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빅데이터 서생, 천하를 읽다

3화

합격 소식이 퍼진 지 열흘쯤 지났을 때였다. 동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게 바뀌어 있었다. 처음엔 그냥 부러움이었다. "상단집 아들이 소과 일 등이라니, 세상 참 좋아졌네." 이런 식의 말들. 그땐 나도 어깨가 좀 펴지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면 데이터상으로도 나쁘지 않은데.' 그런데 열흘쯤 지나니까 톤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겸이가 정말 그렇게 잘했다는데, 그게 진짜 실력이겠어?" 시장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벌써 시작이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등 뒤에서 말소리가 이어졌다. "상인가 아들이 관료 자제들 다 제치고 일 등을 했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게, 요즘 상단이 돈을 좀 만졌다던데." 또 다른 목소리. "돈 좀 만졌으면 관아에 좀 뿌렸을 수도 있지, 뭐." 나는 못 들은 척 지나갔지만 속에서는 데이터가 착착 돌아가고 있었다. '소문이 퍼지는 속도, 그리고 그 소문의 방향성이 문제네.' 단순히 놀랍다는 화제성이 아니라, 이제는 매수 의혹이라는 방향으로 정확히 꺾이고 있었다. 게다가 그 방향이 너무 깔끔했다. 누가 일부러 각도를 잡아준 것처럼. '……이거 자연 발생한 소문 맞나?' 시장을 벗어나는 동안 세 군데에서 비슷한 톤의 말을 더 들었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구조는 똑같았다. 상단 - 돈 - 관료 자제 - 억울함. 누가 대본이라도 짜준 것 같은 반복성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 얼굴이 사색이었다. "겸아, 큰일 났다." 아버지가 손을 떨며 말했다. "관아에서 사람이 다녀갔다." 아버지가 목소리를 낮췄다. "소과 성적에 대해 몇 가지 확인할 게 있다고 하더구나." [경고: 조사 개시 확률 상승 - 위험 단계] 또 저 문장이었다. 이젠 진짜 심각한 순간에만 저게 뜬다는 걸 알았다. '슬슬 게임 오버 루트로 들어가는 건가.' 웃을 상황이 전혀 아닌데 습관처럼 속으로 딴지를 걸었다. 근데 이번엔 웃음이 잘 안 나왔다. 경고창 색깔이 평소보다 좀 더 진했던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이겠지.' "아버지, 그 사람이 뭘 확인하겠다고 했습니까?" 나는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그, 그냥 시험 답안지랑 채점 과정을 다시 본다고 하더구나." 아버지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채점관들 이름도 물어보고, 시험장에 있던 사람들 명단도 달라고 하고." '명단까지 요구했다고?' 이건 그냥 형식적인 확인이 아니었다. 누군가 진짜로 뭔가를 캐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버지, 조사에 응하실 때 절대 먼저 말을 많이 하지 마십시오." 나는 최대한 냉정하게 말했다.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트집 잡힐 부분이 늘어납니다." "묻는 것에만 정확하게, 짧게 답하시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시면 됩니다." "……그, 그래. 알겠다." 아버지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손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평생 장사만 하던 사람한테 '조사'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얼마나 큰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이건 나 혼자 데이터만 굴려서는 못 풀겠는데.' 그날 저녁, 노점상을 하는 조달구 아저씨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조달구 아저씨는 원래 면 장사를 하는 노점상이었는데, 나랑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어렸을 때 배가 고프면 몰래 면 한 그릇씩 말아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이겸아, 큰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조달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소문이 벌써 거기까지 갔어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시장 바닥에서 소문 도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아직도 모르는구나." 조달구가 씁쓸하게 웃었다. "네가 시험 붙었다는 얘기 돈 지 하루도 안 돼서 국밥집 아줌마가 알고 있더라." '……그럼 지금 이 매수 의혹도 그 정도 속도로 퍼졌다는 거네.' 등골이 다시 서늘해졌다. "아저씨,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뭐든 말해봐라.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면." 조달구가 흔쾌히 대답했다. '……이 사람이라면.' 조달구 아저씨는 노점상이었지만 정보통으로 유명했다. 시장 어귀에서 오가는 온갖 소문, 관아 사람들의 뒷이야기까지 다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문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누가 뭘 알고 있는지, 그런 건 관아 서기보다 이 사람이 더 정확했다. "관아 조사관 중에 혹시 아는 사람 있으세요?" 나는 물었다. "조사관? 있지, 김 서기라고 하는 사람인데." 조달구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 양반이 원래 지난 전쟁 때 우리 부대에 있었다." 지난 전쟁이라는 말에 나는 귀가 쫑긋했다. 조달구 아저씨는 원래 젊었을 때 국경 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옛날에 좀 굴러다녔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듣는 건 처음이었다. "지난 전쟁 얘기는 아저씨한테 처음 듣네요." 나는 흥미가 생겨 물었다. "뭐, 좋은 얘기가 아니라서 잘 안 하지." 조달구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 죽은 동료가 남긴 유언이 있었다." 조달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이 다섯으로 갈라져도, 사람 목숨값은 똑같이 매겨야 한다는 말이었지." '……이거 뭔가 서원 정세랑도 연결되는 말인데.' 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데이터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5국이 갈라진 뒤로 각 서원들이 세력을 넓히는 방식이, 결국 그 나라의 백성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조달구의 말이 무심코 짚어준 셈이었다. 상인 집 아들의 성적이 이렇게 시빗거리가 되는 것도, 결국 사람을 출신으로 계산하는 방식이 아직 안 바뀌었다는 증거고. '……그 유언 남긴 동료라는 사람,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걸 물을 때가 아니었다. "아저씨, 그 김 서기라는 분한테 저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부탁했다. "어렵지 않지. 근데 그 전에." 조달구가 목소리를 낮췄다. "진짜로 뇌물 문제, 완전히 해결된 거 맞냐?" 나는 잠시 침묵했다. '……이 사람한테는 숨길 수가 없겠네.' 조달구 아저씨의 눈빛이 평소랑 달랐다. 장난기 있던 눈이 아니라, 옛날 전쟁터에서 사람 살리고 죽이는 걸 봤을 법한 눈이었다. "완전히는 아니에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완전히 만들어야지." 조달구가 씩 웃었다. "내가 도울 테니까 걱정 마라." "김 서기한테는 내가 먼저 슬쩍 운을 띄워놓을 테니, 너는 채점 과정에 대한 증거를 최대한 모아둬." "채점관들 서명, 답안지 원본, 뭐든 상관없다. 종이로 남는 건 다 챙겨." 역시 정보통은 정보통이었다. 말투는 가벼운데 지시는 정확했다. 박수복도 옆에서 거들었다. "저도 상단 쪽 인맥이 있습니다." 박수복이 가슴을 펴며 말했다. "곡식 무역 하시는 분들 중에 관아 쪽에 발이 넓은 분들이 있거든요." "그분들 통하면 이번 조사가 어느 선에서 결정될지, 미리 냄새 정도는 맡을 수 있을 겁니다." 든든한 두 사람이 옆에 붙으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래, 이 정도면 데이터가 좀 더 모이겠네.' 솔직히 말하면, 데이터만 있다고 다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근데 이럴 때는 데이터라도 있어야 마음이 덜 흔들렸다. 계산할 게 있으면 불안할 틈이 좀 줄어드니까. 조달구 아저씨는 그 뒤로도 한참을 더 앉아서, 요즘 시장에 도는 잡다한 소문들을 하나씩 풀어놨다. 곡물 값이 오를 거라는 얘기, 옆 마을 서원에 새로 온 훈장이 성격이 고약하다는 얘기, 그런 것들 사이에 슬쩍 관아 얘기도 끼워 넣었다. "근데 겸아." 조달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요즘 중경국 구경 어른 중 한 분이 지방 서원 성적을 유심히 들여다본다는 소리가 있더라." 조달구가 지나가듯 말했다. "이름이 남도현이라던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뭔가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구경이 지방 소과 성적까지 신경 쓴다고?' 구경이라는 자리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는 나도 대략 알고 있었다. 중경국 조정에서 손에 꼽히는 고위 관료. 그런 사람이 시골 서원의 소과 성적 하나를 왜 들여다본단 말인가. '그것도 굳이 내 이름이 걸린 시험을.' 단순한 지역 화제였던 내 이야기가, 어쩐지 훨씬 더 큰 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조달구 아저씨가 대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도현.' 이름 하나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상하게도 이 이름이 앞으로 한동안 내 인생에 자주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데이터가 더 필요한데.'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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