋째, 그렇다면 이 시간을 거슬러 온 이유와 방식을 알아야 한다. 넷째, 어쩌면 다섯째 여섯째까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떠오르는 게 없다. 간단한 계산식이었지만, 그 계산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답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죽었다가 살아났으면 적어도 안내서 한 장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회광반조(回光返照) — 죽음의 순간, 술자의 명(命)이 다한 자리에서 하루의 빛이 되돌아간다.]
그 문구가 눈앞에 떠오른 건 사랑채 앞뜰을 지나던 순간이었다. 마치 누군가 허공에 붓으로 써놓은 듯, 흐릿하게 빛나는 글자들이 시야 한 켠에 겹쳐 보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글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회광반조라니.' 신선술사들이 쓰는 술법 명칭 중에 그런 게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스승도, 도우들도, 심지어 저잣거리 잡배들이 술기운에 늘어놓는 허풍 속에서도 그런 이름은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문구는 마치 내 목숨 어딘가에 새겨져 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원래 알고 있던 것처럼 떠올랐다. 마치 죽는 순간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뜯겨나가듯 각인된 느낌이었다.
[남은 반조(返照)의 수: 알 수 없음.]
[다음 죽음이 도래할 때, 다시 한 번 시간이 되돌아갈 것인가는 확정되지 않음.]
...확정되지 않는다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뭐 이런 개사긴데. 죽으면 무조건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확정되지 않는다'니, 이건 마치 도박판에서 패를 하나 쥐어주면서 "이게 이길 패인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저 운이 좋아서 한 번 살아난 것뿐이지, 다음에도 이런 요행이 반복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곧 내가 다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요컨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등줄기에 흐르던 서늘함이 이제는 아예 오싹함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은 정확히 언제인가.' 나는 걸음을 옮기며 계산을 이어갔다. 강아지가 살아 있는 걸 보면 적어도 반년 전이었다. 그런데 반년 전이라면, 채영이도 아직 살아 있을 것이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심장이 다시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마당을 지나며 흘깃 올려다본 하늘은 이상하게도 청명했는데, 죽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동해의 흐린 하늘과는 전혀 다른 색이어서, 그 대비가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더 실감 나게 만들었다.
사랑채로 이어지는 회랑을 지날 때, 낯익은 시비 하나가 마주 오다가 나를 보고 흠칫 멈춰 섰다. "도련님, 어디 편찮으세요? 안색이..." 하고 묻는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는데, 나는 그 순간에야 내 표정이 얼마나 굳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아니, 괜찮다" 하고 대충 대답하며 지나쳤지만, 등 뒤에서 시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 죽었다 살아난 사람의 얼굴이 멀쩡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채영의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그대로 멈춰 섰다.
"오라버니는 참, 그렇게 서두르실 것 없어요" 하는 목소리였는데, 그것은 설아의 목소리였다. 채영이 아니라 설아였다. 나는 순간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문틈으로 방 안을 살폈다. 방 안에는 채영의 유품인 듯한 옷가지가 정리되어 있었고, 설아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옷을 접고 있었다. 옷감을 접는 손길이 유난히 정성스러웠는데, 그 정성스러움이 오히려 슬픔을 더 짙게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채영은 이미 죽었다는 것을. 내가 되돌아간 시점은 채영이 죽기 전이 아니라, 그녀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을.
모를 일이었다. 그것뿐이었다.
방 안에 감도는 냄새마저도 낯설었다. 향을 피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옅은 향 냄새가 옷가지에서 배어 나왔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아침인데도 이상하게 어두워 보였다. 나는 그 방 안의 정적을 깨는 게 미안할 정도로, 잠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설아야" 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리며 그녀를 불렀다. 설아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는데, 그 눈빛이 이전과 똑같이 차가웠다. 마치 이 방의 온도가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시선에는 어떤 온기도 섞여 있지 않았다. 나는 그 냉담함을 보며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이 회귀는 나를 채영이 죽기 전으로 돌려보낸 게 아니라, 정확히 동해로 출항하기 얼마 전, 채영을 잃은 슬픔과 냉기가 이 집 안에 여전히 감돌던 그 시절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오라버니" 하고 설아가 담담하게 물었지만, 나는 그 담담함 속에서 미묘한 균열을 읽어냈다. 손끝이 아주 살짝 떨리고 있었으니까. 옷을 접다 말고 무릎 위에 올려둔 그 손이,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꾸만 옷감의 주름을 눌러 펴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채영의 방이 그대로 있었다. 벽에 걸린 서화도, 서랍 위에 놓인 작은 경대도 예전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고, 동해 출항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 출항 전까지다.' 나는 그 생각에 이르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방금까지도 오싹함에 떨고 있던 마음이, 목표라는 게 생기니까 갑자기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다시 그 배에 오르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붉은 검을 든 그 형체를 피하거나, 최소한 그 정체를 미리 알아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니, 어쩌면 배에 오르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지만, 그것이 또 다른 파국을 부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 문제는 채영의 죽음과 그 붉은 검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었는데, 그 예감을 확인할 유일한 방법은 이 저택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파헤치는 것뿐이었다.
'채영의 방, 유품, 그리고 그날의 기록.'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나열해보았다. 채영이 죽던 정확한 날짜, 그날의 상황, 그리고 그것이 동해 출항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 모든 것을 알아내야 했다. 시간은 넉넉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회광반조라는 게 몇 번이나 더 허락될지 알 수 없는 마당에, 나는 이번 기회를 허투루 쓸 여유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나는 겨우 대답하며 방문을 닫았다. 등 뒤에서 설아의 시선이 오래도록 느껴졌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뭔가가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문을 닫고 회랑을 걸어 나오면서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채영이 죽은 날짜를 알아야 했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저택 안 누군가는 그 죽음의 진짜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마당을 가로질러 다시 걸어가는 동안, 방금 전까지 팔짝거리던 강아지가 이번에는 낮게 웅웅거리며 저택의 담벼락 너머를 향해 짖고 있었다. 그 방향은, 다름 아닌 후원, 채영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다던 별채가 있는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