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미확인 스탯: 노력치 0/???]
항목을 손끝으로 누르자, 짧은 설명이 떠올랐다.
[노력치는 재능치와 별개로 축적되는 숨겨진 스탯입니다. 극한의 수련을 반복할 시 상승하며, 일정 이상 축적되면 재능의 한계를 돌파합니다.]
...뭐야 이거.
이름부터 존나 성실한 척하고 있잖아.
'재능의 한계를 돌파한다니.'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혹시 오역인가 싶어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는데도, 문장은 그대로였다.
원작 강태오는 재능이 부족한 대신, 자학적인 수련으로 초월적인 힘을 얻는다고 알고 있었다.
그게 그 소설의 명대사이자 클리셰였다.
작가가 3화마다 한 번씩 "재능은 노력을 이길 수 없다"는 대사를 강태오 입에 물려주던 게 아직도 기억났다.
당시엔 그냥 국룰 전개인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설마 나한테도 그 시스템이 있는 거야?'
원작에는 없던 이 스탯이 왜 나한테만 있는지는 몰랐다.
강태오도 이런 창을 본 적 있을까?
아니면 나만 특별대우인 걸까.
'특별대우 좋아하네. 특별히 손해 보는 쪽이겠지, 아무래도.'
하지만 확실한 건, 이게 내 유일한 무기라는 사실이었다.
노력.
존나 하찮고 존나 무식한 방법.
세상 모든 자기계발서 표지에 박혀 있을 법한, 그 뻔하고 지겨운 두 글자.
하지만 15년 안에 강태오를 넘어서려면,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재능은 이미 강태오가 다 가져갔다.
나는 껄렁대는 조연 1, 혹은 극초반에 죽는 악역 3 정도의 재능치만 받은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없는 재능을 시간으로 밀어버리는 것.
나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결심했다.
강태오한테 지지 않겠다.
아니, 정확히는—
원작대로 처형당하지 않겠다.
행복하게 살아남겠다.
그러기 위해선 노력해야 했다.
지겹도록, 미친 듯이.
옛날에 야자 시간에 몰래 자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뒤통수 맞던 기억이 스쳤다.
그때도 이 정도로 절박하진 않았는데.
지금은 뒤통수가 아니라 목이 걸려 있으니까.
'그래, 노력해서 죽는 거보단 노력해서 사는 게 낫지.'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방 한쪽에 세워둔 목검을 손에 쥐어봤다.
가벼웠다.
동시에, 존나 무거웠다.
물리적인 무게가 아니라 각오의 무게였다.
츄릅.
침 삼키는 소리가 방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다음날 아침, 나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새벽 공기가 아직 다 걷히지 않아서, 마당 흙에는 옅은 서리 같은 습기가 남아 있었다.
박도윤은 이미 검을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훈련복 차림인데도 저 자세 하나만으로 '이 사람 진짜 검사구나' 싶은 느낌이 났다.
솔직히 잘생긴 것도 반칙이었다.
원작에서도 박도윤은 조연치고 과하게 잘생긴 얼굴로 묘사됐었는데, 실물로 보니 그 문장이 겸손했다는 걸 알았다.
"오늘도 기본 자세부터 하실까요?" 그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늘 그렇듯 예의가 넘쳤다.
동시에 은근한 지겨움도 묻어났다.
이 인간, 매일 똑같은 기본 자세만 시키는 것도 지겨웠던 모양이다.
"아니."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실전으로 해."
박도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 미묘한 표정 변화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다.
"도련님, 아직 실전은 무리이십니다."
"내가 무리인지 아닌지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나는 오만하게 턱을 들었다.
강태오 흉내를 낸답시고 팔짱까지 꼈다.
속으로는 '제발 봐주지 마'라고 빌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마치 세상 다 산 도련님처럼, 여유 있는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거 완전 성적표 숨기고 부모님 앞에서 여유부리는 거랑 똑같은데.'
박도윤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목검을 고쳐 잡았다.
그 한숨에서 '또 시작이네'라는 감정이 뚝뚝 묻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정면으로 오시지요."
그 말이 신호였다.
타탓!
그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거기 서 있던 것처럼,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코앞에 서 있었다.
부웅―!
목검이 옆구리를 스쳤다.
윽... 옷깃이 찢어질 뻔했다.
'뭐야, 이거 완전 진심이잖아.'
봐주는 거 좋아하네.
이 자식, 아까 그 한숨은 다 연기였나 보다.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겨우 균형을 잡았다.
숨이 벌써 턱까지 차올랐다.
'몸풀기도 안 했는데 벌써 이 지경이라니.'
두 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이번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궤적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각도가 완전히 어긋났다.
퍽!
목검 손잡이 쪽으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시야가 잠깐 하얘졌다.
나는 몇 번이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넘어질 때마다 흙먼지가 확 일어나 콧속으로 들어왔다.
흙투성이가 된 채 다시 일어섰다.
"그만 하시지요." 박도윤이 담담하게 말했다.
목소리에 걱정이 섞여 있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무덤덤한 척하고 있었다.
"아직." 나는 다시 검을 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정확히는 두들겨 맞은 게 맞았다.
이 정도면 학교 다닐 때 체육 시간에 축구공에 얼굴 맞은 것보다 더 아팠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럴수록 시야 한켠의 숫자가 눈에 밟혔다.
[노력치 1/???]
'어, 방금 올랐나?'
나는 순간 넘어졌던 것도 잊고 그 숫자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숫자 자체는 초라했다.
1이라니.
무슨 게임 시작하고 첫 몹 잡았을 때 나오는 경험치 수치도 아니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반가웠다.
'0에서 1이 됐다는 건, 오르긴 오른다는 거잖아.'
미세하게 손끝이 뜨거워지는 감각.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근육 하나가 이제야 눈을 뜨는 느낌이었다.
검을 다시 잡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검을 쥔 손목의 각도, 발의 방향, 시선의 초점.
전부 아까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내가 의식해서 바꾼 게 아니었다.
몸이 스스로 정렬한 거였다.
박도윤이 움직이는 궤적이, 방금 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거... 뭐지?'
느려진 게 아니었다.
내 눈이 좋아진 거였다.
마치 저화질 화면을 보다가 갑자기 고화질로 바뀐 느낌이랄까.
박도윤이 다시 달려들었다.
부웅―!
이번엔,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생각보다 먼저 발이 움직였고, 검이 그의 목검을 정확히 받아냈다.
타앙!
둔중한 충돌음이 훈련장에 울렸다.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 팔뚝 전체를 얼얼하게 만들었지만, 그 통증조차 낯설게 짜릿했다.
박도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도련님?"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섞였다.
늘 여유 있던 그 얼굴에 균열이 생긴 걸 보는 게, 이상하게도 뿌듯했다.
나도 놀랐다.
방금 그건, 내가 의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몸이 알아서 반응한 거였다.
'설마 이게 노력치 효과인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확실히 느꼈다.
뭔가 바뀌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박도윤이 검을 고쳐 잡으며 한 발 물러섰다.
그의 눈빛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방금까지는 '오냐, 몇 번이고 넘어져 봐라'하는 여유가 담겨 있었는데.
지금은 뭔가를 재는 듯한, 조심스러운 눈빛이었다.
"도련님, 방금... 그건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가 목검을 늘어뜨린 채 물었다.
존댓말인데도, 왠지 취조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애써 여유로운 척, 씩 웃었다.
"글쎄. 몸이 좋아서 그런가?"
물론 속으로는 나도 미친 듯이 당황하고 있었다.
'나도 몰라, 나도 지금 놀랐다고.'
박도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 침묵이 훈련장의 서늘한 공기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마치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그의 시선이 내 검과 자세, 그리고 눈동자를 차례로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정말로."
말을 끝맺지 않은 채, 그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이번엔 아까와는 전혀 다른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