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늑대를 품은 정원

2화

관리국 감정실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각성식을 치르는 아이들이 스물 남짓, 그 부모들까지 합치면 감정실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태민은 그 줄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순서가 늦다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주막에서 자란 아이에게 특별한 배려란 원래 없는 것이었으니까. 앞선 아이들의 각성은 대체로 화려했다. 검광이 손등 위에서 번쩍이거나, 불꽃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지는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노감정사는 짧게 등급을 불렀고, 서기는 서책에 그것을 받아 적었다. 부모들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넘쳤다. 아이들은 그 시선을 받으며 어깨를 펴고 걸어 나갔다. 태민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손을 내밀며 생각했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면 된다.' 오래전부터 스스로 되뇌어 온 말이었다. 기대는 실망의 씨앗이라는 것을, 그는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노감정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허공의 흐릿한 빛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감정실 안이 조용해졌다. 앞선 판정들과는 확실히 다른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흠." 노감정사가 낮게 읊조렸다. 그것이 전부였다. 태민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좋은 신호인가, 나쁜 신호인가.' 그는 판단할 수 없었다. 노감정사가 손목의 문양을 손끝으로 훑었다. 그러자 흐릿한 빛이 서서히 형체를 갖췄다. 스으- 빛이 천천히 응집되어 갔다. 다른 아이들의 경우보다 확연히 느린 속도였다. 그 느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태민은 알 수 없었지만 감정실 안의 몇몇은 이미 짐작하는 눈치였다. 작은 상자 모양이었다. 나무로 짜인 듯한 문양이 손등 위에 아로새겨졌다. 빛은 그것으로 멈췄다. 더 이상 커지지도, 더 밝아지지도 않았다. "《정원함(庭園函)》이라." 노감정사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서기가 옆에서 서책을 뒤적였다. 오래된 기록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이 먼지를 일으켰다. "수납형 스킬이군요." 서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목소리에 이미 결과를 짐작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전투 등급은." 노감정사가 물었다. "무(無)입니다." 서기가 짧게 답했다. 그 순간 감정실 뒤편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줄을 서 있던 아이들과 부모들이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수납형이면 그래도 상인 길드는 갈 수 있지 않나." 누군가 그렇게 속삭였다. "저 정도로 흐릿하면 그것도 어려울걸." 다른 목소리가 냉소하듯 이어졌다. "쯔쯔, 주막집 아이라더니." 또 다른 목소리가 낮게 혀를 찼다. 태민은 그 말들을 전부 들었다. 듣지 않으려 해도 들렸다. 감정실은 소리가 잘 울리는 구조였고, 그것은 이럴 때만 유독 정확하게 기능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하지만 목덜미가 뜨거워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강태민." 노감정사가 그를 불렀다.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다. "네." 그는 애써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정원함》은 등재된 지 오래된 스킬이다. 수납 공간을 여는 능력이지." 노감정사가 건조하게 설명했다. "공간의 크기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흐릿한 정도로 보아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야."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이어갔다. "싸움에는 쓸모가 없다. 던전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야." 그의 말투에는 동정도, 조롱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투였다. '그게 전부인가.' 태민은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주먹을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손등의 상자 문양이 옅게 흔들리는 듯 보였으나, 그것은 착각일 수도 있었다. "다음." 노감정사가 서기에게 손짓했다. 그것으로 그의 각성식은 끝이 났다. 태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나가면서도,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들을 느꼈다. 그것은 처음 받아보는 종류의 시선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 관리국 밖으로 나오자 이현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수는 이미 각성식을 마친 뒤였다. 그의 손등에는 붉은 화염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시선을 주고 갈 정도였다. "결과가 어떻게 됐어." 이현수가 물었다. 목소리에 이미 짐작이 섞여 있었다. "정원함이라는 스킬이라더라." 태민이 짧게 답했다. "정원함? 그게 뭔데."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납형이래." "수납형이면..." 이현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동정과 우월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기에, 그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태민은 놓치지 않았다. "나는 화염계 전투 스킬을 받았어.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상급 탐험자 자질이 보인다고 하시더라." 이현수는 굳이 그 말을 덧붙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자랑이 섞여 있었다. "등급이 3등급이래. 우리 나이대에서 이 정도면 꽤 드물다더군." 그는 손등을 슬쩍 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축하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군.' 태민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잘됐네." 그는 대신 그렇게만 답했다.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현수가 물었다. 딱히 걱정이 담긴 목소리는 아니었다. "글쎄. 아직 배정서도 안 나왔어." 태민이 답했다. "수납형이면 그래도 상단 쪽에 자리가 있을지도 모르지." 이현수가 위로랍시고 한마디 던졌다. "어릴 때 같이 검술 배우던 거 생각나냐. 그때는 네가 나보다 낫다고 사부님이 그러셨었는데." 이현수가 문득 옛일을 꺼냈다. 태민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 주막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반나절이 걸리지 않는 길이었지만, 오늘은 걸음마다 다리가 무거웠다. 지나치는 상점 앞마다 각성식 소식이 벌써 퍼져 있는 듯했다. 몇몇은 그를 알아보고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박씨는 그의 표정만 보고도 짐작한 듯했다. "뭐가 나왔니." 박씨가 물었다. 손에 든 걸레를 내려놓지도 않은 채였다. "수납형이라고 하네요." 태민이 답했다. "수납형이면... 그럼 넌 계속 여기서 일해야겠구나." 박씨의 목소리에는 딱히 놀람도 없었다. 그 말이 예정된 결론처럼 들렸다. 마치 그가 어떤 결과를 받아왔어도 이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지." 박씨가 덧붙였다. 위로인지 그저 하는 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방 청소는 다 됐고, 저녁 장사 준비나 도와라." 박씨는 곧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슬퍼할 시간도 사치라는 것을, 주막에서 자란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태민은 그날 밤 방구석에 홀로 앉아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상자 문양이 옅게 비쳤다. 만지면 손끝이 스치는 감촉만 있을 뿐, 아무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정말 전부인가.' 그는 그렇게 되물었다. 문양을 몇 번이고 눌러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던전에서 몬스터를 상대할 화염도, 검기도, 방어막도 없었다. 그저 텅 빈 상자 하나가 그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은 유난히 어두웠다. 방 안의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손등의 문양도 함께 흐려지는 것 같았다. 태민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 다음 날, 관리국에서 배정서가 도착했다. 심부름꾼 아이가 문 앞에서 건네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태민은 그것을 받아 들고 잠시 숨을 골랐다.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수납형 스킬 보유자는 탐험자 등록이 제한되며, 왕도 내 노동 배치를 권고한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배치처는 왕도 외곽의 채석장이었다. 태민은 그 종이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채석장에 대해 들어본 이야기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돌가루를 마시며 하루 종일 망치질을 하는 곳, 부상을 당해도 별다른 보상이 없는 곳, 그리고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힘든 곳이라는 소문이었다. '채석장이라니.'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것은 던전과는 완전히 다른, 희망이 없는 곳이었다. 주먹을 쥔 손끝이 파르라니 떨렸다. 슬픔보다 먼저 모멸감이 차올랐다. 남들이 그를 어떻게 보는지, 그 시선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서류를 쥔 손이 떨렸다. 태민은 그것을 구겨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눌렀다. 그러나 구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배정서는 이미 관리국에 등록된 사실이었고, 그것을 거부할 방법은 그에게 없었다. '정말 이대로 끝인가.' 그는 손등의 상자 문양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문양의 가장자리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그가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