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회사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 안은 평소보다 소란스러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랐다.
평소라면 커피 냄새와 키보드 소리가 뒤섞여 있어야 할 사무실이, 오늘은 낮게 웅성거리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몇몇 동료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책상 사이를 오가는 발걸음도 뭔가 조심스러웠다.
"뭔데,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 옆자리 동료가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뉴스 화면 속에는 도심 어딘가에서 촬영된 흔들리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건물 외벽에 검은 균열이 번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장면이었다.
화면이 흔들릴 때마다 촬영자의 숨소리 같은 잡음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이거 어디래?"
"강남 쪽이라던데, 아직 확인 안 됐어."
"뉴스에도 제대로 안 나오고, SNS에만 퍼지고 있어."
다른 동료가 끼어들며 말했다.
"지진이라던데? 근데 지진이 이렇게 생겼나…"
화면 속 균열은 분명 자연재해로 보이기엔 이상했다.
금이 가는 방향이 일정했고, 마치 무언가가 안에서 밀어내는 듯한 모양이었다.
나는 뭔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어제 그 검은 형체… 그거랑 관련 있는 건가.)
어제 골목에서 봤던 그 형체의 잔상이 눈앞에 겹쳐졌다.
흐릿한 윤곽, 흐물거리던 검은 표피.
그때는 그저 헛것을 봤다고 넘기려 했는데, 지금 이 화면을 보고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오래 이어갈 틈이 없었다.
쿠웅.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책상 위 컵이 넘어지며 물이 쏟아졌다.
모니터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울었다.
사무실 안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반사적으로 책상 아래로 몸을 숙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바닥을 짚은 손바닥에 서늘한 땀이 배어났다.
주변 동료들도 저마다 책상 아래로, 혹은 기둥 옆으로 몸을 피했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진짜 지진이야?"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두 번째 진동이 이어졌다.
이번엔 훨씬 강했다.
천장의 조명이 흔들리며 불꽃을 튀겼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형광등 하나가 완전히 꺼져버렸다.
창밖에서 뭔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콰콰콰쾅.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단순한 붕괴음이라기엔 너무 길게 이어졌다.
사무실 유리창이 진동에 맞춰 미세하게 울렸다.
누군가의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액정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나가야 돼! 다들 비상계단으로!"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나도 정신없이 그 흐름에 휩쓸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계단 조명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한 층, 두 층, 세 층.
발끝이 계단에 걸릴 뻔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앞서가던 누군가가 넘어지자 뒤따르던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며 아우성을 쳤다.
나는 벽을 짚으며 그 틈을 비켜 지나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다리 근육이 뻐근하게 당겨왔다.
(빨리, 더 빨리.)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계단 벽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이 발바닥까지 울렸다.
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 유리문 밖 풍경은 이미 낯설게 변해 있었다.
도로 한쪽 건물이 반쯤 무너져 내려 있었고, 자동차들이 서로 엉킨 채 멈춰 서 있었다.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여 귀를 찔렀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도로 전체를 흐릿하게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잔해 사이에서, 뭔가 거대한 형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게… 뭐야.)
숨이 턱 막혔다.
검은 표피, 붉게 빛나는 두 눈.
어제 골목에서 본 형체보다 훨씬 크고 뚜렷한 실체를 가진 존재였다.
몸통에서 뻗어 나온 팔 같은 것이 잔해를 밀어내며 서서히 일어서고 있었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지진의 진동과 겹쳐 보였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로비 유리문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누군가는 유리문을 밀치고 나가려다 다른 사람과 부딪혀 넘어졌다.
나 역시 그 틈에서 겨우 몸을 빼내 밖으로 나왔다.
바깥 공기는 이미 매캐한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그 순간, 내 옆에서 누군가 넘어졌다.
같은 층에서 근무하던 여자 동료였다.
발목을 접질렸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저기요, 도와…"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바라봤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괴물은 이미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붉은 눈이 이쪽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가면… 나도 죽어.)
짧은 순간, 온갖 계산이 머릿속을 스쳤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손끝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 그리고 괴물 사이의 거리가 머릿속에서 자꾸만 재계산됐다.
"잠깐만요, 사람들 불러올게요!"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몸을 돌렸다.
내 목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낯설게 갈라져 있었다.
등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기요! 저기요!!"
그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미안해요, 저도 살아야 돼서.)
괄호 속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 어딘가에 걸린 채 그대로 삼켜졌다.
달리는 동안 등 뒤에서 둔중한 파열음이 들렸다.
퍽.
짧고 무거운 그 소리가 등골을 타고 전해졌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숨은 이미 턱까지 차올라 있었고, 시야 가장자리가 흐릿하게 흔들렸다.
주변 사람들의 비명이 점점 뒤로 밀려났다.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는 순간, 발밑에서 뭔가 뜨거운 감각이 솟아올랐다.
손끝이 저릿거렸다.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힘의 기운이었다.
마치 몸 안쪽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려는 듯한 낯선 파문이었다.
(이게 뭐지…)
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골목 벽에 등을 붙인 채로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웠다.
괴물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밀어내며 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낮게 울렸다.
거리는 이제 채 십 미터도 남지 않았다.
붉은 두 눈이 이제는 완전히 나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등 뒤로 막다른 벽을 느끼며 숨을 삼켰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