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버려졌더니 마수림 최강자

3화

마물의 몸에서 뿜어지는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실었다. (피할 수 없으면 막아야 해.) 빛의 검을 양손으로 고쳐 쥐고, 나는 그대로 마력을 밀어 넣었다. 검신이 더 밝게 타올랐다. 푸른빛이 손끝을 타고 올라와 팔뚝까지 번졌다. 마물의 눈이 붉게 빛났다. 비늘로 덮인 골격 위로 검은 안개가 갑주처럼 뒤덮여 있었고, 그 틈으로 드러난 살가죽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붉게 짓물러 있었다. 숲의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평소라면 평온하게 들렸을 그 소리가, 지금은 어딘가 삐걱거리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주인님, 마물의 마력 반응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알아. 느껴져.) 나는 짧게 대답 대신 숨을 들이켰다. 마물이 앞발을 크게 들어 올렸다. 발끝의 검은 발톱이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쾅. 앞발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충격이 팔을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무릎이 살짝 꺾였다. 어깨에서 뜨거운 통증이 확 번졌다. (무겁다. 이렇게까지...)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발끝이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흙이 신발 안으로 밀려 들어왔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주인님, 이대로는 검신의 마력 부하가 임계치에 도달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팔이 후들거렸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빛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마물이 나를 짓누르듯 발에 힘을 더 실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 숲 저편에서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주인님, 다수의 인원이 접근 중입니다.] 나는 흘긋 그쪽을 살폈다. 갑주를 입은 병사들의 대열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말들의 발굽이 흙을 튀기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그 선두에 선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나는 작게 숨을 삼켰다. 노현도 백작이었다. "물러서라."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숲을 갈랐다. 그 한마디에 마물이 짓누르던 발의 힘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옆으로 비틀며 검을 회수했다. 백작은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손을 뻗어 마력을 발산했다. 푸른빛의 창들이 순식간에 형성되어 마물을 향해 날아들었다. 퍽퍽퍽. 연속으로 박히는 소리가 울렸다. 마물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검은 안개가 순간적으로 흐트러지며, 그 아래 드러난 상처에서 검은 피가 스며 나왔다. 나는 자세를 다시 잡았다. 발끝으로 지면을 밀어내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검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마물의 앞발 하나가 잘려 나갔다. 검은 피가 튀었다. 얼굴에 튄 피가 뜨겁게 느껴졌다. 마물은 낮게 울부짖으며 숲 안쪽으로 도주했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정적이 흘렀다. 숲의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만이 다시 들려왔다. 방금까지 이질감을 품고 있던 그 소리는, 이제 다시 평온한 배경으로 돌아와 있었다. 병사들이 주변을 둘러싸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백작이 말에서 내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발소리가 흙을 밟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괜찮으냐."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단정했다. 나는 어깨의 상처를 손으로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백작은 내 어깨를 잠시 살피더니, 표정을 살짝 굳혔다. 상처 주변의 옷이 검붉게 젖어 있었다. "괜찮다는 말은, 그 몸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가 곁에 선 병사에게 손짓했다. "치료병을 불러라." 짧고 단정한 지시였다. 병사가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후, 치료병이 다가와 상처에 하얀 천을 대고 압박을 가했다. 따끔한 통증이 다시 올라왔지만 나는 숨을 삼키며 참았다. 백작은 그 옆에 서서 내가 치료받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십 년 전, 나를 이 변경으로 데려와 준 사람이었다. 부모도, 오라비도 나를 괴물이라 부르며 버렸을 때,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날도... 이런 눈으로 나를 봤었지.) 세 살, 마력이 처음 폭주했던 그 밤. 불타는 저택 한가운데서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나를 향해 걸어온 사람이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그 생각을 하는 사이, 백작이 품에서 봉인된 서찰을 꺼냈다. 서찰의 붉은 봉인 인장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하린." 그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나는 치료를 받던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서 평소의 단정함 대신, 미묘한 망설임이 스치는 게 보였다. "왕도에서 명이 내려왔다." 나는 긴장하며 그를 마주 보았다. 심장이 조금씩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모든 귀족가의 자제는 열세 살이 되는 해에 왕립 귀족학원에 입학해야 한다는 왕명이다."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너도 예외가 아니다." 숲이 다시 조용해졌다. 바람이 잎사귀를 흔드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 소리가 조금 전보다 훨씬 멀게 느껴졌다. 나는 그 서찰을 받아 든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왕도라니. 그 집안이 있는 곳으로...) 생부와 생모, 그리고 오라비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나를 괴물이라 부르던 그 눈빛이 여전히 선명했다. 불타는 저택, 등을 돌리는 발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 기억은 조금도 낡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그곳에 가면... 다시 그 얼굴들을 봐야 하는 걸까.) 백작은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거부할 수 있는 명이 아니다.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 그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바라보며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이 사람은... 언제나 나를 위해 방법을 찾아줬어.) 그가 처음 나를 데려왔을 때도 그랬다. 왕도의 귀족들이 손가락질하며 나를 받아주지 않으려 할 때, 백작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나를 이 영지로 데려왔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그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거두어 주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늘 동경과 함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느꼈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 가족이라는 온전한 울타리 같은 것. 치료병이 상처에 붕대를 마무리로 감아주고 물러났다. 나는 조여오는 붕대의 압박을 느끼며, 서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나는 간신히 그렇게 대답했다.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그의 손은 크고 단단했지만, 닿는 순간의 무게는 이상하게도 조심스러웠다. "천천히 생각해라. 답은 급하지 않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병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병사들이 대열을 정비하며 숲의 경계를 넓혀갔다. 백작이 다시 말에 오르기 전, 나를 향해 한 번 더 시선을 던졌다. 그 눈빛 속에서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말발굽 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백작의 뒷모습이 숲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 소리가, 오늘은 유독 크게 들렸다. 나는 손에 든 서찰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봉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직 뜯지도 않은 그 안에, 내 앞으로 던져질 미래가 담겨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품 안에 든 서찰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주인님, 심박수가 평상시보다 상승했습니다. 안정이 필요하십니다.] 나는 그 말에도 대답하지 못한 채, 서찰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 숲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직 그 어떤 고요함도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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