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냉혈 후작의 착취 일지

5화

그날 이후로 나는 유은설을 조금씩 살펴보게 됐다. 관찰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어쨌든 신경이 계속 갔다. 그녀가 뭔가를 실수했을 때 반응이 유독 격렬했으니까. 접시 하나 깨뜨리고 죄송하다고 무릎을 꿇던 뒷모습. 그게 자꾸 눈앞에서 재생됐다. 전생 버릇인지 뭔지, 한 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이 여기서도 그대로였다. 일주일이 지났다. 청소 담당으로 뽑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들어왔다. 요리사도 새로 구했다. 저택은 조금씩 다시 사람 사는 곳처럼 변해갔다. 먼지가 걷히고, 창문이 다시 투명해졌다. 회색이었던 커튼이 세탁을 거쳐 원래 색인 짙은 초록으로 돌아왔다. 응접실 바닥의 대리석도 원래 색을 찾아서, 밟을 때마다 광이 났다. 며칠 전까지 곰팡이 냄새가 나던 복도에서 이제는 밀랍 향이 났다. 사람 사는 곳이 이렇게 빨리 변하는구나. 신기했다. 급여는 시세보다 넉넉하게 줬다. 계산이라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사실은 좀 다른 이유도 있었다는 걸 이제는 인정한다. 전생에 내가 못 받은 걸 여기서 대신 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야근 수당도 없이 부려지던 회사원의 망령이 아직 몸 어딘가에 붙어 있는 게 분명했다. 사용인들이 급여를 받고 놀란 얼굴로 몇 번씩 확인하는 걸 볼 때마다, 나는 괜히 속으로 흡족해했다. 이게 뭐 대단한 선행도 아닌데, 그냥 정상적인 대가를 준 것뿐인데 다들 왜 이렇게 감동을 하는지. 그만큼 이 세계 기준이 낮았다는 뜻이겠지. 유은설에게는 특히 더 신경이 갔다. 그녀는 하루에 쉬는 시간을 거의 안 썼다. 다른 사용인들이 점심시간에 앉아서 쉴 때도 그녀는 서서 다음 일을 준비했다. "유은설. 밥은 먹었어?" "예, 먹었습니다." "앉아서 먹었어?" "...서서 먹었습니다." 와. 서서 밥을 먹는다고? 이 세계 기준으로도 그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쉬어." "괜찮습니다." "쉬라고." "...예." 앉긴 앉았는데 오 분도 못 견디고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갔다. 습관이라기보다 강박 같았다. 쉬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몇 번이나 붙잡고 싶었다. 붙잡아서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한번은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그녀가 걸레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봤다. 손목이 아니라 팔 전체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걸레질을 시작했지만, 나는 그 떨림을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손 떨리는데." "괜찮습니다." 또 저 소리. 저 여자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 절반이 저거였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세 마디만 로테이션 돌리는 것 같았다. 결국 의사를 불러 그녀의 팔을 진찰하게 한 적이 있었다. 손목 흉터가 신경 쓰여서였다. 그녀는 극구 거절했다. 그날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던 것 같다. "필요 없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필요 없다는 말은 내가 하는 거야. 앉아." 나는 고용주 권한으로 밀어붙였다. 사실 권한이라기보단 그냥 우겼다. 이럴 때 신분 차이라는 게 편하긴 하더라. 의사가 소매를 걷었을 때, 흉터는 손목뿐이 아니었다. 팔 전체에 오래된 화상 자국과 채찍 같은 걸로 맞은 흔적이 겹쳐 있었다. 살갗이 하얗게 뒤덮인 자리도 있었고, 아직 붉은 기가 남은 자리도 있었다. 오래된 상처와 그보다 조금 덜 오래된 상처들이 층층이 쌓여서 팔 하나가 통째로 지도가 되어 있었다. 의사도 잠시 말이 없었다. 진료실에 있던 촛불 심지가 타는 소리만 들렸다. "이거, 최근에 생긴 게 아니네요. 몇 년은 된 상처들입니다." 몇 년. 몇 년이라니. 이 여자 지금 나이가 몇인데 몇 년째 이걸 달고 다녔다는 거야. 유은설은 그동안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없었다. 마치 자기 팔이 아니라 남의 팔을 보는 것처럼. "전에 일하던 백작가에서 생긴 거야?"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더 캐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게 하고, 상처 부위엔 정기적으로 연고를 발라주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그것조차 불편해했다. 연고 뚜껑을 여는 손길조차 조심스러웠다. 누가 자신에게 신경 쓰는 상황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관심이라는 게 자기한테 오면 안 되는 물건인 것처럼, 몸을 살짝 뒤로 빼면서 받았다. 그날 저녁, 방을 정리하다가 유은설의 짐 사이에서 낡은 편지 한 장을 봤다. 원래는 안 보려고 했는데, 봉투 겉면에 적힌 이름이 눈에 걸렸다. 백작가의 문양이 찍혀 있었고, '해고 통지서'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그 아래 적힌 죄목은 딱 한 줄이었다. 은접시 파손. 접시 하나. 접시 하나 깬 죄로 이 정도 상처를 입었다고?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한 줄이었다. 뒤집어봐도, 옆에서 봐도, 그냥 한 줄. 은접시 파손. 그게 전부였다. 그 뒤에 딸려오는 벌은 편지에 적혀 있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녀의 팔을 봤다. 접시 하나 깬 값이 사람 팔 하나를 지도로 만드는 거였다니. 어느 별에서는 그게 정상 시세인가 보지. 나는 편지를 다시 접어 원래 자리에 놔뒀다. 손이 떨렸다. 이건 뭐지. 이건 도대체 뭐지. 화가 난다기보단, 뭔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전생에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나 싶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났다. 이 정도로 순수하게 어이없는 폭력은 처음 봤으니까.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유은설이 서 있었다. 내가 자기 짐을 뒤진 걸 본 얼굴이었다. 표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입술이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손에 들고 있던 걸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그것도 줍지 않고, 나와 내 손에 들린 편지 사이를 번갈아 봤다. "...그건." 목소리가 갈라졌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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