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김 서기라는 사람을 만나기까지는 사흘이 걸렸다.
사흘 동안 나는 조달구 아저씨한테 그 사람 성격이 어떤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야 하는지 세세하게 캐물었다.
"김 서기는 술을 좋아해. 그리고 숫자 자랑하는 걸 싫어하고." 조달구 아저씨가 담뱃대를 물며 말했다.
"뭐든 겸손하게, 겸손하게 가야 해."
'겸손하게 숫자 자랑을 안 하면서 실력을 증명하라니, 이게 무슨 역설 개그야.'
속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달구 아저씨가 잡아준 술집 뒷방은 좁고 어두웠다.
기름 냄새랑 술 냄새가 섞여서 코를 찔렀고, 낡은 병풍 하나가 방 한쪽을 겨우 가려주고 있었다.
나는 그 방에서, 처음으로 관아 사람이라는 존재를 마주 앉게 되었다.
김 서기는 나이가 오십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눈빛이 유독 매서웠다.
'이 사람이 조사 결과를 어떻게 쓸지가 관건인데.'
심장이 북 치듯 뛰었다.
"자네가 이겸인가." 김 서기가 나를 훑어보며 물었다.
그 눈빛이 마치 관아 창고에 들어온 쌀가마니 개수를 세는 듯했다.
'저 표정, 딱 회계 감사 나온 세무사 표정인데.'
"네, 맞습니다."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김 서기가 술잔을 들며 슬쩍 웃었다.
"소문이 흉흉해서 걱정이 많겠구먼." 김 서기가 말했다.
"동네에 그 얘기 안 도는 데가 없어. 이씨 상단 아들이 돈으로 급제했다, 뭐 그런 소문."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걱정이 많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거짓말은 못 하겠고, 여기서 괜히 능청 떨었다가는 더 의심받을 것 같은데.'
김 서기가 술잔을 비우고 다시 채우면서 나를 곁눈질했다.
"걱정이 많다는 걸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놈은 또 처음 보네."
'그럼 뭐라고 할까요, 걱정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하면 더 의심하실 거잖아요.'
조달구 아저씨가 옆에서 슬쩍 끼어들었다.
"김 서기, 이 아이 답안지 한번 제대로 다시 봐줘." 조달구가 말했다.
"진짜 실력인지 아닌지는 답안지가 다 말해줄 거야. 내가 그동안 본 애들 중에 이런 애 없었어."
"자네 원래 사람 칭찬 잘 안 하는 양반인데." 김 서기가 웃으며 조달구를 쳐다봤다.
"이번엔 진짜 뭔가 있나 보구먼."
조달구 아저씨가 헛기침을 하며 술잔을 들었다.
'저 아저씨, 은근히 내 편이시네.'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김 서기가 한참 나를 살펴보다 물었다.
"실무형 문제, 곡식 분배 문제 말이야." 김 서기가 물었다.
"그 계산 과정, 자네가 직접 짠 건가?"
"네, 세 가지 분배 방식을 비교해서 최적안을 골랐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세 가지나 비교했다고?" 김 서기가 눈을 크게 떴다.
"채점관들도 그거 보고 다들 놀랐다는 소문이 있었어. 보통은 하나 방식으로 계산해서 답만 딱 내놓는데."
'그야 회사 다닐 때 예산안 짤 때 시나리오 세 개는 기본으로 돌렸으니까요.'
물론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냥,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는 습관이 있어서요." 나는 대충 둘러댔다.
김 서기가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듯 쳐다봤다.
"그럼 지금 하나 더 풀어봐." 김 서기가 말했다.
"종이 없이. 말로만."
'……이거 완전 즉석 면접이잖아.'
당황했지만 표정은 관리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다른 분배 문제를 하나 풀어 보였다.
종이도 없이, 그냥 말로 숫자를 늘어놓으며 최적 비율을 설명했다.
곡식 총량을 나누고, 가구 수를 대입하고, 흉년 대비 여분까지 계산에 넣어서 세 가지 안을 순서대로 뽑아냈다.
말하는 동안 김 서기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는 게 보였다.
'표정이 굳는 게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모르겠는데.'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이거, 진짜네." 김 서기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부정합격 의심할 이유가 없겠어. 이 정도 암산이면 관아 서기로 데려가도 될 판이구먼."
'그건 좀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아직 열일곱 살이라서요.'
속으로 딴지를 걸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과찬이십니다." 나는 예의 바르게 답했다.
'다행이다, 일단 이 사람은 넘어갔다.'
하지만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는 않았다.
실력을 증명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이미 건넨 이만 냥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 돈은 이미 누군가의 손을 거쳐서 어딘가로 흘러갔을 테고, 나중에 그게 어떤 형태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뇌물이라는 건 참 신기한 거야. 준 사람도 손해고, 받은 사람도 위험한데, 그 순간엔 서로 다 이득이라고 생각하니까.'
술자리가 끝나고 조달구 아저씨와 함께 걸어 나오는 길, 밤바람이 제법 쌉쌀했다.
"봤지? 실력만 있으면 그깟 소문 다 이겨낸다." 조달구 아저씨가 흐뭇하게 말했다.
그때 박수복이 급하게 뛰어왔다.
숨이 턱까지 차 있는 모습이 꼭 급한 배달 심부름이라도 다녀온 사람 같았다.
"이겸! 상단 쪽에서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박수복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 지역 소과 최고 성적자라는 이름값 덕분에, 몇몇 상단이 우리 이씨 상단과 거래를 늘리고 싶어 한답니다!"
"거래를 늘린다고요?" 나는 반문했다.
'그게 그렇게 빨리 소문이 났다고?'
"네! 이겸 도련님 덕분에 이씨 상단 신용도가 확 올라갔다고 합니다!" 박수복이 신나서 말했다.
"오늘 아침에만 세 군데에서 사람을 보냈다니까요! 다들 우리 쪽이랑 곡식이랑 옷감 거래를 더 하고 싶다고!"
[상단 신용도 상승 - 자금 안정화 진행]
또 저 문장이 뜨는데, 이번엔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신용도가 올라가면 자금 사정도 좋아지겠네.'
뇌물로 이만 냥이 빠져나간 구멍을, 오히려 화제성으로 메꿀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 뇌물 준 게 알려지면 망할 텐데, 성적 좋다는 게 알려지니까 오히려 흥해.'
조달구 아저씨가 흐뭇하게 웃었다.
"거봐라, 사람이 실력 있으면 다 통하는 법이다." 조달구가 말했다.
"……아직 완전히 통한 건 아니지만요."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통하긴 통하는데, 이게 진짜로 통한 건지 아니면 그냥 운이 좋았던 건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박수복이 계속 종알종알 새 거래처 이름을 늘어놓았다.
곡물상, 옷감 상단, 심지어 소금 도매까지 손을 뻗겠다는 곳도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몰려오는 게 좀 무섭기도 한데.'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상단 장부를 붙잡고 뭔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
호롱불 아래에서 붓을 쥔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겸아! 이것 좀 봐라!" 아버지가 신나서 나를 불렀다.
장부에는 새로운 거래처 목록이 죽 나열되어 있었다.
이름만 봐도 열 곳이 넘었다.
"이 정도면 이만 냥 구멍, 반년 안에 다 메울 수 있겠다!" 아버지가 흥분해서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가 있었다.
'다행이지만.'
나는 장부를 다시 훑어보며 데이터를 정리했다.
거래처가 늘어난 건 좋은 일이었지만, 그중 몇몇은 조건이 지나치게 좋았다.
이자율이 시세보다 낮고, 대금 지불 조건도 후하고, 심지어 위약금 조항까지 우리 쪽에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조건이면 상대방이 손해잖아. 근데 왜 먼저 이런 조건을 제시하지?'
너무 좋은 조건에는 항상 숨은 목적이 있는 법이었다.
전에 회사 다닐 때도 갑자기 좋은 조건 들이대는 거래처는 십중팔구 뭔가 노리는 게 있었다.
"아버지, 이 거래처들 중에 이 세 곳은 조건이 너무 유리합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말했다.
"뭔가 우리한테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일 겁니다."
"에이, 그냥 우리 아들이 잘돼서 그런 거겠지!" 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었다.
붓을 내려놓고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우리 겸이가 소과 일등을 했으니까, 다들 눈에 띄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래! 그래!"
'……아버지는 정말 순수하시구나.'
그 순수함이 부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나는 그날 밤 다시 데이터를 정리했다.
방에 혼자 앉아서, 낮에 받은 거래처 목록을 하나씩 다시 뜯어봤다.
이번엔 새로 생긴 거래처들의 배후를 추적하는 작업이었다.
조달구 아저씨의 인맥과 박수복의 상단 정보를 합치니, 그중 두 곳이 중경국 관가와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게 드러났다.
한 곳은 대표 이름이 위장이었고, 실제 자금줄은 관아 쪽 창고와 이어져 있었다.
다른 한 곳은 최근 들어 갑자기 규모를 키운 곳이었는데, 자금 출처가 불투명했다.
[정보: 신규 거래처 중 2곳, 중경국 구경 남도현과 간접 연결 확인]
다시 그 이름이 나왔다.
남도현.
조달구 아저씨가 지나가듯 언급했던 그 구경.
'……단순히 지방 성적에 관심 있는 게 아니라, 벌써 우리 상단까지 손을 뻗은 건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한낱 지방 소과 성적 하나에 중앙 고위 관리가 이렇게까지 신경 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이건 마치 동네 반장 선거에 국회의원이 개입하는 수준인데.'
나는 그날 밤늦게까지 자료를 정리하며 남도현이라는 인물을 파악해보려 애썼다.
조달구 아저씨한테 슬쩍 물어봐서 얻은 정보, 박수복이 상단 인맥으로 캐낸 소문, 그리고 예전에 들었던 조각난 이야기들을 다 모아서 짜맞췄다.
소문으로 듣기론, 원래 유가 명륜서원 입학을 노렸다가 거절당한 뒤 음양가 오행서원으로 옮겨가 풍수 대가로 성장한 인물이라고 했다.
거절당했을 때 나이가 스물이 채 안 됐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때 받은 수모를 잊지 않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중경국 현릉의 풍수를 설계해서 국운을 끌어올렸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 공로로 지금은 구경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유가에서 밀려난 사람이, 지금은 유가를 억압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건가.'
씁쓸한 아이러니였다.
거절당한 자리에 대한 원한을 품고, 그 원한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지방 소과에서 유가 쪽 인재가 튀어나오는 걸 순순히 봐줄 리가 없었다.
이유 없는 관심이 아니었다.
지역 소과 성적 하나에까지 신경을 쓰는 구경이라면, 분명 뭔가 계산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문서를 정리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일단 이 사람 데이터부터 모아야겠네."
방 안 호롱불이 다 타들어가서 심지가 지지직 소리를 냈다.
앞으로 서원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남도현이라는 이름이 그 앞을 가로막는 첫 번째 벽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벽이면 그냥 벽이지, 왜 하필 상단 자금줄까지 손대는 벽이냐고.'
창밖으로 달이 유독 낮게 걸려 있었다.
그 달빛 아래서, 나는 아직 만나본 적도 없는 그 남도현이라는 사람의 그림자가, 벌써 내 방 안까지 스며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