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배치서를 손에 쥐고 사흘이 지났다.
그 사흘 동안 태민은 주막에서 그릇을 나르고 술상을 치우면서도,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았다. 남들이 보면 그저 흔한 낙인처럼 보일 문양이었지만, 그에게는 앞으로의 삶을 결정지을 표식이었다.
"태민아, 손님상 좀 봐라." 주모의 목소리가 부엌 쪽에서 들렸다.
"네, 갑니다." 태민이 대답하며 소반을 들었다.
그는 익숙하게 손님상 사이를 오갔지만, 머릿속에서는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있었다. '정말 채석장으로 가야만 하는가.'
그릇을 내려놓는 순간에도, 술을 따르는 순간에도 그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노감정사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싸움에는 쓸모가 없다. 던전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야.'
그 목소리는 낮고 단조로웠지만, 오십 년 경력이 실려 있었다. 왕도에서 그의 판정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민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채석장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것이 나았다.
주막 일이 끝난 뒤에도 그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좁은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손등을 어루만졌다.
'《정원함》. 이게 정말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면, 왜 나에게 온 것일까.' 그 물음은 답을 찾지 못한 채 밤마다 되풀이되었다.
결심이 서자 그는 곧바로 관리국을 다시 찾았다. 도움을 청할 곳이라면 그곳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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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국 안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창구 앞에는 낮은 등급의 스킬을 받은 이들이 몇 있었다. 그들도 저마다 조력을 청하러 온 듯했다.
한 젊은 사내가 창구 관리에게 뭐라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등급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관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불만 있으면 노감정사한테 가서 따져. 여긴 그런 얘기 들을 곳 아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태민은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오히려 차분해졌다. '저렇게 소리쳐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수납형 스킬로 던전 탐험이 가능한지 알고 싶습니다." 태민이 창구 관리에게 물었다.
관리는 서류를 힐긋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정원함》? 그거 등록된 지 몇십 년째 아무도 안 쓰던 스킬인데." 관리의 말투에는 이미 흥미가 없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태민이 다시 말했다.
"방법이 있으면 진작 누가 썼겠지. 없으니까 몇십 년째 방치된 거 아니냐." 관리가 서류를 옆으로 밀어놓으며 말했다.
"장비를 대여해주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초심 탐험자를 위한 것으로." 태민이 다시 물었다.
"그건 전투 등급이 있는 자들한테만 해당돼. 너한텐 소용없어." 관리가 딱 잘라 말했다.
"전투 등급이 없어도 장비는 필요할 텐데요." 태민이 물었다.
"전투 등급이 없으면 애초에 던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거야. 그게 규칙이다." 관리의 목소리가 조금 더 딱딱해졌다.
"그렇다면 안내서라도 얻을 수 있을까요. 초심자를 위한 던전 정보 같은 것 말입니다." 태민은 물러서지 않았다.
관리는 그제야 태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었다.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가라. 네가 던전에 들어가면 사흘도 못 버틴다." 관리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 말에 뒤쪽에서 누군가 낮게 웃었다. 조롱하는 웃음이었다.
"《정원함》이라니, 이름부터가 웃기지 않나. 정원이나 가꾸라는 스킬 아니야." 그 웃음소리 사이로 누군가의 말이 섞여 들렸다.
태민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꾸해봐야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도 다르지 않구나.' 태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창구를 등지고 걸어 나왔다.
관리국 문을 나서는 그의 등 뒤로 웃음소리가 조금 더 이어졌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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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국 앞 계단에 앉아 태민은 손등의 문양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계단은 차가웠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그 위로 무심하게 지나갔다.
'정말 이게 전부라면, 왜 이런 스킬이 존재하는 걸까.' 그는 그 질문을 계속 되풀이했다.
노감정사의 판정이 틀렸을 리는 없다고, 왕도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믿었다. 오십 년 경력의 감정사가 실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 자주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세상이 정한 쓸모와 네가 찾을 쓸모는 다를 수 있다. 남이 정해준 길만 걷다 죽는 것보다, 스스로 낸 길에서 넘어지는 것이 낫다.'
그 말은 그때는 그저 흘려들었던 말이었다. 지금은 그 말이 유일한 지팡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태민의 마음 한쪽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만약 그 판정이 스킬의 전부를 보지 못한 것이라면.' 그런 의심은 근거 없는 희망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희망을 완전히 버릴 수 없었다. 버리는 순간, 채석장에서의 삶만이 남을 것이었다.
채석장에서 평생을 보낸 이들의 얼굴을 그는 알고 있었다. 등이 굽고, 손가락 마디가 뭉개진 이들. 그들 중 누구도 다시 다른 삶을 꿈꾸지 않았다.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 생각이 그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그는 도서관을 찾았다. 왕도 중심가에 있는 작은 공공 서고였다.
서고 문을 열자 오래된 종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사람이 드문 곳이었다.
서고를 지키는 늙은 사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원함》이라는 스킬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까." 태민이 물었다.
사서는 안경을 고쳐 쓰며 서가를 훑었다. 손끝이 먼지 쌓인 책등을 하나씩 짚어갔다.
"그런 스킬 기록이 있긴 하다만, 아주 오래된 자료야. 수십 년 전 어느 탐험자가 언급한 게 마지막이지." 사서가 말했다.
"그 탐험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태민이 다시 물었다.
사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서가 사이를 걸었다.
"소문으로는, 아주 낮은 등급으로 판정받았지만 홀로 던전을 돌며 이름을 남겼다더군. 물론 확인된 기록은 아니다." 사서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름이라도 남았다면 어떤 이름입니까." 태민이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른다. 문서마다 다르게 적혀 있어서 말이야. 어떤 곳엔 그저 '수납사'라고만 적혀 있고." 사서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태민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불붙었다.
'확인된 기록이 아니라도 좋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 아니라, 시도할 이유였다.
'혼자서도 해낸 자가 있었다면, 나도 못 할 것은 없다.' 그 생각이 그의 등을 곧게 세웠다.
"그 기록을 볼 수 있겠습니까." 태민이 물었다.
사서는 잠시 그를 살피더니, 낡은 서책 한 권을 꺼내주었다.
"이런 걸 찾는 사람은 몇십 년 만에 처음 보는군." 사서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표지에는 손 글씨로 '수납형 스킬 사례 모음'이라 적혀 있었다.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손을 대면 부스러질 듯 낡아 있었다.
태민은 그 책을 품에 안고 서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흐릿하게 책장 위로 떨어졌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는 자신이 몰랐던 무언가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첫 몇 장은 그저 스킬의 명칭과 등급을 나열한 목록에 불과했다. 그러나 뒷장으로 갈수록, 손 글씨로 덧붙여진 짤막한 사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한 줄에 태민의 손끝이 멈췄다.
'수납형 스킬, 등급 최하. 그러나 던전 깊은 곳에서 살아 나온 유일한 자.'
그 문장 아래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마치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태민은 그 빈 공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아야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