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방 한가운데 무릎을 세운 채 여전히 굳어 있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소유자님, 괜찮으십니까?]
그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같은 질문이었지만, 처음 들었을 때와는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나는 목이 메는 걸 느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라고 해야 되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내가 낸 소리인데도 낯설었다.
[판단이 어려우시다면, 잠시 시간을 두셔도 괜찮습니다.]
그 대답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됐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 한마디가.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뻐근했다.
얼마나 오래 그 자세로 있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방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바닥은 매끄러운 흰빛이었고, 조명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은은한 빛으로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거실처럼 보이는 공간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침실과 욕실, 그리고 또 다른 작은 방들이 이어져 있었다.
마치 고급 맨션 한 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구조였다.
나는 한 걸음씩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나 혼자만의 숨소리와 발걸음 소리만이 존재했다.
(이게 정말 내 소유라고…?)
나는 손끝으로 벽면을 쓸어봤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었다.
분명한 실재감이었다.
꿈이라면 이렇게 선명할 리 없었다.
나는 욕실 문을 살짝 열어봤다.
안에는 욕조와 세면대가 놓여 있었고, 물이 나오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문을 다시 닫았다.
지금은 그런 걸 확인할 정신이 아니었다.
거실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화면이 떠 있었다.
[통신판매 시스템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마석을 소지하고 계시면 물자를 주문할 수 있습니다.]
"마석…이요?"
나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네. 외부에서 발견되는 결정체입니다.]
[해당 결정체를 매개로 하여 물품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화면을 향해 손을 뻗어봤다.
손끝이 화면에 닿는 순간, 몇 가지 항목이 떠올랐다.
식료품, 생활용품, 의료품, 도구류.
목록이 하나씩 펼쳐질 때마다 작은 아이콘들이 반짝였다.
종류는 다양했지만, 가격은 전부 '마석 몇 개'라는 단위로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목록을 천천히 넘겨봤다.
물 한 병에 마석 하나, 빵 한 조각에 마석 두 개.
숫자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속이 답답해졌다.
(마석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산다는 거네.)
나는 주머니를 뒤져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했다.
방금까지 나는 목숨을 걸고 도망치던 처지였으니까.
주머니 속에서 나온 건 먼지 몇 개뿐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돈도 아니고 마석이라니…"
혼잣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소유자님께서 필요하시다면, 마석의 채집 방법을 안내해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화면 속 글자들이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거잖아, 그 괴물이 있는 곳으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거실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은 어둠뿐이었다.
그 어둠이 오히려 안심이 되는 동시에, 더 큰 불안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 공간에도 끝이 있을 것 같았다.
식량도, 물도, 결국 언젠가는 필요해질 것이다.
영원히 이 방 안에만 머물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마석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데요?"
[외부 세계에서 발생한 이형 생물체를 처치하면 획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는 자연 발생한 마석을 직접 채집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형 생물체… 그 괴물 같은 걸 말하는 건가.)
나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방금 겨우 도망쳐 나온 그 존재를, 다시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처치라는 게, 제가 직접 싸워야 한다는 뜻이에요?"
목소리가 떨렸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소유자님께서 직접 대응하셔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대답이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파에 몸을 깊이 파묻고 눈을 감았다.
소파의 감촉은 부드러웠지만, 그 부드러움이 지금은 오히려 위화감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안전하고 아늑한 공간에 있으면서, 밖에서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으로 낮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무너진 건물, 붉은 눈의 괴물, 그리고 나를 향해 뻗어오던 손.
그 손의 온기가 아직 손목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꾸만 그 손의 형태가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그 잔상을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눈을 감을수록 더 선명해졌다.
퍽, 하고 무언가 무너지던 소리가 귓가에 다시 울렸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소유자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휴식이 필요하신 것 같습니다.]
나는 힘없이 웃음을 흘렸다.
"휴식이라니… 지금 이 상황에."
하지만 그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몸이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았다.
나는 몸을 일으켜 침실로 향했다.
걸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문을 열자 낮은 조도의 조명이 방 안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몸을 뉘였다.
매트리스가 몸을 감싸듯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그 감촉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검은 우주 같은 풍경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라앉혀줬다.
별처럼 보이는 작은 점들이 점점이 떠 있었다.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어릴 적 방 안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겹쳐졌다.
(엄마도 이런 걸 겪었을까.)
불현듯 오래전 잃어버린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가, 이내 흐릿하게 사라졌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데, 잡으려 하면 흩어지는 안개 같은 기억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밖에서는 여전히 세상이 무너지고 있을 텐데, 이 방 안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벽 너머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 소리도, 발소리도, 그 어떤 것도.
그 고요함이 오히려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 방만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별개의 공간처럼.
얼마쯤 지났을까, 나는 얕은 잠에서 깨어났다.
꿈을 꾼 것 같았지만, 무슨 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손끝에 남은 서늘한 감각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방 안의 화면에 새로운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소유자님, 마력 게이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마석 없이는 이 공간의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문구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글자 하나하나가 천천히 눈에 박혀왔다.
"마력 게이지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데요?"
나는 겨우 물었다.
[공간의 유지가 불가능해질 경우, 소유자님께서는 외부 환경에 직접 노출되실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외부 환경이라는 건, 그 괴물이 있는 바깥세상을 의미했다.
(결국은… 나가야 한다는 거잖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다시 거실로 나왔다.
화면 앞에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숫자로 표시된 게이지가 조금씩, 천천히 줄어들고 있는 게 보였다.
밖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조용한 방 안의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짧게 남아 있다는 사실만이 분명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