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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문을 열자 좁은 복도의 어두운 조명 아래 서 있는 작은 체형의 여성이 안경알 너머로 강진우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긴 그 모습은 몇 년 전 그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눈빛만큼은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지쳐 보였다. '문세영이잖아.' 강진우는 잠시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한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나 있었고, 그럼에도 저 안경 너머의 눈빛만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문세영은 인사를 건네면서도 시선을 슬쩍 복도 양쪽으로 굴렸는데, 그것은 누군가 자신을 뒤쫓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습관적인 동작이었고, 강진우는 그 조심스러움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사정이 있음을 직감했다. '저 버릇, 여전하네.' 예전 훈련장에서도 그녀는 늘 등 뒤를 신경 쓰던 아이였다. 그때는 그저 소심한 성격 탓이라 여겼는데, 지금 보니 그것이 성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습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스쳤다. "들어와." 그가 문을 넓게 열어주자 문세영은 짧게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섰는데, 좁은 집 안을 훑어보는 그녀의 눈빛에 잠시 안타까움이 스쳤다가 금세 다시 굳어졌다. 낡은 싱크대와 벗겨진 벽지,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아둔 채집 장비들을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지만, 그녀는 애써 그것을 못 본 척 넘기며 소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소파에 앉기도 전에 그녀는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쳤는데, 협회 로고가 박힌 표지 위로 '중견·신진 다이버 양성 지원 방안 검토 요청'이라는 제목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탁, 탁. 서류를 정리하는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긴장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압박감이 손끝으로 배어 나오는 듯한 떨림이었다. "협회가 지금 심각한 인력 공백 문제를 겪고 있어요. B급 이상 다이버 수가 삼 년 전보다 사십 퍼센트나 줄었고, 신입 지원율은 매년 곤두박질치고 있고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강진우는 대충 서류를 훑어보며 그렇게 되물었는데, 문세영은 그 무심한 태도에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이 저를 가르치셨잖아요. 은설이도, 재희 언니도, 유나도요. 세계 랭킹 상위권을 휩쓴 저희 전부가 선생님한테 배운 거예요. 그런데 협회는 아직도 그 사실조차 몰라요." '귀찮게 되었군.' 강진우는 서류를 다시 탁자에 내려놓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이런 식의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이미 몇 번이고 겪어본 패턴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그의 과거를 파고들려 할 때마다 그는 늘 같은 방식으로 도망쳐 왔다. 무관심을 가장하고, 대화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상대가 지쳐서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그가 세상과 거리를 두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나는 그냥 마석 캐는 C급이야. 협회가 나 같은 사람을 부를 이유가 없어." "바로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문세영이 언성을 높이자 강진우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는데, 평소 차분하고 조심스럽던 그녀의 이런 격한 태도는 확실히 드물었다. 훈련장에서도 그녀는 절대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었고, 아무리 고된 훈련에도 조용히 입을 앙다물며 버텨내던 아이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 이렇게까지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강진우로 하여금 뭔가 심각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자각하게 만들었다. "선생님 같은 실력자가 등급 시스템 속에서 철저히 은폐되어 있다는 게 협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라는 뜻이에요. 저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싶은데, 저 혼자로는 힘이 부족해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진지한 얼굴로 강진우를 응시했다. "내일 오전 열 시, 협회 본부에서 신진 다이버 양성 관련 예산 심의 회의가 열려요. 저는 그 회의에 선생님을 참고인으로 동석시키고 싶어요." "거절한다." 강진우의 대답은 지나치게 즉각적이었는데, 그는 협회 본부라는 이름만 들어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관료적인 공간에 자신이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재앙의 시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거기 발 들이는 순간, 조용히 살던 인생 끝장나는 거지.' 그는 협회라는 조직 특유의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서류 한 줄, 등급 한 칸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그 재단된 틀 안에서 벗어나는 존재는 곧바로 불편한 이물질로 취급받는 곳. 그는 그 이물질이 되고 싶지 않았다. "부탁이에요, 선생님." 문세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깊이 숙였는데, 그 모습에서 강진우는 그녀가 이미 협회 내부에서 얼마나 몰려 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울음을 참는 것에 가까운 떨림이었다. "저 진짜 이번엔 물러설 곳이 없어요. 선생님이 안 오시면 저 혼자 저 사람들 앞에서 완전히 짓밟힐 거예요." '제자 녀석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강진우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잠시 눈을 감았는데, 오랜 세월 그가 지켜온 무관심이라는 방패가 이 순간만큼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은 채로 그는 옛 훈련장의 풍경을 떠올렸다. 땀에 젖은 얼굴로 이를 악물던 여자아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던 그 작은 등. 그 등이 지금 자신 앞에서 다시 굽어 있었다. "···내일 몇 시라고 했지." 그의 물음에 문세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는데, 그러나 그 밝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열 시요! 그런데 사실은, 지금 바로 저랑 같이 협회로 가주셔야 해요." "뭐?" "오늘 밤 안으로 참고인 등록 서류를 제출해야 내일 회의에 참석 자격이 생겨요. 시간이 없어요, 선생님." 문세영은 그렇게 말하며 이미 강진우의 팔을 붙잡아 끌었는데, 그 손힘이 생각보다 완강해서 강진우는 순간적으로 몸이 이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이거 완전히 강제 연행 아닌가.' 그는 끌려가는 팔을 슬쩍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몇 년 만에 만난 제자에게 이런 식으로 끌려다니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어쩐지 그 손힘에서 옛날의 그녀와는 다른 절박함이 느껴져 강진우는 순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서자 협회 소속 차량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검은색 세단의 창문에는 협회의 문장이 흐릿하게 인쇄되어 있었고,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 무표정함이 오히려 강진우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는데, 이런 늦은 밤에 예고 없이 사람을 태우러 나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태도 자체가, 협회라는 조직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사람을 부품처럼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차에 오른 강진우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밤거리의 불빛을 바라보며 점점 무거워지는 마음을 느꼈는데, 협회 본부라는 이름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안에서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경계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부우웅. 차는 조용히 도심을 가로질렀고, 창밖으로는 늦은 시간에도 꺼지지 않는 상점의 간판들이 스쳐 지나갔는데, 그 불빛들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강진우는 옛일들이 조금씩 떠오르는 것을 억지로 눌러야 했다. '별거 아니야. 서류에 서명 한 번 하고, 내일 회의에 얼굴 한 번 비추고, 그러면 끝날 일이지.'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였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일이 결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협회 본부 건물은 도심 한복판에 우뚝 솟은 유리 첨탑처럼 서 있었는데, 밤늦은 시간에도 창문마다 불이 켜져 있는 것이 그만큼 이 조직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라는 사실을 무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건물 상단부의 대형 로고가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며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 규칙적인 회전이 마치 이 조직 자체의 생리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져 강진우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로비에 들어서자 경비원이 문세영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강진우에게도 임시 출입증을 발급해 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강진우의 이름이 시스템에 조회되는 순간, 담당자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C급이니까, 저러는 게 당연하지.'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강진우는 스스로 그렇게 되뇌었는데, 그것은 익숙한 자기 위안이었고 동시에 이미 오래전부터 그가 세상과 맞춰온 타협의 방식이었다. 로비를 지나는 동안 마주친 몇몇 직원들의 시선도 그를 스쳐 지나갔을 뿐, 그 누구도 그에게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는데, 강진우는 그런 무관심이야말로 지금까지 그가 원해온 삶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인 등록 서류는 제가 미리 작성해뒀어요. 여기 서명만 하시면 돼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세영이 내미는 서류에는 이미 대부분의 항목이 채워져 있었는데, 강진우는 그것을 훑어보다가 한 항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등급: C급 다이버, 특기: 마석 채집 및 근접 전투.' 자신의 능력이 그렇게 초라하게 요약되어 있는 것을 보며 강진우는 헛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그 짧은 문장 안에 담긴 무게가 오히려 우스울 정도로 가벼워서, 그는 잠시 그 종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게 나야. 협회 시스템 안에서는.' 세계 랭킹 상위권을 휩쓴 제자들을 키워낸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고, 오직 마석 채집이라는 단조로운 두 글자만이 그의 존재를 대변하고 있었다. 서명란에 이름을 적어 넣는 순간 어딘가에서 육중한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끼이이익.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귓가에 울렸는데, 그것은 실제로는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음에도, 강진우의 귀에는 마치 무언가가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신호처럼 들렸다. 스으윽, 철컹.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눈앞에 펼쳐진 것은 무겁고 서늘한 정적이 감도는 임원 층 복도였는데, 그 끝에서 회의실 문패에 새겨진 '예산 심의 위원회'라는 글자가 그를 향해 조용히 다음 국면을 예고하고 있었다. 복도를 따라 늘어선 문들은 하나같이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스며 나오는 옅은 형광등 불빛만이 이곳이 살아 있는 공간임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강진우는 그 정적 속에서 문득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피해왔던 무언가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고.' 그는 옆에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맞추는 문세영을 힐끗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옆얼굴에는 아까와는 또 다른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 결의를 마주한 순간, 강진우는 이 밤이 결코 조용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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