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오두막으로 돌아온 나는 어깨의 상처를 치료받은 뒤 침대에 걸터앉았다.
창밖으로 저녁 햇살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장작 소리만이 낮게 울렸다.
[주인님, 상처는 이틀 정도면 아물 것입니다.]
라비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고마워, 라비."
나는 어깨를 감싼 붕대를 손끝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아릿한 통증이 스쳤다가 금세 가라앉았다.
무릎을 감싸 안고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붉은 빛이 방바닥에 길게 드리워졌다.
서찰은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접힌 모서리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아까 몇 번이나 펼쳐 읽었던 흔적이었다.
(왕립 귀족학원이라니...)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십 년 전, 그 저택을 떠나던 날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차가운 복도, 등 뒤에서 들려오던 낮은 목소리.
"괴물."
그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밖에서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다.
곧이어 문이 벌컥 열렸다.
쾅.
"하린!"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은서였다.
숨을 몰아쉬며 문턱에 서 있는 그녀의 흑발이 웨이브를 그리며 흩날렸다.
초록빛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말을 급하게 몰고 온 듯, 뺨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괜찮은 거야? 소식 듣고 바로 달려왔어."
그녀는 신발을 벗을 새도 없이 성큼 다가왔다.
그녀 뒤로 빈과 록도 뒤따라 들어왔다.
빈은 대검을 등에 멘 채 성큼성큼 걸어왔고, 록은 조용히 문가에 서서 나를 살폈다.
셋 다 급히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
"어깨 다쳤다고 들었는데."
빈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의 시선이 붕대 감긴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별거 아니야. 이틀이면 나아."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은서가 내 옆에 앉아 어깨를 조심스레 살폈다.
그녀의 손끝이 붕대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진짜 조심해야지. 매번 이렇게 무모하게..."
목소리에 원망보다 걱정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돌봐줘서 고마워."
나는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은서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왕명 소식도 들었어. 학원 강제 입학."
그 말에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빈과 록도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록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낀 자세로 나를 응시했다.
"이번 왕명은 예외 없는 전면 시행이라던데. 우리도 이미 재학 중이니 딱히 상관없지만, 하린 넌..."
록의 말이 잠시 끊겼다.
침묵이 흘렀다.
벽난로의 장작이 타는 소리만 낮게 울렸다.
"...너한테는 다른 의미겠지."
나는 침묵했다.
서찰을 쥔 손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빈이 팔짱을 끼며 낮게 말했다.
"그 집안 얘기라면, 우리도 알고 있어. 어머니께 들었으니까."
노시라, 은서와 빈, 록의 어머니는 백작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내 사정을 알고 있었고, 은밀히 나를 지원해주고 있었다.
십 년 전 그 저택에서 쫓겨나듯 나오던 나를 거둔 것도 그녀였다.
"왕도 학원 안에는 여러 파벌이 있어."
록이 설명을 이어갔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눈빛만은 진지했다.
"1왕자파, 2왕자파, 그리고 중립을 표방하는 귀족가 연합. 네 생가는..."
나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목이 조금 말라오는 것 같았다.
"1왕자파 핵심 가문이야. 그리고 학원 내에서도 영향력이 상당해."
심장이 조금 무겁게 뛰었다.
(그 집안이... 그렇게까지 관여되어 있었나.)
머릿속으로 예전 저택의 문장이 떠올랐다.
붉은 매를 새긴 가문의 인장.
그 아래서 자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흐릿했지만, 그 인장만큼은 선명했다.
"1왕자파라면... 학원 안에서도 세력이 크다는 뜻이잖아."
내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맞아. 그것도 상당히."
빈이 대검의 손잡이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답했다.
"그러니까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거지. 학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넌 이미 그쪽 시선 안에 들어가는 거야."
록이 덧붙였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라. 네가 어디서 자라왔는지."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은서가 내 손을 다시 잡았다.
손을 감싼 그녀의 손바닥이 따뜻했다.
"걱정 마. 우리가 있잖아."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학원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우리가 네 편이야."
빈이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졸업했다고 완전히 손 놓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 부르면 온다."
"그건 나도."
록이 짧게 동의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십 년 동안 이 변경에서 만난, 유일한 또래 친구들이었다.
저택에서 쫓겨난 뒤 아무도 없던 자리에, 어느 순간부터 이 셋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어깨의 통증도 잠시 잊을 만큼, 온기가 방 안 가득 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생부모와 오라비를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여전히 괴물이라 부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창밖으로 저녁 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흔들었다.
바람 속에 섞인 마수림 특유의 축축한 냄새가 방 안으로 잠깐 스며들었다.
록이 나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
"만약 그 집안에서 너를 다시 받아들이려 한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으로 저녁 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흔들었다.
방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은서도, 빈도 아무 말 없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겠어."
나는 결국 그렇게만 대답했다.
목소리가 스스로 듣기에도 낮고 힘없이 들렸다.
그 말끝에 담긴 무게를, 세 사람 모두 조용히 느끼는 듯했다.
누구도 더 캐묻지 않았다.
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일단 오늘은 쉬어. 상처도 그렇고."
"그래. 무리하지 말고."
은서가 내 어깨를 다시 한번 살피고는 조심스레 손을 뗐다.
록은 문가에서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말없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밤이 깊어지고, 친구들이 돌아간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수림 너머로 별빛이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다.
벌레 울음소리가 낮게 이어지다가, 이따금 뚝 끊기곤 했다.
[주인님, 아직 안 주무십니까.]
라비가 조심스레 물었다.
"조금 더 있다가."
나는 서찰을 다시 손에 들었다.
종이의 결이 손끝에 닿았다.
붉은 인장이 여전히 선명했다.
왕도로 가는 길이, 결국 나를 그 집안 앞으로 다시 데려다 놓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