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최약체 마물사의 역주행

5화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강남지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한소연을 통해 그날의 정황을 어렴풋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원래 이런 내부 회의 내용을 외부인에게, 그것도 당사자에게 그대로 전달할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표정이 굳어 있었던 걸 보면 아마 나에게 뭔가 경고성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어쨌든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지부장 이하 심사팀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내 등급 심사 결과를 두고 상당히 소란스러운 논쟁이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마물사가 A등급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입니까?" 하고 지부장이 물었고, 심사팀장이 서류를 뒤적이며 대답했다는 게 그날 회의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전국 통계를 확인해봐도 마물사 직업으로 A등급 이상을 받은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고 기록이 D등급이었는데, 이번 건은 그걸 세 단계나 뛰어넘었습니다." "신원 조회는 했습니까?" "이준호. 22세. 특이사항 없는 일반인 출신입니다. 등록 전 전투 경험도, 관련 훈련 이력도 전혀 없습니다." 그 보고를 들은 지부장이 잠시 침묵했다는 게 이들 회의의 중론이었다. 훈련 이력도 없는 무명의 신규 탐험가가, 최약체로 꼽히는 직업으로 전례 없는 등급을 뽑아냈다는 사실은 협회 입장에서 단순한 우연으로 넘기기엔 지나치게 이례적인 사건이었고, 그렇다고 규정 위반의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이 나뉘었다는 것이다. 한소연의 말에 따르면 그 자리에 있던 심사팀 인원이 열 명 남짓이었는데, 그중 절반은 곧바로 소환 조사를 주장했고 나머지 절반은 신중론을 내세우며 팽팽하게 대립했다고 하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하게 다뤄진 사안이었던 모양이었다. 한쪽에서는 즉시 소환 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규정 밖의 방식으로 성과를 냈다면, 그 방식이 다른 탐험가들에게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게 이쪽 진영의 논리였다. 실제로 그중 한 심사관은 "만약 이게 알려지지 않은 편법이고, 그걸 다른 탐험가들이 따라 하기 시작하면 등급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해 들었는데, 그 우려가 나름 합리적이라는 걸 나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신중론을 내세웠는데, "아직 규정 위반이 확인된 것도 아니고, 만약 그가 정말 새로운 전략을 발견한 거라면 협회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게 이득"이라는 논리였다. 이쪽 진영에 섰던 어느 팀장은 "마물사라는 직업 자체가 워낙 인기가 없어서 등록자 수도 적은데, 만약 이 사람이 정말 새로운 활용법을 찾은 거라면 그걸 성급하게 막았다가 협회가 얻을 게 없다"고 덧붙였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발언이었던 셈이다. 이 두 입장 사이에서 지부장은 당장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당분간 해당 탐험가의 활동을 별도로 모니터링하되, 직접 접촉은 유보한다"는 절충안으로 그날 회의가 마무리됐다고 한다. 나는 그 절충안이라는 표현이 참 애매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컨대 아직 나를 잡아들일 명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지도 않겠다는, 지켜보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감시당하는 입장에서는 차라리 명확하게 규정 위반이라고 못을 박아주는 게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애매하게 걸려 있는 상태가 오히려 더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법이었다. 한소연은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유독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그 표정에서 그녀가 이미 뭔가를 알아챘거나, 최소한 의심을 품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서류 모서리를 자꾸 문지르는 것도, 시선이 내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자꾸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전부 그녀 나름의 고민을 드러내는 신호였다. "저기, 이준호 씨" 하고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그 방식이라는 게, 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편법 같은 건 아니겠죠?" "편법이라뇨" 하고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웃어넘겼다. "그냥 마물사 설명서대로 열심히 한 거예요." 거짓말이었다. 물론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마물을 포획하고 아군으로 편입시킨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그 편입시킨 마물을 곧바로 다른 마물에게 냅다 던져 죽인다는 부분은, 어떤 설명서에도 명시된 적이 없는 나만의 발견이었다. 생각해보면 이건 마물사라는 직업이 원래 의도했던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활용법이었다. 협회가 배포한 마물사 직업 가이드북 어디에도 '포획한 마물을 무기처럼 투척해 즉사시켜 추가 경험치를 얻는다'는 내용은 없었으니, 이건 순수하게 내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우연히 발견한, 어쩌면 발견이라기보다는 사고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처음엔 그냥 궁지에 몰려서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진 거였는데, 그게 이렇게 등급 세 단계를 뛰어넘는 결과로 이어질 줄은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협회에서 지급하는 생계 지원금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정작 내 통장 잔고가 여전히 빈약한 수준이라는 것에 실소를 흘렸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계좌 조회 결과를 보고 있자니, 세계 최초로 마물사 직업으로 A등급을 받은 탐험가라는 타이틀과 저 처참한 숫자가 도무지 매치가 안 됐다. A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은 협회 내부에서만 화제가 됐을 뿐, 실질적인 보상은 아직 지급 절차를 밟는 중이라는 이유로 한 푼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을 때도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예예, 확인 중입니다. 원래 등급이 재조정되면 관련 시스템도 업데이트가 필요해서...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안쪽에 남은 건 유통기한이 애매한 우유 반 팩과 텅 빈 계란판뿐이었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와, 냉장고 안에 계란 한 알 없는 현실이 이렇게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나로서는 실감이 잘 안 났다. '먼치킨이 되면 뭐 하나, 월세는 여전히 밀렸는데'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상태창의 스탯이 아무리 올라가도, 그게 당장 편의점에서 계란 한 판 사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이 세계의 참 잔인한 이치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 방식을 멈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협회가 아직 명확한 규정 위반으로 결론 내리지 못하고 모니터링만 하고 있다는 정보는, 지금 이 순간 최대한 빠르게 성장 폭을 넓혀야 한다는 신호로 읽혔다. 간단한 계산이었다. 협회가 결론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 그 시간 동안 내가 벌어들일 수 있는 경험치와 등급 상승분, 그리고 만약 나중에 이 방식이 금지된다면 그 전까지 확보해둔 이득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면, 답은 명확했다. 발각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걸 확보해두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었으니까. 어차피 나에게는 잃을 게 별로 없었다. 이미 시한부에 가까운 처지였고, 협회에서 쫓겨나 봤자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도 없었으니, 이럴 땐 몸을 사리는 것보다 최대한 밀어붙이는 쪽이 오히려 리스크가 적다는 게 내 나름의 결론이었다. 나는 다음 던전으로 향할 채비를 하면서, 문득 한소연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떠올렸다. "이준호 씨, 만약 정말로 규정 밖의 방식을 쓰고 있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스스로 밝히는 게 나을 겁니다. 나중에 발각되면, 그때는 훨씬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테니까요." 그 말을 곱씹으면서 배낭에 회복 포션 몇 개와 여분의 포획 도구를 챙겨 넣었는데, 손이 움직이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한소연의 목소리가 반복 재생됐다. 그 말이 경고인지 배려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그녀가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졌다. 사실 그녀의 성격을 대충 아는 나로서는, 이게 순수한 경고보다는 배려에 가깝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었다. 그녀는 나를 감시하는 입장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곤란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물론 이건 순전히 내 희망적인 해석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할 방법도, 굳이 피해야 할 이유도 아직은 찾지 못한 채, 다음 던전의 입구 앞에 서 있었다. 입구 너머로 습한 공기가 훅 밀려오는 걸 느끼며, 오늘도 어김없이 마물 한 마리를 포획해서 다른 마물에게 냅다 던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 순간, 상태창 한쪽 구석에 낯익은 문구 하나가 새롭게 떠올랐다. [강남지부 특이 활동 감지 시스템이 당신의 계정을 관찰 대상으로 등록했습니다.] 나는 그 알림을 읽으며 잠시 굳어졌다. 처음엔 그냥 흘려 넘기려 했는데, 문구를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보니 이게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라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주의 인물'로 분류된 게 아니라, 아예 전용 감지 시스템이 내 계정에 붙었다는 뜻이었으니까. 모니터링이 이미 시작됐다는 뜻이었다. 이제부터는 매번의 사냥이, 매번의 던지기가, 누군가의 눈에 그대로 기록될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던전 입구에 서서 그 알림을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이 방식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게 언제 어떤 식으로 끊길지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한 채로, 그저 발걸음을 던전 안쪽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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