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 2화
몬스터 다섯 마리를 상대하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침착했다.
게이트 안쪽 공기는 늘 그렇듯 축축하고 비렸다. 균열 특유의 냄새, 철과 흙과 오래된 물이 섞인 냄새가 코끝에 걸렸다. 나는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근육이 이완되고, 호흡이 낮아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감각. 이계에서 삼 년 동안 몸에 새긴 반응이었다.
이계에서 겪었던 전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그곳에서의 삼 년은 하루하루가 생존과 직결된 시간이었고, 그때 몸에 새겨진 감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몬스터의 발톱이 허공을 가르는 궤적, 다음 공격이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그 시간 안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반경. 그런 것들이 계산 없이도 저절로 떠올랐다.
다만 여기서는 그 감각을 마음껏 풀어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마력의 흔적, 움직임의 궤적, 무엇 하나 남기면 안 됐다. 남기는 순간,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릴 테니까.
결국 나는 몬스터를 죽이는 대신 시간을 버는 쪽을 택했다. 최소한의 움직임, 최소한의 힘. 발끝으로 지면을 밀어내는 힘의 크기까지 조절해가며, 몬스터의 시야 사각을 파고들었다가 다시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이 분 사십 초를 버텼고,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몸을 던져 빠져나왔다.
몸을 던지는 순간, 등 뒤로 게이트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가 깨지는 것 같기도 하고, 종이 우는 것 같기도 한 그 특유의 파열음.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삼 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그날도 이런 소리가 났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팀은 이미 철수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살아있었네요." 서준이 말했다. 안도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사실 확인에 가까운 어조였고, 나는 그 말투에서 어떤 온기도 느끼지 못했다.
소라는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배낭을 정리했다. 그녀의 눈길이 잠깐 내 몸을 훑고 지나갔는데,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짐이 늘었는지 줄었는지를 세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원래 나는 이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삼 년 전, 나는 헌터 랭킹 신인상 후보에 올랐던 유망주였다. 서준과 같은 기수, 아니 오히려 내가 반 발짝 앞서 있었다는 게 당시 업계의 중론이었다. 그 시절 나를 취재하던 기자들은 내 이름 앞에 '차세대'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 나는 A급 던전 공략 중 실종되었다.
실종. 그 단어가 내 이름 뒤에 삼 년간 붙어 있었다. 실종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 그 뒤로는 어떤 설명도 사족이 된다. 사람들은 사실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실종이라는 단어 하나로 나를 정리해버릴 뿐이다.
돌아왔을 때, 이미 판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서준은 그 사이 랭킹 최상위권에 올라 있었고, 헌터 협회의 광고 모델로 방송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지하철 역사 광고판에 그의 얼굴이 걸려 있는 걸 처음 봤을 때,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정체가 의심스러운 헌터로 분류됐다. 협회는 나를 재심사 대상에 올렸고, 그 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팀도 나를 정식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재심사라는 게 무엇을 재는 건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몰랐다. 마력 등급인지, 정신 상태인지, 아니면 내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재는 건지. 협회에서 보낸 서류에는 그저 '종합 재심사'라는 애매한 문구만 적혀 있었다.
서준이 나를 팀에 넣어준 건, 겉으로는 동기에 대한 배려였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실종되었다 돌아온 헌터, 정체가 불분명한 인력. 그런 사람을 팀에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서준에게는 일종의 미담용 소재였다. 관용을 베푸는 리더.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몇 번이나 그 얘기를 꺼냈다.
한번은 우연히 그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동기가 힘든 시기를 겪고 돌아왔는데, 제가 외면할 수는 없었죠." 카메라 앞에서 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미안함이 한 톨도 없었다. 나는 그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화면을 껐다.
그 관용의 대가로, 나는 짐꾼 취급을 받았다. 마력 등급 재심사가 늦어진다는 핑계로 전투에서 배제됐고, 물자 운반과 잡무가 내 몫이 됐다. 회수함을 나르고, 야영지를 정리하고, 팀원들의 장비를 점검하는 일. 삼 년 전이라면 후배들이 나를 위해 하던 일들이었다.
항의할 수도 없었다. 항의하려면 이계에서의 삼 년을 설명해야 했고, 그건 설명할수록 나를 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어디서 뭘 했느냐고 물으면, 나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답해야 했다. 그 말을 믿어줄 사람은 이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요리를 시작한 건 그 무렵부터였다.
이계에서 나는 매일 밤 먹을 것을 구하고 조리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곳에는 마트도, 배달 앱도 없었다. 재료의 성질을 알아야 했고, 불의 세기를 몸으로 익혀야 했고, 무엇보다 그 음식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회복시키는지를 관찰해야 했다. 뿌리 하나를 잘못 다루면 독이 되고, 같은 뿌리라도 불의 세기를 달리하면 약이 됐다. 그런 지식을 몸으로 익히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
그건 생존 기술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했다. 전투는 언제 죽을지 몰랐고, 동료는 언제 사라질지 몰랐지만, 불 앞에서 국자를 쥐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게 내 손안에 있었다. 소금의 양, 끓이는 시간, 재료를 넣는 순서. 그 작은 세계에서만큼은 내가 완전한 주인이었다.
돌아와서도 나는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팀 숙소에서 다른 사람들이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울 때, 나는 혼자 부엌을 차지하고 국을 끓였다. 냄비 안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파가 익으며 나는 냄새, 그런 것들이 나를 다시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그게 유일하게 내가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소라조차 가끔은 내가 만든 김치찌개를 두 그릇씩 비우곤 했으니까.
그 국그릇을 비우는 소라의 얼굴을 볼 때만큼은, 나는 짐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던전 공략 이후, 그 작은 인정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캠프로 돌아온 다음 날, 마력석 재고 조사가 있었다. 아침부터 캠프 안쪽 공기가 평소와 달랐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낮아졌고, 눈빛들이 서로를 피하듯 움직였다. 이번 던전에서 회수한 마력석 중 등급이 가장 높은 것 하나가 사라졌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B급 던전 치고는 이례적으로 높은 등급, A급에 준하는 순도의 마력석이었다.
그 정도 순도의 마력석이라면 시가로 따져도 상당한 액수였다. 협회 감정가로 계산하면 웬만한 팀 한 달 활동비를 웃도는 금액. 나는 그 숫자를 떠올린 순간 오히려 냉정해졌다. 감정과 계산은 늘 반대로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마력석 회수를 담당한 건 강도훈 씨였죠." 협회에서 나온 감사관이 말했다.
그 순간, 목구멍 안쪽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회수 담당은 맞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마력석은 분명 회수함 안에 있었다. 나는 회수함 뚜껑을 닫고 잠금장치를 돌리던 그 손끝의 감각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후 상황을 설명하려면, 내가 왜 몬스터 다섯 마리를 상대로 시간을 벌었는지,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까지 설명해야 했다.
감사관의 시선이 내 얼굴에 머무는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그 시선 안에 담긴 게 의심인지 호기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확인해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에 확신이 실리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도 알았다.
서준은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걱정도, 의심도 아닌 어떤 계산이 스치는 것 같았다. 마치 이 상황이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유리하게 흘러갈지를 재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날 밤, 나는 캠프 창고에 남아 회수함을 다시 열어봤다. 창고 안은 조용했고,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리며 낮은 소음을 냈다. 나는 그 소음을 배경 삼아 회수함 뚜껑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마력석은 없었다. 대신 회수함 잠금장치에 미세한 흠집이 나 있었다는 걸, 나는 손끝으로 확인했다. 누군가 열었다는 흔적이었다. 손톱으로 긁어낸 것 같기도 하고, 얇은 도구로 비틀어낸 것 같기도 한 흠집이었다.
그 흠집을 발견한 순간, 나는 이 일이 단순한 분실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우연이 셋을 넘으면 우연이 아니라고 했던가. 균열, 회수함 흠집, 그리고 하필 그 시점에 도는 감사관의 방문까지, 세 가지가 한꺼번에 겹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 흠집을 손끝으로 몇 번이고 다시 훑었다. 마치 그 감촉 안에 답이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그 직감을 뒷받침할 증거가 나에게는 없었다.
창고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회수함 뚜껑을 닫았다. 발소리는 창고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멀어져갔다. 그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캠프 안에 나 말고도, 이 회수함을 열어본 사람이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