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날 밤, 나는 자취방 침대에 누워 몇 시간째 스킬 창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스킬: 투시(유니크)] 반경 10미터 내 벽, 문, 바닥 너머의 구조물과 개체를 일시적으로 감지한다. 지속 시간 3초, 재사용 대기시간 없음.
설명은 이게 전부였다. 딱 두 줄. 사기 스킬이라기엔 너무 짧고, 그냥 지나가는 잡템 설명이라기엔 '유니크'라는 등급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스마트폰을 켰다. 던전배달 관련 위키를 검색창에 쳐넣고, '유니크 등급'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눌러봤다. 페이지는 로딩만 느리고 내용은 허무할 정도로 부실했다.
'전 세계 등록 탐험자 중 유니크 등급 스킬 보유자는 극히 드물다.'
그게 전부였다. 그 한 줄 밑으로는 광고 배너와, 누군가가 장난으로 써넣은 것 같은 '탐험자 A씨 목격담(신빙성 없음)'이라는 삭제된 링크 하나뿐이었다.
극히 드물다는 게, 도대체 몇 명을 말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백 명? 열 명? 설마 나 혼자?
······씨발,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스크롤을 위아래로 몇 번이나 반복했다. 손가락이 화면을 문지르는 소리만 방 안에 규칙적으로 울렸다. 새로 고침을 눌러도 결과는 똑같았다. 위키는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반신반의하는 채로 스킬을 다시 시험해보기로 했다. 벽을 향해 손을 뻗고 정신을 집중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숨을 참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이번엔 아예 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나는 미친놈처럼 벽 앞에 쭈그려 앉아 손바닥을 벽에 대고 있었다. 옆방에서 누가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면 분명 상태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그럼 아까 그건 뭐였는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고 튀어나왔다가, 곧 다시 정적 속으로 흡수됐다.
스킬이 마음대로 발동되는 게 아니라면, 특정 조건이 필요한 걸지도 몰랐다. 목숨이 위험한 극한 상황에서만 발동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조건이 있는 걸까? 확신할 수 없었다.
첫 번째 가설. 생명이 위협받을 때만 작동한다. 두 번째 가설. 특정 몬스터나 지형에서만 작동한다. 세 번째 가설.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는 제한이 있다. 나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아보다가, 결국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데이터가 없었다. 실험 대상이 나 혼자뿐이고, 그마저도 재현조차 안 됐다.
정말 우연일까?
답답한 마음에 나는 새벽별의 채널로 들어가 방송을 봤다. 마침 라이브 중이었다.
"여러분! 저 오늘 드디어 초보자 던전 클리어했어요!" 화면 속 새벽별이 방방 뛰며 좋아하고 있었다. 헬멧이 살짝 삐뚤어져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채팅창은 축하 메시지로 순식간에 도배됐다.
[시청자1] 축하해요!!!
[시청자2] 드디어!!! 3일 걸렸네 ㅋㅋㅋ
[시청자3] 새벽별 언니 화이팅
나는 그 밝음이 신기했다. 나 같으면 벌써 방송을 접었을 텐데. 저 사람은 3일 동안 초보자 던전 하나를 못 깨고도 계속 웃으면서 방송을 켰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나는 진지하게 궁금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채팅을 남겼다. '축하드려요. 저는 며칠째 슬라임한테도 지고 있는데 대단하시네요.'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채팅을 보내고 나서야, 이게 좀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우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몇 초 뒤, 새벽별이 채팅을 읽었다.
"어? 슬라임한테 지신다구요?" 그녀가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괜찮아요!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근데 힘내세요, 다들 처음엔 다 그래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다들 처음엔 다 그렇다는 그 흔한 위로가, 왜 나한테는 처음 듣는 말처럼 느껴졌을까.
방송을 보는 내내 나는 몇 번이나 채팅창을 다시 읽었다. 다들 처음엔 다 그래요. 다들 처음엔 다 그래요. 문장을 속으로 되뇌다 보니 목 뒤가 뜨거워졌다.
방송이 끝난 뒤, 나는 고민 끝에 새벽별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던전배달 플랫폼에는 방송 팔로워끼리 쪽지를 주고받는 기능이 있었다. 메시지 창을 열어놓고도 한참을 커서만 깜빡이게 두었다. 뭐라고 써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이도현] 안녕하세요. 아까 채팅 남겼던 사람입니다. 혹시 이상한 얘기 하나 해도 될까요?
보내고 나서 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이상한 얘기라니. 이렇게 시작하면 상대가 겁먹고 답을 안 할 수도 있는데.
하지만 답장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새벽별] 네! 뭔데요?
[이도현] 제가 며칠 전에 던전에서 죽을 뻔했는데, 벽 너머가 보이는 이상한 현상을 겪었어요. 스킬창에 유니크 스킬 '투시'가 생겼는데, 이게 정상인지 모르겠어서요.
[새벽별] ...네??
[새벽별] 유니크요??
[새벽별] 저 지금 검색해봤는데 그런 스킬 등록된 사례가 하나도 없는데요??
[이도현] 그러니까 이게 진짜인지 확신이 안 서서요.
[새벽별] 미친 이거 완전 대박 아니에요??
그녀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격렬했다. 느낌표가 세 개씩 붙은 문장이 연달아 화면에 떠올랐다. 나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상하게 든 감정 중 하나는 안도감이었다. 적어도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니까.
[새벽별] 저희 던전 같이 가보실래요? 제가 검증해드릴게요! 저 나름 초보자 던전은 좀 알아요!
[이도현] 감사한데... 제가 스펙이 진짜 최악이라서요. HP20, 공격력1이에요.
[새벽별] 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그게
[새벽별] 그거 거의 종이 아니에요??
[새벽별] 근데 그런 거 상관없어요! 투시만 있으면 싸움 안 해도 되잖아요!
그 말에 나는 멍해졌다. 맞다. 공격력이 1이든 0이든, 몬스터를 피해서 아이템만 챙기면 되는 거였다. 벽 너머가 보인다면, 함정과 몬스터의 위치를 미리 알고 회피하면 된다.
그동안 나는 왜 이 스킬을 저주처럼 취급했을까. 발동조차 마음대로 안 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킬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게 회피형 탐험자에게는 최적의 능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공포가 아니라 다른 감정이었다.
[새벽별] 내일 오전에 시간 되세요? 작은 균열에서 만나요!
[이도현] 네, 그럴게요.
[새벽별] 좋아요!! 저 완전 기대돼요 ㅋㅋㅋ 유니크 스킬 실물 처음 봐요
[새벽별] 참고로 저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는 편이니까 10시쯤으로 할까요?
[이도현] 네, 괜찮습니다.
[새벽별] 오케이! 그럼 내일 봐요!
메시지 창이 조용해지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 화면을 내려놓지 못했다. 방금 나눈 대화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유니크. 대박. 내일. 균열.
낯선 단어들이 내 방 안에 낯설게 굴러다녔다.
나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처음으로 이 던전배달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 것에 대한 기대감을 느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슬라임한테 죽을 뻔하고, HP가 20이라는 숫자를 보고 절망했던 내가,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 하나를 붙잡고 심장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게 정상인 건지, 아니면 내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건지 판단이 안 섰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처음으로 던전이 무섭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며 손을 뻗어 허공에 몇 번이나 투시를 시도해봤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일 균열 안에서라면, 뭔가 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몰랐다. 이 만남이, 단순한 검증을 넘어 훨씬 큰 판을 여는 첫걸음이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판이,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훨씬 거대한 것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