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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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아 든 순간, 예상보다 훨씬 가볍다는 걸 느꼈다.
손바닥에 닿는 무게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뼈와 가죽만 남은 듯한 감촉이었고, 그 안쪽 어딘가에서 미약하게 뛰는 박동만이 이게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신수라는 존재의 무게가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건가 싶었다.
이계에서 나는 신수라 불리는 존재들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 산이나 강, 오래된 숲 하나를 통째로 다스리는 격을 가진 존재였고, 그 존재감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품 안에 있는 이 고양이에게서는 그런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이 존재가 얼마나 쇠약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그 가벼움이 마음에 걸렸다.
"놔라." 고양이가 낮게 으르렁댔지만, 몸부림칠 힘조차 없어 보였다. 발톱을 세우려는 시늉만 할 뿐, 실제로 나를 할퀴지는 못했다.
"밤새 여기 있으면 얼어 죽는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자존심은 살아있고 나서 챙겨."
밤공기가 매서웠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이 캄캄했고, 발밑에서 서걱거리는 낙엽 소리만이 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품 안의 존재가 식지 않도록 옷깃을 여며주었다.
고향집까지는 십오 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그 길을 걸으며 나는 문득, 서울에서 이 산자락까지 도망치듯 내려온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다 쓰러져가는 한옥, 부모님이 남긴 유일한 자산이자 지금 내가 가진 유일한 안식처. 어릴 적 이 집 마당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그 기억을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대문을 열었을 때 삐걱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오랫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경첩이 밤의 정적 속에서 비명처럼 울렸다.
마루에 고양이를 눕히고, 나는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전기는 살아있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 미리 전기와 수도 연결을 신청해둔 게 다행이었다. 냄비를 꺼내고, 배낭 속에 챙겨온 마른 재료들을 살폈다. 인삼 몇 뿌리, 대추 한 줌, 그리고 이계에서 몰래 챙겨온 약초 봉지 하나.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마력이 고갈된 존재를 회복시키는 방법은, 이계에서 몸으로 배운 것 중 하나였다. 단순히 상처를 봉합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몸 안의 기운을 채워야 했고, 그러려면 재료 하나하나의 성질을 정확히 알아야 했다. 인삼의 온기는 몸속 깊이 가라앉은 냉기를 밀어내는 역할을 했고, 대추의 단맛은 그 온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인간 세상의 한방 지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계의 약초는 조금 달랐다. 그건 단순히 몸을 데우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지닌 기운의 그릇을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그 약초의 이름조차 인간 세상 말로는 옮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이 재료를 다루는 나 자신을 조금은 특별하게 만들어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앎이 지금 이 순간, 쓰러져가는 고양이 한 마리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죽을 끓이는 동안, 나는 고양이의 상태를 곁눈질로 살폈다. 다리는 부러진 게 아니라 어긋난 것에 가까웠다. 응급으로 맞춰줄 수는 있지만, 완전한 회복은 마력이 어느 정도 돌아온 뒤에야 가능할 것 같았다. 고양이는 마루에 웅크린 채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 속에는 두려움과 자존심이 뒤섞여 있었다.
"뭘 하는 거냐." 고양이가 물었다. 목소리에서 경계가 조금 옅어져 있었다.
"죽 끓이는 중이야." 나는 국자를 저으며 대답했다. "기력 보충용. 인삼, 대추, 그리고 이계에서 가져온 약초 조금."
"이계?" 고양이의 귀가 쫑긋 섰다. "인간이 이계를 다녀왔다고?"
그 질문에 나는 잠시 대답을 미뤘다. 이계라는 단어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뱉은 게 실수인가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고양이라면, 인간 세상의 협회나 감사관과는 다른 존재였다. 협회 사람들에게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을, 이 쇠약한 신수 앞에서는 오히려 편하게 뱉을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삼 년 있었어." 나는 짧게 답했다.
고양이가 나를 오래 쳐다봤다. 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맑게 빛났고, 그 시선에는 놀람과 함께 뭔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는데, 그게 동질감이라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아챘다. 경계와 쇠약함 속에서도 남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그 태도가, 어쩌면 이 산의 주인이 오래도록 지켜온 품위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죽이 완성되자, 나는 그릇에 담아 고양이 앞에 내려놨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죽에서 인삼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좁은 부엌 안에 그 향이 가득 차자, 낯선 공간이 조금은 사람 사는 곳처럼 느껴졌다.
"먹어." 나는 말했다.
고양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결국 코를 갖다 댔다. 그리고 한 입 먹은 순간, 그 눈이 커지는 걸 나는 똑똑히 봤다.
"이건..." 고양이가 멈칫했다. "마력이 섞여 있다."
"조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담긴 거야." 나는 대답했다. 정확히는, 이계에서 익힌 조리법 자체가 재료의 기운을 살리는 방식이었고, 그게 결과적으로 마력을 품은 음식을 만들어냈다. 재료를 다듬는 손놀림, 불의 세기, 물을 붓는 타이밍까지, 그 모든 게 재료 안에 갇힌 기운을 흩트리지 않고 그대로 살려내는 데 맞춰져 있었다. 인간 세상에서는 이런 조리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이계에 다녀온 사람 자체가 극히 드물었으니까. 이 조리법을 아는 사람이 이 나라에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우습게도 지금 이 순간 나를 조금 쓸쓸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귀한 지식이라도, 그걸 알아줄 사람이 없으면 결국 혼잣말과 다를 게 없었다.
고양이는 남은 죽을 순식간에 비웠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아먹으려는 듯 그릇 바닥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릇을 다 비운 뒤, 몸에서 미세하게 온기가 도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축 늘어져 있던 꼬리 끝이 살짝 움직이는 것도 보였다.
"조금... 나아졌다." 고양이가 인정하듯 말했다. 하지만 곧바로 덧붙였다. "이 정도로 만족하지 마라. 내가 완전히 회복되면, 그때는 인간 따위에게 신세 진 것도 다 갚아줄 거다."
그 말투가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지만, 나는 웃음을 참았다. 자존심 강한 존재 앞에서 웃었다가는 상황이 더 꼬일 게 뻔했다. 대신 나는 냄비를 씻는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름이 뭐야." 내가 물었다.
"아랑." 고양이가 짧게 답했다. "이 산의 주인, 아랑이다."
"나는 강도훈." 나도 짧게 답했다.
이름을 나눈 것뿐인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이 낯선 집이 조금은 덜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아랑의 다리를 응급으로 고정시켰다. 부목을 대는 손길에 아랑은 몇 번 이를 드러냈지만, 끝까지 저항하지는 않았다. 처치가 끝나자 아랑은 마루 한구석에서 웅크린 채 잠들었다. 그 조그맣고 헐거운 몸이 조금씩 오르내리는 걸 지켜보며, 나는 이 낙향이 단순히 도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협회에서 쫓겨나듯 내려온 이곳에서, 뜻밖에도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를 만난 셈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서울 쪽 소식을 확인하려고 오랜만에 휴대폰을 켰다. 화면이 켜지는 몇 초 동안, 손끝이 저릿하게 굳는 걸 느꼈다. 협회 앱에 접속하자, 낯선 알림 하나가 떠 있었다.
제명 처분 확정 공고. 그리고 그 아래, 내 이름과 함께 짧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마력석 횡령 관련 형사 고발 검토 중.'
횡령을 넘어 형사 고발까지 검토된다는 건, 누군가 이 일을 단순한 팀 내 문제로 끝낼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문구를 오래 들여다봤다. 화면 속 활자들이 눈에 익을 만큼 뚫어져라 봤는데도, 그 의미가 쉽게 소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래,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메시지 하나가 새로 도착해 있었다.
"강도훈 씨, 조용히 지내는 게 좋을 겁니다."
화면을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