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면접이라고 부르기엔 부끄러운 절차였다. 나는 그냥 저택 앞마당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서 한 명씩 이름과 경력을 물었다. 뒤에는 집사가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딱 "이게 무슨 채용 절차입니까"라고 말하고 있었다. 알아, 나도 알아. 근데 이 세계에 인사팀이 어디 있어. 서류 심사도 없고 이력서 양식도 없다. 그냥 사람이 와서 입으로 떠드는 게 전부다.
"요리 삼십 년 했습니다."
말한 사람의 얼굴을 보니 스물다섯 즈음이었다. 삼십 년을 어디서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전생에 알바 면접 볼 때 나도 엑셀 좀 다룬다고 뻥친 적 있으니까, 이 정도는 이해했다. 사람은 다 그렇게 산다.
"전 백작가에서 수석 요리사였습니다."
이 사람은 손에 굳은살이 하나도 없었다. 수석 요리사가 손이 저렇게 곱나. 나는 속으로 딴지를 걸었지만 겉으론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청소랑 잡무 몇 명 뽑는 자리에 다들 이력을 부풀리는 건 인류 공통의 습성인 모양이었다. 지구든 이 세계든 사람 마음은 똑같다.
그렇게 열댓 명을 봤다. 다들 자신 있게,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 있게 자기 경력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채점표를 그렸다. 물론 채점 기준은 딱 하나였다. 눈빛이 살아 있는가, 아니면 죽어 있는가.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여자였다.
흰머리를 어깨 위에서 자른 단발, 회색 눈동자. 옷은 깨끗했지만 낡았고, 소매 끝이 살짝 닳아 있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고개는 계속 아래를 향했고, 두 손은 앞으로 모은 채 미세하게 떨렸다.
"이름은?"
"유은설입니다."
목소리가 작았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묻힐 것 같은 목소리였다.
"경력은."
"백작가에서 삼 년 일했습니다."
"왜 그만뒀지."
대답이 없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뒤에 서 있던 집사가 살짝 눈치를 줬다. 후작님, 이만하면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시죠, 하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침묵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전생에 면접관이 왜 전 직장을 그만뒀냐고 물을 때, 나도 저렇게 입을 다물었던 적이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떨어질 것 같아서. 사장이 이상해서 그만뒀다고 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래서 그냥 "개인 사정으로"라고 얼버무렸었다. 저 침묵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짐작은 갔다.
"됐어. 안 물을게."
그 말에 유은설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처음으로 눈을 마주쳤다. 그 회색 눈동자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눈동자가 흔들렸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대답을 안 물어도 되는 상황이 낯선 모양이었다. 마치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대답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 순간 소매가 살짝 걷혀 있었다. 손목에 오래된 흉터가 보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가 겹쳐 있었다. 어떤 건 오래되어 하얗게 바랬고, 어떤 건 아직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못 본 척했다. 지금 여기서 그걸 언급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내일부터 나와. 청소랑 잡무 담당으로."
"...감사합니다, 후작님."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그 각도가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몸에 새겨진 습관 같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나오는 동작. 로봇도 저렇게 정확하게 숙이진 않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집사가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후작님. 이력을 보면—"
"괜찮아. 일 잘하잖아, 저 각도만 봐도."
집사는 뭐라 더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도 이게 정상적인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저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음 날, 유은설은 새벽부터 일하고 있었다. 내가 눈뜨기도 전에 복도를 다 쓸어놨고, 벽난로에 불도 붙여놨다. 창문까지 다 닦아놨는데 유리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했다. 시킨 적 없는 일까지 다 해놨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이 아닌데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잠깐 멍하니 그녀를 봤다. 이건 뭐지. 뭐긴 뭐야, 문제가 있는 거지.
"아니, 잘했다는 뜻이었는데."
"...감사합니다."
이번엔 감사하다고 했다. 방금 전엔 죄송하다고 하고, 지금은 감사하다고 한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저 두 단어를 골라 쓰는지 감이 안 잡혔다. 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처음이니까, 익숙해지면 나아지겠지.
오전 내내 유은설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걸레를 들고 복도를 오가고, 정원에서 낙엽을 쓸고, 벽난로에 장작을 채우고. 나는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몇 번이나 흘겨봤다. 저 정도면 쉬는 시간을 강제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점심 무렵, 그녀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접시를 놓쳤다.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소리가 저택 전체에 울렸다. 딱 한 번, 짧고 날카로운 소리였는데 그게 마치 유리창이 통째로 깨진 것처럼 크게 들렸다.
그 순간 유은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방금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던 사람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접시 조각들 사이에 이마를 박을 듯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목소리가 떨렸다. 몸도 떨렸다. 손끝부터 어깨까지 전부. 접시 하나 깬 것치고 반응이 지나쳤다. 전생에 나도 물류창고에서 물건 하나 깨뜨리면 시급에서 까였다. 그래도 이 정도로 떨진 않았다. 시급 까이는 게 억울했지 목숨이 위협받는 것처럼 떨진 않았다는 말이다.
"괜찮아. 접시가 문제야?"
"...아닙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몸은 계속 떨었다. 어깨가 들썩였고, 바닥에 짚은 손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몸을 낮춰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일어나. 다치기 전에."
"...예."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시선은 바닥에 박혀 있었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이 반응은 접시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이건 접시가 아니라 훨씬 더 오래된, 훨씬 더 깊은 무언가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게 뭔지, 나는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