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늑대를 품은 정원

5화

쿠웅- 둔중한 발소리가 좁은 통로 안에 울렸다. 태민은 숨을 죽이고 벽에 몸을 붙였다. '지나가라, 제발 지나가라.' 그는 속으로 그렇게 빌었다. 발끝부터 시작된 떨림이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간격이 좁혀질 때마다 통로 벽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돌가루가 천장에서 부슬부슬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형체가 드러났다. 몸통이 사람 두 배는 됨 직한, 뿔이 달린 짐승형 몬스터였다. 가죽은 검게 그을린 것처럼 두꺼웠고, 그 위로 힘줄이 뭉텅뭉텅 드러나 있었다. 초입에서 흔히 보이는 하급 몬스터와는 격이 달랐다. 문지기가 말한 '여기서 죽으면 아무도 안 찾아준다'는 경고가 그제야 실감으로 다가왔다. 그때는 그저 겁을 주려는 소리라고 넘겼다. 지금은 그 말 한마디가 목덜미에 칼날처럼 닿았다. 짐승의 눈이 태민을 향했다. 붉게 빛나는 눈동자였다. 동공이 세로로 길게 갈라져 있었다.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사냥감을 확인하는 눈이었다. '싸울 수 없다.' 그는 즉각 판단했다. 전투 등급이 없는 그에게는 도망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검을 쥔 적도 없고, 몸을 단련한 적도 없었다. 서고에서 문양을 새긴 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재주였다. 그 재주로는 저 짐승의 발톱 하나도 막을 수 없었다. 쉭-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짐승의 앞발이 벽을 긁고 지나갔다.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등 뒤로 스치는 바람이 소름을 돋게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옆구리가 갈라졌을 거리였다. 태민은 좁은 통로를 따라 무작정 달렸다.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리는 이미 남의 것처럼 무거워졌다. 통로 양쪽 벽에 어깨를 몇 번이나 부딪혔는지 셀 수 없었다. '이대로는 잡힌다.' 그는 그렇게 직감하면서도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이 곧 끝이라는 것을,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 통로는 점점 좁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길이 끝났다. 막다른 벽이었다. 옆으로는 좁은 틈이 있었지만, 사람이 지나가기엔 너무 좁았다. 태민은 등을 벽에 붙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손바닥이 차가운 돌벽에 닿았다. 축축한 습기가 손끝을 타고 올랐다. 그 감촉조차 지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퇴로가 없다.'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고에서 늘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문양을 새기는 일과, 목숨이 오가는 이 순간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짐승의 발소리가 통로 저편에서 울렸다. 곧 그 모습이 다시 나타날 것이었다. 쿠웅- 쿠웅- 한 걸음 한 걸음이 태민의 귓속에서 북소리처럼 울렸다. 그때, 태민의 발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부드럽고 축축한 것이었다. 사람의 살이 아니었다. 시선을 내리자, 통로 구석 그늘진 자리에 회색 털뭉치가 쓰러져 있었다. 늑대였다. 몸통 여기저기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고, 숨소리는 가늘고 불규칙했다. 옆구리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이미 바닥에 검게 말라붙어 있었다. 얼마나 오래 이 자리에서 버텼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빈사 상태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었던 듯했다. '이 녀석도 저 짐승에게 쫓기다 여기까지 왔던 걸까.' 태민은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뒤에서 짐승의 발소리가 다시 울렸다. 거리는 이제 몇 걸음도 남지 않은 듯했다. 쉭- 하는 숨소리마저 섞여 들렸다. 짐승도 사냥감의 냄새를 확인한 것이었다. 태민의 시선이 늑대와 통로 저편을 번갈아 오갔다. '도망칠 곳이 없다.' 그는 그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넣어도 짐승의 앞발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틈 사이로 팔이라도 넣어볼까 했지만, 손이 채 들어가기도 전에 돌 모서리에 걸렸다. 도망은 이미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발밑에는 죽어가는 늑대 한 마리가 있었다. 손등의 문양이 미약하게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를 담으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다. 따끔한 열기가 손등에서부터 손목까지 번졌다. 처음 문양을 새겼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서고에서 읽었던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담긴 것이 어떻게 되는지, 그것이 진짜 핵심이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학문적인 구절이라 여겼다. 지금은 그 한 줄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생명이 있는 것을 넣어야 한다.' 그 직감이 다시금 떠올랐다. 확신은 없었다. 그저 몸이 먼저 반응하듯, 문양이 먼저 반응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늑대를 정원함에 넣는 것이 그를 살릴 방법인지,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서고의 노학자가 남긴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함부로 시도하지 마라. 담는 순간 되돌릴 수 없다.' 그 경고가 지금처럼 무겁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짐승의 그림자가 통로 벽에 드리워졌다. 이제 몇 초의 여유도 없었다. 검은 형체가 통로 입구를 가득 채웠다. 붉은 눈동자가 다시 태민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태민의 손이 늑대를 향해 뻗어나갔다. 그러나 손끝이 회색 털에 닿기 직전, 그는 멈칫했다. 늑대의 가슴이 미약하게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직 살아 있었다. 그 사실이 손끝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구하면 나도 죽는다. 버리면...' 그 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짐승의 포효가 통로 전체를 뒤흔들었다. 우우우웅- 포효의 여파로 벽에서 돌가루가 비처럼 쏟아졌다. 태민의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 짐승의 앞발이 허공을 갈랐다. 다음 걸음이면, 그 발이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