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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번쩍. 눈을 떴을 때, 강신은 낯선 공간에 서 있었다. 하늘이 없었다. 대신 뭉게뭉게 흐르는 회색빛 안개가 사방을 채우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발밑은 단단했다. 돌바닥 같은 감촉이었다. 차가운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먼지도 없고, 습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 [미지의 훈련장에 진입했습니다.] 대괄호 문구가 허공에 떠올랐다. 강신은 눈을 껌뻑였다. 이거 뭐야, 시스템창이야? 손을 뻗어 문구를 만져봤다. 아무 감촉도 없었다. 손가락이 그대로 문구를 통과했다. 이게 게임 시나리오랑 관련 있는 건가.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뭐가 어떻게 됐는지 정리가 안 됐다. 방금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던 것 같은데. 안개 저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구두 소리였다. 발소리는 규칙적이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강신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싸울 준비도 안 됐는데. 안개를 뚫고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키가 크고 자세가 곧았다. 손에는 진검을 들고 있었다. 칼날에서 은은한 빛이 흘렀다. 나이는 스물이 안 돼 보였다.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강신을 훑어봤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눈빛이었다. 너였구나. 강신은 경계했다. 누구세요. 여자는 검을 어깨에 걸쳤다. 서은채. 이 훈련장의 관리자야. 네가 첫 번째로 들어온 자다. 강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 첫 번째라니, 뭘. 이 세계에 초대받은 사람들 중에서. 서은채는 팔짱을 꼈다. 너는 재능이 있어. 아니, 정확히는 근성이 있어. 강신은 헛웃음을 지었다. 근성? 나 검술 완전 못하는데. 알아. 저랬던 자세, 형편없는 근력, 다 봤어. 서은채의 말투는 시니컬했다. 그런데 왜 넌 계속 일어났지. 강신은 대답하지 못했다. 일어나야 하니까.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죽지 않으려면 힘을 얻어야 했다. 게임 시나리오가 시작되기 전에, 淫魔로 낙인찍히기 전에.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데. 서은채가 검을 앞으로 겨눴다. 관문을 통과해야 이 세계에 정착할 수 있어. 관문이 뭔데요. 나랑 겨루는 거야. 강신은 미간을 좁혔다. 검이 없는데요. 서은채가 손을 휙 저었다. 허공에서 목검 하나가 나타나 강신의 손에 떨어졌다. [임시 무장이 지급되었습니다.] 대괄호가 다시 떠올랐다. 강신은 목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형편없는 자세였다. 무게중심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서은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시작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은채가 움직였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채앵. 목검이 부딪혔다. 손목이 저려왔다. 강신은 뒤로 밀렸다. 버텨야 해. 연무장에서 늘 하던 것처럼, 다시 밀리고, 넘어지고. 하지만 이번엔 일어났다. 서은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시 검이 부딪혔다. 다시 밀렸다. 다시 일어났다. 몇 번이고 반복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팔이 후들거렸다.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목검을 쥔 손바닥에서 피가 났다. 나무 파편이 박힌 모양이었다. 그래도 강신은 목검을 놓지 않았다. 죽어도 안 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채앵. 채앵. 칼과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안개 속에서 반복됐다. 서은채의 움직임에는 낭비가 없었다. 정확했고, 빨랐다. 강신은 그저 버텼다. 막고, 밀리고, 쓰러지고, 일어나고.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포기했다. 서은채가 검을 멈췄다. 됐어. 강신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 시야가 흐려졌다. 끝났어요? 관문은 통과했어. 서은채가 검을 내려놓았다. 스무 번 넘게 쓰러졌는데도 계속 일어났으니까. 강신은 헐떡이며 물었다. 그게 기준이에요? 대부분은 세 번 만에 그만둬. 서은채의 목소리에 미묘한 감정이 섞였다. 오랜만에 재밌는 녀석이 왔네. 강신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손등에 흙이 묻어 있었다. 속으로는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이 세계, 진짜 훈련이 되는 거라면. 현실에서 못 얻는 힘을 여기서 얻을 수 있다면. 이건 기회다. 겉으로는 그냥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다음 수를 찾고 있었다. 여기서 뭘 얻을 수 있는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이걸로 뭘 할 수 있는지. 서은채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다음은 네 자질을 확인해야 해. 자질이요? 네가 뭘 다룰 수 있는지. 이 세계 규칙이야. 강신은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손바닥에 닿는 체온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방금까지 검을 맞대던 상대인데, 손은 따뜻했다. 곧 알게 될 거야. 서은채가 안개 너머를 가리켰다. 안개 속에서 희미한 빛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빛기둥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마치 뭔가가 반응하는 것처럼. 강신은 그 빛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뭔가 대단한 게 나오겠지. 검술 자질이 좋게 나오면, 아버지도 인정하겠지. 그런 기대를 품은 채, 빛기둥 속으로 들어섰다. 빛이 순식간에 강신을 감쌌다.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강신은 자신이 무엇을 보게 될지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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