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게이트 관리센터는 낡은 창고 같은 건물이었다.
정선재는 그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섰다.
간판에는 [부산 게이트 관리센터 – 조기 각성 시험동] 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부산.
뉴스에서 보던 그 도시였다. 백호복초 길드가 활동하는 곳.
정선재는 학교장 추천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상위 0.2%짜리 수치를 뽑은 학생을 학교가 그냥 둘 리 없었다.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창문 몇 개는 판자로 막혀 있었다.
이런 곳에서 각성 시험을 본다고.
솔직히 좀 부실해 보이는데.
정선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문을 밀었다.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안내원을 따라 들어가니 짙은 원두 냄새가 났다. 대기실 한쪽에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다른 지원자들도 몇 명 있었다. 다들 긴장한 얼굴이었다.
한 명은 다리를 떨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정선재는 팔짱을 끼고 앉았다.
느긋한 표정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슬쩍 눈치를 봤다.
“몇 번째세요?”
“일곱 번째던데.”
“전 세 번째예요. 떨려서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편해 보여요?”
정선재는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렸다.
“떨어봤자 뭐 어쩌겠어요. 랜덤 뽑기 같은 건데.”
남학생은 그 말에 오히려 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기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음 순번, 3번 지원자 시험실로 이동해주세요.”
옆에 있던 남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뻣뻣했다.
정선재는 자판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커피나 한 잔 뽑아 먹을까.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컵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탁.
뜨거운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몇 모금 마시는 사이 시간이 흘렀다.
호명된 순서대로 시험실로 들어갔다.
정선재의 이름이 불렸다.
“일곱 번째 지원자, 정선재님. 시험실로 이동해주세요.”
컵을 옆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으로 들어가니 게이트가 보였다.
붉은 빛이 도는 문. 뉴스에서 본 그 모양 그대로였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컸다. 표면이 일렁이는 게 마치 액체 같았다.
감독관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 게이트는 훈련용 축소판입니다. 진입하면 랜덤 직업이 부여됩니다. 십 분간 내부 미션을 수행하고 나오면 됩니다.
직업은 랜덤인가요.
네. 뽑기식이에요.
감독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정선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위험한 직업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건 저희도 몰라요. 케이스마다 다르니까.”
“그럼 사람이 다치면.”
“축소판이라 실제 위험도는 낮게 설정돼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말투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매뉴얼대로 읊는 느낌이었다.
뽑기라니. 이런 중요한 걸 랜덤으로.
불안한데.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이미 발은 게이트 앞에 서 있었다.
준비되셨으면 들어가세요.
정선재는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리고 걸어 들어갔다.
위잉──
시야가 흔들렸다.
눈을 떴을 때 정선재는 낯선 공간에 서 있었다.
돌바닥, 이끼 낀 벽, 은은한 초록빛.
진짜 던전 같았다.
공기가 축축했다. 어딘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임시 진입자 정선재]
[직업 배정 중...]
대괄호 글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정선재는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이런 게 눈에 보이네.
뭐가 나올까.
전사? 마법사? 그래도 뭐 있어 보이는 거 나오면 좋겠는데.
궁수도 나쁘지 않고.
힐러여도 그럭저럭.
[배정 완료]
[직업: 잡화상]
정선재의 표정이 굳었다.
잡화상?
다시 한번 읽어봤다. 글자가 바뀌지 않았다.
[직업 설명: 물건을 사고파는 데 특화된 직업입니다. 전투 능력치 전무. 감정, 협상, 거래 스킬 보유.]
이거 완전 폭탄 아니야?
정선재는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애들은 뭐 검사, 마법사 이런 거 뽑는데 나만 장사꾼이야?
이게 뽑기냐 저주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혹시 이거 잘못 뜬 거 아닌가.
정선재는 허공에 손을 휘저어봤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나와서 감독관한테 따져야 하나.
그런데 나가는 문이 안 보이는데.
주변을 둘러봐도 처음 들어왔던 입구 같은 건 사라져 있었다.
[임시 미션 발생: 던전 내 몬스터 3개체 처치 또는 회피]
전투 능력 전무라는 안내가 뜬 지 몇 초도 안 지나 몬스터 처치 미션이 떴다.
와 이건 뭐 시작부터 죽으라는 소린가.
이게 밸런스가 맞는 거야?
전투 스킬 하나도 없는 사람한테 몬스터를 잡으라니.
회피라는 선택지가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선재는 주변을 둘러봤다. 돌바닥 위에 낡은 배낭이 하나 놓여 있었다. 잡화상이라 그런지 짐이 특이했다.
배낭을 열었다.
안에는 잡동사니가 들어 있었다. 낡은 저울, 작은 주머니 여러 개, 손거울, 그리고 이상하게 생긴 회중시계 하나.
저울은 녹이 좀 슬어 있었다. 주머니 안에는 동전 몇 개와 마른 풀 조각이 들어 있었다. 손거울은 금이 가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무기는 하나도 없고 죄다 잡동사니뿐이잖아.
정선재는 회중시계를 집어 들었다.
시계 표면에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바늘은 멈춰 있었다.
그 순간 대괄호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감정 스킬 발동 – 아이템 정보 확인]
[회중시계: 등급 미확인. 시세 미확인. 특이 반응 감지.]
특이 반응이라니.
정선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있는데.
이거 팔면 비싸게 받을 수 있는 건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여기서 살아나가는 게 먼저다.
정선재는 회중시계를 배낭에 도로 넣었다.
저울과 손거울도 챙겼다. 뭐가 쓸모 있을지 몰라 일단 다 챙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때 저 앞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
초록빛 짐승 형체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윤곽이 흐릿했다. 눈만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정선재는 그 자리에서 딱 얼어붙었다.
전투 능력 전무라던 안내창이 머릿속에서 자꾸 떠올랐다.
도망칠까.
아니면 저 배낭에 뭐라도 쓸 만한 게 있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짐승의 걸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