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것은 눈을 뜨자마자 우리를 향해 움직였다.
두웅. 두웅.
바닥이 흔들릴 때마다 발밑에서 돌가루가 튀어 올랐다. 진동은 뼈를 타고 올라와 이빨까지 떨리게 만들었다. 이런 떨림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겪은 어떤 몬스터도 이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지 않았다.
"흩어져!"
준혁이 소리쳤다. 이번엔 지시가 아니라 본능적인 비명이었다. 그의 목소리에 이미 균열이 가 있었다.
파티원들이 각자 방향으로 뛰었다. 나는 벽을 따라 몸을 숨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발은 이상하게 차분히 움직였다. 살고 싶다는 감각이 오히려 몸을 냉정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것의 전체 형체가 드러났다.
식물과 짐승의 형체가 뒤섞인 무언가. 등에 거대한 꽃잎 같은 돌기가 겹겹이 자라 있다. 그 돌기들은 숨을 쉬듯 천천히 벌어지고 오므라들었다. 입이라 부를 만한 부위에서 끈적한 점액이 흘러내린다. 점액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돌바닥이 녹아내렸다.
산성이다. 저게 몸에 닿으면 그대로 끝이라는 뜻이었다.
[미확인 개체 감지 — 위협도 산정 불가]
허공에 뜬 시스템 문구가 눈앞을 스친다.
산정 불가. 학원 시스템조차 등급을 매기지 못하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공격해!"
준혁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상황을 부정하려는 사람 같았다.
지아가 방어 마법을 펼쳤다.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 결계가 펼쳐졌다. 서은이 얼음창을 만들어 던졌다. 손목이 떨리는 게 여기서도 보였다.
콰앙!
얼음창이 그것의 몸통에 부딪혔다. 그러나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그 부위의 꽃잎 돌기가 흡수하듯 얼음을 빨아들였다. 돌기가 잠시 파랗게 빛나더니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마력을... 먹었어?"
지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마력을 흡수하는 몬스터라니. 그렇다면 마법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거대한 팔 같은 줄기를 휘둘렀다.
콰드득!
한 명이 그대로 튕겨 날아갔다. 이름도 모르는 파티원이었다. 벽에 부딪힌 몸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무기가 손에서 떨어져 데구르르 굴렀다.
"정우야!"
서은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방금까지 옆에서 웃고 있던 사람이었을 텐데, 이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두 번.
또 다른 줄기가 지아를 노렸다. 그녀가 방어막을 세웠지만 서걱, 종잇장처럼 뜯겨 나갔다. 비명이 짧게 끊겼다.
세 번.
줄기 끝에서 뻗어 나온 가시가 서은의 다리를 관통했다. 그녀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붉은 피가 돌바닥을 적셨다. 다리를 부여잡은 손가락 사이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이런 게... 68층이라고?"
준혁이 이를 악물며 뒤로 물러났다. 검을 쥔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파티를 이끌던 리더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벽 틈에 붙어 그 광경을 지켜봤다.
움직일 수 없었다. 마력이 없는 나로서는 저 앞에 나서는 순간 그대로 끝이었다. 대신 눈으로, 오직 눈으로 그것의 움직임을 쫓았다.
공격은 무작위가 아니었다. 가시가 뻗어 나오기 전, 꽃잎 돌기 하나가 항상 먼저 열렸다. 예열 같은 동작. 패턴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정우가 당했을 때도 돌기가 먼저 열렸다. 지아가 당했을 때도. 서은이 당했을 때도. 세 번 모두 같은 순서였다. 돌기 개방, 그리고 반 박자 뒤 공격.
하지만 그 관찰을 전할 시간이 없었다.
"...서은아."
지아가 쓰러진 서은에게 다가가려다 그대로 다리를 붙잡혔다. 줄기가 그녀를 그대로 끌어당겼다. 비명이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돌기 사이로 그녀의 형체가 사라지는 걸 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있었다.
남은 건 준혁과 나뿐이었다.
"준혁 선배, 저쪽 꽃잎이 열리는 순간에 회피하면—"
패턴을 말하려 했다. 지금이라도 알려주면 살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닥쳐!"
그가 소리쳤다. 눈이 초점을 잃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을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품속에서 원판과 다른, 손바닥만 한 금속 조각을 꺼냈다. 표면에 정교한 마법 문양이 새겨진 물건이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학원에서 지급받은 던전 원판과는 확실히 다른 재질이었다.
"그건 뭡니까."
"...일인용 귀환석이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일인용. 한 사람만 살아 나갈 수 있는 물건.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다. 있다면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을까.
"선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억지로 짜냈다.
"이건 애초에 이런 위험한 임무엔 대비용으로 지급되는 거야. 지휘관용으로."
"지휘관은 저인데요."
명목상으로는 내가 이 파티의 리더였다. 학원 규정에 따라 배정된 직책이었지만, 그것도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가 웃었다. 뒤틀린 웃음이었다. 입가만 웃고 눈은 웃지 않는, 그런 웃음이었다.
"아니, 오늘부터는 아니야. 이 사태는 네가 만든 거야, 이도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던전에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지휘를 맡은 건 내가 아니었다. 준혁이 코스를 정했고, 진입 시점도 그가 결정했다. 하지만 반박할 틈도 없었다.
그가 귀환석을 발밑에 내려쳤다.
빛이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은은한 빛이 그의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위로 번져 올라갔다.
"이 던전 이상현상, 애초에 지휘 미숙으로 보고할 거다. 넌 여기서 죽은 걸로 처리될 거고."
"선배!"
내 목소리가 공동 안에 울렸다. 그것이 그 소리에 반응하듯 고개를 돌리는 게 시야 끝에 걸렸다.
빛이 정점에 달했다. 그의 형체가 흐려진다.
"살아 있어도 상관없어. 아무도 안 찾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그는 사라졌다.
빛이 사그라들고 난 뒤 남은 건 텅 빈 공동, 쓰러진 정우, 사라진 지아와 서은, 그리고 나 혼자였다. 그리고 그것.
노란 눈동자가 나를 향해 천천히 돌아왔다.
돌기들이 하나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예열 동작. 다음 공격이 나를 향한다는 뜻이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