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계약직이었다.
정식 명칭은 '게이트 안전관리 보조'였지만, 다들 그냥 나를 '관리자님'이라고 불렀다. 존칭 뒤에 숨겨진 무시를 모를 만큼 어리진 않았다.
센터 안에서 내 자리는 늘 구석이었다. 정규직 오퍼레이터들이 앉는 메인 모니터링 존에서 세 칸쯤 떨어진 보조석, 거기가 내 자리였다. 화면은 낡았고, 헤드셋은 한쪽 이어패드가 뜯겨 나가 테이프로 붙여 놓은 상태였다.
가끔 정규직들이 내 자리 앞을 지나갈 때마다 힐끔거리는 시선을 느꼈다. 대놓고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존재를 인식하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회의에 나는 참석할 수 없었고, 중요한 공지는 항상 나보다 반 박자 늦게 전달됐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일이 가진 단 하나의 의미를 좋아했다.
탐색자들이 던전 안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
그걸 지키는 게 내 일이었다.
육 개월 전, 처음 이 센터에 들어왔을 때 선배 오퍼레이터가 했던 말이 있었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건 지켜보는 것뿐이야. 진짜 위험한 순간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것도,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날은 백하은의 심층 던전 공략 3일차였다.
백하은은 국내 랭킹 상위권 탐색자였고, 이번 공략은 방송사와 계약을 맺은 대형 프로젝트였다. 동시 시청자 수가 91만 명을 넘었다는 안내가 화면 상단에 떴다. 실시간 채팅창은 하은 님 파이팅이라는 말로 도배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응원 도네이션을 쐈고, 누군가는 던전 공략 루트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화면 한쪽에서는 백하은의 체력 게이지가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고, 팬들은 그 숫자 하나에 탄식하거나 환호했다.
나는 그런 숫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보는 건 다른 화면이었다.
생체신호 그래프.
마나 소모율.
귀환 게이트 대기 시간.
그리고 게이트 진동수.
이 네 가지가 내 세계의 전부였다.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화려한 전투 장면은 내 모니터에 뜨지 않았다. 대신 숫자와 선, 그리고 파형만이 존재했다. 그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삐빅.
작은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진동수 그래프를 확대했다. 정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뭔가 이상했다.
그래프의 흔들림이,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뭐지.'
나는 지난 육 개월 동안 이 그래프를 매일 봤다. 눈을 감고도 정상 파형이 어떤 모양인지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파형은, 정상이라고 하기엔 미묘하게 삐뚤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파형 위에 다른 신호를 겹쳐 놓은 것처럼.
나는 손끝으로 마우스 휠을 돌려 그래프를 더 확대했다. 진폭이 커지는 지점마다 이상한 규칙성이 보였다. 무작위로 흔들리는 게 아니라, 어떤 패턴을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숨이 살짝 막혔다.
나는 옆자리의 하늘을 불렀다.
"하늘 님, 이거 좀 봐주실 수 있어요?"
하늘이 헤드셋을 반쯤 벗고 내 화면을 들여다봤다.
"뭔데요?"
"게이트 진동수요. 평소보다 이상해요."
하늘이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노려봤다. 몇 초쯤 침묵이 흘렀다.
"음… 좀 그렇긴 한데."
하늘이 팔짱을 끼고 화면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근데 이게 오류일 수도 있어요. 저번 달에도 이런 식으로 튄 적 있었잖아요. 그때도 결국 센서 오작동이었고."
"그때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요?"
나는 잠깐 말을 골랐다.
"그때는 그냥 튀었어요. 이건… 뭔가 흐름이 있어요."
하늘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뭔가를 조회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게이트 인증 로그를 열었다.
귀환 게이트는 이중 인증 방식이었다. 현장 오퍼레이터의 1차 승인, 그리고 관리센터 책임자의 2차 승인. 두 승인이 모두 있어야만 좌표가 확정되고 게이트가 열렸다.
1차 승인은 정상적으로 찍혀 있었다.
그런데.
2차 승인자 칸이 비어 있었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이게 왜 공란이지.'
보통은 서준혁 팀장의 이름이 자동으로 채워지는 칸이었다. 시스템이 자동 승인 처리를 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직접 승인을 눌러야 하는 구조였고, 그게 비어 있다는 건 아직 아무도 승인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로그 페이지를 위로 스크롤했다. 과거 기록을 확인했다. 지난 이 주 동안 진행된 다른 탐색자들의 귀환 게이트 승인 시각을 하나씩 살펴봤다.
전부 귀환 예정 시각보다 최소 한 시간 전에는 승인이 완료돼 있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귀환 예정 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삼십칠 분.
나는 인터컴을 눌렀다.
"팀장님, 백하은 탐색자 귀환 게이트 2차 승인이 아직 안 됐는데요."
대답이 없었다.
다시 눌렀다.
"서준혁 팀장님?"
삼 초, 오 초, 십 초.
인터컴 너머로 낮은 잡음만 들렸다. 사람의 숨소리 같은 것도, 발소리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 그거 이따 처리할게."
무심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무심함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근거는 없었다. 그냥 느낌이었다.
"저기, 팀장님. 귀환까지 삼십칠 분밖에 안 남았는데, 미리 승인하시는 게…"
"알겠다니까. 다른 일 하고 있어서 좀 바빠. 이따 할게."
통신이 끊겼다.
나는 잠시 인터컴 화면을 바라봤다. 뚜뚜 소리가 정적을 채웠다.
'다른 일이라니.'
이 시간에 팀장이 다른 일로 바쁠 이유가 있나. 귀환 게이트 승인은 그날 그의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나는 다시 진동수 그래프로 눈을 돌렸다.
파형은 여전히 삐뚤어져 있었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진폭이 더 커진 것 같았다.
하늘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다.
"도현 씨, 이거 예비 인증 회선 쪽이에요."
"예비 인증 회선이요?"
"네. 정식 귀환 게이트가 아니라, 비상시에 쓰는 서브 채널. 근데 이게 왜 활성화돼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비상 채널은 정상적인 공략 중에는 열려 있을 이유가 없었다. 사고가 났거나, 긴급 대피가 필요할 때만 쓰는 채널이었다. 지금 백하은에게는 그런 상황이 없었다. 생체신호도 정상, 마나 소모율도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승인자는요?"
하늘이 화면을 몇 번 더 넘겼다.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조금씩 빨라졌다.
"그것도… 공란이에요."
두 개의 채널, 두 개의 공란.
하나는 우연일 수 있었다. 두 개는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작게 끄윙, 소리를 냈다.
"팀장님께 다시 보고해야 할 것 같아요."
하늘이 내 팔을 붙잡았다. 손에 힘이 제법 들어가 있었다.
"저기, 도현 씨. 근데 이거 보고했다가 별거 아니면 또 혼나잖아요. 지난번처럼."
나는 하늘의 손을 물끄러미 봤다.
지난번, 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두 달 전 비슷한 보고를 올렸다가, 서준혁에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서준혁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세워놓고 이렇게 말했었다.
"계약직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말을 듣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정규직 몇 명이 자기들끼리 낮게 웃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의 얼굴 뜨거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이건 다른 것 같아요."
하늘이 내 팔을 잡은 손에서 조금씩 힘을 뺐다.
"확실해요?"
"확실하진 않아요. 근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하늘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저도 같이 갈게요."
나는 다시 인터컴을 눌렀다.
화면 위에서, 게이트 진동수 그래프가 한 번 더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승인자 칸 옆에, 방금까지 없던 작은 문구가 하나 떴다.
[전송 목표지 재설정 대기 중]
나는 그 문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재설정이라니.'
귀환 게이트의 목표지는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지상 센터의 특정 좌표. 그게 바뀔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좌표 재설정은, 매뉴얼상 오직 시스템 관리자 최고 권한을 가진 사람만이 요청할 수 있는 절차였다.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했다.
하늘도 화면을 보고 있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조금 빠진 것 같았다.
"이거… 방금 뜬 거예요?"
"네. 방금."
"이거 누가 요청한 거예요?"
나는 요청자 칸을 클릭했다.
로딩 아이콘이 몇 초간 돌았다.
그리고 화면에 뜬 이름을 본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