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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회의실 문이 열리는 순간, 강진우는 서늘한 냉기부터 느꼈는데, 그것은 단순히 냉방 시설이 과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물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방 안을 가득 채운 시선들이 이미 그와 문세영을 향해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댓 명의 정장 차림 관료들이 거대한 원형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는데, 저마다 태블릿이나 서류철을 손에 들고 무언가를 검토하는 척했지만, 그 시늉이 얼마나 어설픈지, 눈동자만은 끊임없이 새로 들어온 두 사람을 훑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강진우는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전형적이군.' 강진우는 속으로 짧게 읊조렸는데, 그가 살아온 세월 동안 이런 종류의 방에 들어선 것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이 냉랭한 공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새로운 존재를 평가할 때 짓는,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판단을 끝내버린 그런 표정들. "참고인으로 동석하겠다는 그 C급이 저 사람인가?" 의장석 근처에 앉은 백발의 남자가 안경 너머로 강진우를 훑어보며 낮게 중얼거렸는데, 그 목소리에는 감출 생각도 없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배어 있었다. 백발의 숱은 적었지만 정갈하게 넘겨져 있었고, 손목에 찬 시계는 협회 고위직 특유의 화려한 것이었으며, 그의 명패에는 '박태석'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벌써부터 이런 분위기라니.' 강진우는 배정된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으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는데, 문세영은 그 옆자리에 앉아 등을 곧게 펴고 정면을 응시했지만, 무릎 위에 놓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강진우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손톱 끝이 서류철 모서리를 꾹 누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긴장을 억누르려는 작은 몸부림이었다. 회의는 예산안 항목들을 순서대로 훑어가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던전 봉인 처리 비용, 신형 방어 장비 개발비, 상위 랭커 특별 지원금 같은 항목들이 하나씩 큰 소음 없이 통과되어갔고, 그럴 때마다 관료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서류에 도장을 찍듯 고개만 끄덕였다. 신진 다이버 양성 관련 예산은 안건 목록의 맨 끝, 그것도 '기타'라는 분류 아래 겨우 한 줄로 처리되어 있었는데, 그 배치 자체가 이미 이 안건에 대한 위원회의 태도를 말해주고 있었다. "다음은 문세영 대리가 올린 신진 다이버 양성 지원안입니다." 담당 서기가 무미건조하게 안건을 소개하자 몇몇 관료들은 이미 관심 없다는 듯 태블릿을 만지작거리거나 옆자리 사람과 나지막이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그 산만함 속에서도 문세영은 흔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해 온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화면에 그래프가 떠올랐다. "현재 B급 이상 다이버 수는 삼 년 전 대비 사십 퍼센트 감소했으며, 이대로라면 오 년 내 국내 던전 대응 체계 전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림 없이 또렷했지만, 회의실 안의 반응은 지나치게 조용했는데, 그 조용함이야말로 관심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하품을 참는 듯 입가를 가렸고, 누군가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래서 요청하는 예산이 얼마죠?" 중년의 여성 위원 한 명이 심드렁하게 물었고, 문세영이 액수를 밝히자 회의실 곳곳에서 낮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허, 그 돈이면 SS급 던전 하나 봉인 처리 비용의 절반인데." 의장석의 박 상무가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쳤는데, 그는 예산 심의 위원회의 실질적 권력자로, 협회 내부에서 그의 결재 도장 하나가 수십억의 예산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문 대리, 마음은 알겠지만 이런 낭만적인 발상으로는 위원회를 통과할 수 없어요. 지금 상위 랭커들이 스스로 잘하고 있는데, 굳이 협회가 하위권까지 나서서 키워줄 필요가 있습니까?" "상위 랭커들이 잘하고 있는 건 그들이 특출나기 때문이고, 그 아래의 다이버들은 시스템의 도움 없이는 성장할 방법이 없습니다." 문세영이 지지 않고 반박하자 박 상무의 눈매가 순간 날카로워졌는데, 그것은 자신의 권위에 감히 정면으로 맞선 하급 직원에 대한 불쾌감이 뚜렷하게 드러난 표정이었다. 회의실 안의 몇몇 관료들이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만난 듯 시선을 교환했다. "그럼 저 참고인이라는 사람은 뭘 증명할 수 있다는 거지?" 박 상무의 시선이 강진우에게로 향했는데, 그의 말투에는 아예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한 무례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C급 마석 채집꾼이 신진 양성안에 무슨 발언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주변에서 몇몇 관료들이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강진우는 그 시선들을 받으며 잠시 침묵했는데, 그것은 굴욕감보다는 익숙함에서 오는 무감각이었다. 그는 이런 시선을 수십 년간 받아왔고, 그때마다 굳이 반박하지 않았던 이유는, 반박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들의 관심을 사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지.' 강진우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옆자리 문세영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문세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을 짓누른 확고한 결기가 담겨 있었다. "이 분은 세계 랭킹 2위, 3위, 4위, 7위 다이버 전원의 스승이십니다." 회의실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몇몇 관료들의 눈이 커지며 서로를 마주 보았고, 태블릿을 만지던 손들이 일제히 멈췄으며, 박 상무의 표정에도 미세한 균열이 스쳐 지나갔는데, 그것은 그가 평생 쌓아온 노회한 가면 위로 처음 드러난 균열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증명할 근거가 있습니까?" 한 관료가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그 목소리에는 이미 앞서와는 다른 종류의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문세영은 곧바로 서류철에서 지도 계약서 사본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쳤고, 회의실 안에는 다시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서류가 탁자를 스치는 소리만이 유일하게 들리는 소음이었다. '저 자료를 언제 저렇게 준비해뒀지.' 강진우는 그 순간 자신도 몰랐던 문세영의 치밀함에 새삼 놀랐는데, 그녀가 이 회의를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조용히 준비해 왔는지가 그 서류 한 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계약서에는 낯익은 이름들이 나란히 적혀 있었고, 그 옆에 강진우의 서명이 각각 찍혀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어느 새벽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대충 흘려 썼던 서명들이었다. 박 상무는 서류를 훑어보다가 얼굴을 굳히며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는데, 그것은 이 문제를 완전히 무시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관심이 회의실에 몰려버렸다는 계산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서류 모서리를 톡톡 두드렸다. '이걸 그냥 덮어버리면 뒷말이 나오겠고, 그냥 넘겨주면 선례가 남겠고···' 박 상무의 속내가 그 표정에서 훤히 읽혔지만, 강진우도 문세영도 굳이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좋습니다. 참고인의 발언 기회를 잠시 드리겠습니다. 단, 짧게." 마지못한 허락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균열이었고, 강진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문세영의 대담함에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저는···" 강진우가 천천히 입을 열자 회의실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는데, 그는 애초에 이 자리에서 무엇을 말할지 준비한 것이 없었기에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자신을 향해 있다는 감각은, 오랜 세월 몬스터의 눈알을 마주해온 그에게도 낯선 종류의 압박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지.' 그는 잠시 문세영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빛 속에 담긴 절박한 신뢰가 그의 등을 서서히 밀어주는 것 같았고, 강진우는 결국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진 다이버들이 죽어 나가는 이유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배울 곳이 없어서입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회의실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는데, 몇몇 관료들의 눈빛에 처음으로 진짜 관심이라는 것이 스쳐 지나갔고, 누군가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태블릿의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다듬어줄 사람이 없으면, 그 재능은 던전 안에서 그대로 스러집니다. 저는 그런 죽음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강진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는데, 그 목소리에는 감정을 앞세운 호소가 아니라, 오랜 세월 현장에서 쌓아온 담담한 확신이 배어 있었다. 박 상무는 팔짱을 낀 채 강진우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흥미로운 발언이군요. 하지만 발언 하나로 예산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박 상무의 말투는 여전히 냉소적이었지만, 그 눈빛 깊은 곳에는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경계심이 자리하기 시작했는데, 강진우는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조용히 새겨두었다. 상대가 경계를 시작했다는 것은, 최소한 무시할 수 없는 상대로 인식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이 자리,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판이 될 것 같은데.' 회의실 여기저기서 낮은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는데, 몇몇 관료들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고, 그중 몇몇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지만, 처음의 그 노골적인 비웃음과는 결이 다른 시선으로 변해 있었다. 회의가 정회를 선언하며 잠시 끊긴 순간, 관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삼삼오오 모여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그 대화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방금 전의 그 폭로가 있었다. 문세영이 강진우의 옷깃을 슬며시 끌어당기며 낮게 속삭였다. "선생님, 이제부터가 진짜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 안에는 확신이 섞여 있었고, 강진우는 그 말의 무게를 곱씹으며 회의실 저편에서 자신을 향해 날카롭게 벼려진 박 상무의 시선을 마주했는데, 그 시선 속에는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는 자의 서늘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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