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언제나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는 문 옆 손잡이를 붙잡고 서서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옆에 선 회사원은 이어폰을 낀 채 졸고 있었고, 맞은편에 앉은 학생은 문제집을 펼쳐놓은 채 창밖만 보고 있었다.
다들 지친 얼굴이었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오전 회의는 지루했다.
팀장은 똑같은 말을 세 번씩 반복했고, 나는 그 말을 받아 적는 시늉을 하며 딴생각을 했다.
오후에는 팀장이 던진 보고서 수정 요청에 시달렸다.
"이 부분, 숫자가 왜 이렇게 나왔어요?"
"그건 지난주 자료 기준으로..."
"다시 확인해서 오늘 안에 넘겨주세요."
짧고 단정한 말투였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다시 엑셀 파일을 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고, 겨우 자리를 정리한 건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퇴근길에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하철 안은 여전히 후텁지근했다.
에어컨 바람이 닿는 자리와 닿지 않는 자리의 온도 차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조금 틀어 바람이 오는 쪽으로 섰다.
지하철이 다음 역에 정차하는 사이, 화면 위로 뉴스 속보 알림이 떴다.
[남미 밀림 지역, 원인 불명의 이상 현상 발생]
[현지 위성 통신 일시 두절… 관계 당국 조사 착수]
나는 무심하게 그 문구를 눌러보았다.
기사 내용은 짧았다.
밀림 한가운데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빛이 관측되었다는 목격담과, 그 이후로 인근 지역 통신이 끊겼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화질이 좋지 않아 무언가를 정확히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화면을 껐다.
(어디서 또 무슨 일이 터졌나 보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은 늘 그랬듯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혔다.
사람들이 밀려들고 밀려나갔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집에 도착해 씻고 나와 소파에 몸을 던졌다.
물기가 덜 마른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목덜미로 흘러내렸다.
텔레비전을 켜자 같은 속보가 자막으로 흘렀다.
화면 속 기자는 다급한 표정으로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리모컨을 찾아 볼륨을 조금 올려봤지만, 이내 흥미를 잃고 다시 줄였다.
기자 뒤로 보이는 배경은 초록빛 밀림이었는데, 화면이 흔들릴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뭔가 이상한 빛이 스치는 것도 같았다.
(합성인가, 그냥 화질 문제겠지.)
나는 배달 앱을 열어 저녁 메뉴를 고르는 데 더 집중했다.
치킨과 마라탕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어제 먹었던 마라탕은 피하기로 하고 치킨을 주문했다.
배달이 오기까지 삼십 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그 사이 나는 소파에 누워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예능, 드라마, 다시 뉴스.
뉴스에서는 여전히 같은 속보가 반복되고 있었다.
자막 속 문장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일부 위성, 해당 지역 상공에서 신호 이상 감지]
나는 그 문장을 두어 번 곱씹었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배달이 도착하고, 나는 치킨을 먹으며 남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씻고 침대에 누웠을 때는 밤 열두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휴대폰 화면이 몇 번 깜빡였다.
[네트워크 연결 상태를 확인해주세요]
와이파이가 끊긴 모양이었다.
다시 연결하려 해도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설정 창을 열어봐도 와이파이 목록 자체가 뜨지 않았다.
데이터로 전환해봤지만 그마저도 안테나 표시가 자꾸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요즘 통신사가 왜 이래.)
나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베개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방바닥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스으.
처음엔 그냥 옆집에서 뭔가를 옮기는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진동은 바닥을 타고 몸까지 전해졌다.
마치 지하철이 지나가는 듯한 진동이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지하철이 다니지 않았다.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아 창문 밖을 내다봤다.
거리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가로등은 그대로 켜져 있었고,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편의점 불빛도 그대로였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는 누군가 앉아 있었는데, 휴대폰을 들고 여기저기 흔들어보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도 통신이 안 되나 보네.)
다만 어딘가 공기가 조금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나뭇가지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기분 탓이겠지.)
나는 창문을 닫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은 여전히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이나 화면을 켰다가 끄기를 반복했다.
밖에서 개 한 마리가 길게 울었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소리였는데, 오늘은 유난히 오래 이어졌다.
한 마리가 울음을 그치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또 다른 개가 이어받듯 울었다.
그 소리들이 겹쳐지며 골목 전체가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감았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뒤척였다.
천장을 바라보다가,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다시 똑바로 누웠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새벽 한 시를 넘기고 있었다.
(내일 회의 있는데, 얼른 자야 하는데.)
그렇게 겨우 눈을 감았을 때, 다시 한 번 진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조금 더 길었다.
쿠구웅.
거의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낮고 긴 울림이었다.
창문 유리가 아주 살짝 떨리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나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그 진동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공사장에서 뭐 하나 보지. 이 시간에도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진동은 몇 초쯤 이어지다 잦아들었다.
그 뒤로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개 울음소리도 어느 순간 멈춰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일 아침에 뉴스 보면 뭔가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결국 잠에 빠져들었다.
잠은 깊지 않았다.
중간에 몇 번 뒤척였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눈을 뜬 건 알람이 울릴 때였고, 창밖은 이미 밝아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신호는 다시 멀쩡하게 잡히고 있었다.
(역시 일시적인 문제였나 보네.)
나는 별 의심 없이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날 밤 서울 전역에서 비슷한 통신 장애와 미세한 진동이 보고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사람들이 하나둘 휴대폰을 들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옆자리에 선 누군가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새벽에 좀 이상했지 않았어요?"
"저희 동네도 와이파이가 갑자기 끊겼었는데..."
나는 그 대화를 흘려듣다가, 문득 어젯밤의 그 진동이 다시 떠올랐다.
(설마, 어제 그게... 나만 겪은 게 아니었나.)
휴대폰을 꺼내 뉴스 앱을 열었다.
메인 화면 상단에 붉은 글씨로 새로운 속보가 떠 있었다.
[서울 전역, 어젯밤 22시~02시 사이 통신 장애 및 미세 진동 다수 신고]
[전문가들, 남미 이상 현상과의 연관성 조사 중]
화면을 내려다보는 손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지하철은 여전히 평소처럼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도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어제까지와는 다른 낯선 파문이 도시 전체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