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우연이라면 두 번 반복될 리가 없다' 하는 생각으로, 나는 남은 슬라임 두 마리를 마저 포획한 뒤 처음부터 다시 실험해보기로 했다. 이번엔 조건을 명확히 나눠서, 직접 전투를 붙였을 때와 던져서 부딪치게 했을 때의 경험치 차이를 정확히 비교해볼 생각이었다. 대충 감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인생의 방향을 바꿀 만한 발견이라면, 적어도 숫자로 증명해두는 게 맞았다.
일반 전투 방식으로 슬라임 한 마리를 붙였을 때 경험치는 11에서 14 사이를 오갔고, 던져서 충돌시켰을 때는 매번 40 이상, 심지어 한 번은 52까지 나온 경우도 있었다. 다섯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최소치와 최대치를 나란히 적어보니, 던지기 쪽이 최소 세 배에서 최대 다섯 배 가까운 배율을 보였다. 요컨대 던지는 행위 자체가 어떤 배율 판정을 받고 있다는 얘기였는데, 나는 이 현상에 대해 나름의 가설을 세워봤다. '아마 시스템은 마물사가 마물을 무기처럼 투척하는 상황을, 마물사 본인이 직접 가담한 물리적 액션으로 계산해서 별도의 가산치를 부여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 가설을 뒷받침할 수치는 이미 충분히 쌓여 있었다.
이 정도면 이건 우연이 아니라 시스템이 미처 걸러내지 못한 계산식의 구멍, 흔히 말하는 버그였다. '...개사긴데?'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마물사가 최약체 직업으로 취급받는 이유가 마물을 직접 싸움에 활용하는 정석적인 방식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면, 나는 그 비효율의 대체재를 우연히 찾아낸 셈이었다. 서른일곱 번의 취업 낙방 끝에 찾아낸 게 이런 것이라니, 인생이라는 게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석대로 살아온 서른일곱 번은 죄다 실패였는데, 규칙을 살짝 비틀어본 이 한 번은 대성공이었으니까.
다만 슬라임만 던지는 걸로는 어림도 없었다. 저층 던전 슬라임 한 마리 포획에 드는 시간과 던졌을 때 얻는 경험치를 비교하면, 이 페이스로는 60일이 아니라 600일이 걸려도 F등급을 못 딸 계산이 나왔다. 간단한 계산식이었다. 슬라임 한 마리 포획에 평균 3분, 던지기 한 번에 필요경험치의 극히 일부. 이 비율로는 아무리 부지런히 몸을 굴려도 답이 안 나왔다. 더 강한 마물, 더 잘 던져지는 마물이 필요했다.
다음 목적지는 초록 골짜기보다 한 단계 위인 '자갈 능선'이었는데, 이곳부터는 고블린이 등장한다는 정보를 미리 확인해두었다. 고블린은 슬라임보다 체력도 높고 이동 속도도 빨라서, 포획 난이도가 확연히 올라간다는 게 게시판 후기의 중론이었다. 게시판에는 '고블린 세 마리한테 쫓겨서 신발 한 짝 잃어버렸다'는 글도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웃었던 게 불과 어제 일이었다. 오늘 내가 그 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블린 한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는데, 놈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이빨을 드러내며 곤봉을 치켜들었다. 초록빛이 도는 피부에 누런 이빨, 눈은 작고 째져서 사람보다는 짐승에 더 가까운 인상이었다.
"으르렁!"
고블린 특유의 거친 울음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졌고,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슬라임과는 확실히 격이 다른 위압감이었는데, 이 상태로 정면 승부를 하면 순식간에 밀릴 게 분명했다. 슬라임은 그냥 물컹거리는 덩어리였지만, 이건 무기를 쥐고 있었다. 무기를 쥐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체감 위협도가 몇 단계는 올라갔다.
'그렇다면 정면 승부는 하지 않는다' 하고 마음을 정했다. 나는 최대한 놈의 시야 사각으로 돌아가 뒤에서 접근했고, 놈이 다른 쪽을 살피는 틈을 타 단검으로 등을 몇 차례 찔러 체력을 깎았다. 발끝을 세우고 숨을 죽인 채 한 걸음씩 다가가는 그 짧은 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는데,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콰크작...!
놈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지만, 완전히 쓰러지기 전에 반격이 들어왔고 나는 팔뚝에 곤봉이 스치는 걸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곤봉 끝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훅 끼쳤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뼈가 나갔을 거리였다. 하지만 그 짧은 격돌 끝에 체력 게이지가 30%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이 왔다.
[스킬 '포획의 손길'이 발동했습니다.]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고블린이 사라지고, 보유 마물 항목에 새 이름이 떴다. 나는 곧바로 그 고블린을 상태창에서 불러내,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고블린을 향해 힘껏 던져보았다. 팔이 뻐근할 정도로 무게가 느껴졌는데, 슬라임을 던질 때와는 완전히 다른 손맛이었다. 이게 통할까, 하는 의심이 던지는 순간까지도 남아 있었다.
부우욱...!!
두 고블린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는 슬라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둔중했고, 던져진 고블린이 그대로 상대의 머리에 부딪쳐 함께 나뒹구는 걸 지켜보며 나는 숨을 죽였다. 흙먼지가 확 일었다가 가라앉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군 고블린이 소멸했습니다.]
[경험치 380을 획득했습니다.]
나는 그 숫자를 보고 잠시 숨을 멈췄다. 380. 슬라임 던지기의 여덟 배에 가까운 수치였는데, 마물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이 버그의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걸 그제야 체감했다. '...미친...'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손이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이건 그냥 좋은 발견 정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건 그냥 버그가 아니라, 마물의 등급과 희귀도에 비례해서 폭증하는 구조의 버그라는 얘기였다. 슬라임 던지기는 애교였고, 더 강한 마물을 잡아 던질수록 경험치는 상상 이상으로 불어날 게 자명했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마물들이 전부 내 투척 재료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고, 그 끝이 어디일지는 나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남은 고블린 세 마리를 마저 포획한 뒤, 계획을 다시 짰다. 이제부터는 슬라임 따위에 시간을 쓸 이유가 없었다.
나는 자갈 능선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고, 그곳에서 무리를 이룬 고블린 다섯 마리를 발견했다. 위험한 숫자였지만, 이미 손에 쥔 고블린 셋을 도구로 활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머릿수로 밀리는 싸움을 정면으로 받을 이유는 없었다. 손에 든 패를 잘 쓰면 되는 문제였다. 나는 포획한 고블린 하나를 꺼내 무리 한가운데로 냅다 던졌다.
퍼어억...!!
던져진 고블린이 무리 중 한 놈과 충돌하며 둘 다 나뒹굴었고, 나머지 넷이 혼란에 빠진 사이 나는 재빨리 두 번째 고블린을 던졌다. 연쇄적인 충돌음이 골짜기를 울렸고, 그 짧은 사이 무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남은 고블린들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서로를 두리번거렸는데, 그 틈이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경험치 412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 395를 획득했습니다.]
숫자가 연달아 떠오를 때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야말로 '개사긴데'라는 말로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취업 실패자로 서른일곱 번 낙방하며 살아온 인생이, 마물을 던지는 재주 하나로 순식간에 뒤집히고 있었다. 면접관들 앞에서 어눌하게 자기소개를 하며 진땀을 빼던 시절이 떠올랐는데,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 이 장면을 보여준다면 뭐라고 반응할지 궁금했다. 아마 안 믿을 거다. 나도 안 믿기니까.
남은 고블린 셋을 처리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남은 포획 고블린까지 소진해 던지고, 마지막 한 마리는 직접 단검으로 상대해 체력을 깎은 뒤 다시 포획했다. 마지막 놈은 특히 저항이 거셌는데, 무리의 우두머리였는지 곤봉을 양손으로 쥐고 휘두르는 폼이 제법이었다. 몇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피하다가 겨우 체력을 깎아 포획에 성공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던전을 나서기 전 상태창을 열어봤을 때,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한 숫자를 확인했다.
[현재 레벨: 17]
[다음 등급 심사까지 필요한 예상 등급치: 충족]
하루 만에, 심지어 저층 던전 딱 두 개를 오간 것만으로 F등급은 물론 그 위 등급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수치가 쌓여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F등급 하나 따는 것조차 아득한 목표처럼 느껴졌는데, 오늘은 그 위를 넘겨다보고 있다니. 시간의 감각이 이상하게 뒤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보며 처음으로 실감했다. 이건 그냥 버그가 아니라, 어쩌면 내 인생을 통째로 갈아엎을 수 있는 판이라는 걸.
다만 이 방식을 계속 유지하려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나는 더 강한 마물을 안정적으로 포획할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폭증하는 성장세를 협회에 어떻게 감춰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너무 빠른 성장은 반드시 누군가의 시선을 끌게 마련이었으니까. 마물사 협회는 등급 심사 때마다 성장 곡선을 대조한다고 들었는데, 하루 만에 F등급을 훌쩍 뛰어넘는 성장세를 보인 신입이 있다면 그건 축하받을 일이 아니라 의심받을 일이 될 게 분명했다. 자칫하면 부정한 방법을 썼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엔 이 버그 자체가 발견돼 시스템 패치로 막혀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렵게 찾은 판을 오래 굴리려면, 남들 눈에 너무 튀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는 재주도 필요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울 리 없었다. 이미 손에 쥔 이 감각을, 이 숫자들이 쏟아지는 쾌감을, 억지로 늦춰가며 즐길 자신이 나에게 있을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 채로, 일단 자갈 능선을 벗어나 협회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등급 심사 접수처의 문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까지도,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