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 불꽃을 본 뒤로, 나는 박현 할아버지가 그저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날 밤 손끝에서 피어오르던 푸른 불꽃은, 아궁이 불빛과는 전혀 다른 색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흔들렸고, 손을 대도 뜨겁지 않았다.
'저건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잿빛골에서는 특이한 사람일수록 표적이 되기 쉽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말 한마디가 잘못 퍼지면 그 사람은 사라지고,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일을 이미 두어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여느 때처럼 골목으로 향했다.
품에는 어제 남은 감자 두 알과 물 한 병을 챙겨 넣었다.
박현 할아버지가 늘 앉아 있던 자리에는, 벽에 등을 기댄 흔적처럼 흙바닥이 둥글게 눌려 있었다.
나는 그 흔적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골목 입구에 낯선 사람 셋이 서 있었다.
모두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얼굴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었다.
망토 자락은 길어서 발목까지 덮었고, 걸을 때마다 먼지 하나 일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한 명의 허리춤에는 검이 있었는데, 손잡이에 은빛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은 동그란 원 안에 별 모양이 박힌 형태였는데, 나는 그런 검을 잿빛골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 사람들, 뭐지.' 나는 담벼락 뒤에 몸을 숨긴 채 지켜봤다.
담벼락은 차갑고 축축했고, 등에 닿는 느낌이 소름 끼쳤다.
"이 근방에서 노인을 봤다는 자가 있었다." 한 명이 낮게 말했다.
"머리가 하얗고, 오른손에 팔찌를 찬 자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박현 할아버지를 찾고 있어.'
손에 쥐고 있던 감자를 놓칠 만큼 손이 떨렸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골목 뒤로 돌아갔다.
박현 할아버지가 늘 앉아 있던 그 자리에는 이미 그가 없었다.
'어디 갔을까.' 나는 골목 곳곳을 뛰어다니며 살폈다.
우물가도 들여다보고, 빵집 뒷골목도 지나쳤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나는 창고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결국 나는 그를 낡은 창고 뒤편에서 찾아냈다.
그는 벽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고, 오른손에 차고 있던 팔찌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이에요?" 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박현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곳이... 없다." 그가 힘겹게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고, 다리는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창고 옆에는 낡은 빈 수레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바퀴 하나가 빠져 있어서 오래 방치된 것처럼 보였지만, 사람 하나쯤 들어갈 만한 공간은 충분했다.
"이 안으로 들어가세요." 내가 말했다.
박현 할아버지는 힘겹게 수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몸을 접듯이 구겨 넣는 모습에, 나는 그가 얼마나 지쳤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위에 널려 있던 낡은 그물과 짚더미를 끌어다 덮었다.
그물에서는 오래된 생선 냄새가 났고, 짚더미는 손에 닿을 때마다 부스러졌다.
그리고 그 옆에 아무렇지 않은 척 주저앉아, 그릇을 앞에 내려놓았다.
그릇에는 아까 챙겨온 감자를 꺼내 담았고, 나는 그걸 천천히 씹는 척했다.
심장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처럼 뛰고 있었지만, 얼굴은 최대한 무표정하게 유지했다.
잠시 후, 검은 망토를 두른 자들이 창고 근처까지 다가왔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나는 그릇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거기 꼬맹이." 한 명이 나를 향해 말했다.
그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고, 두건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가까웠다.
"이 근처에서 노인 하나 못 봤느냐." 그가 물었다.
나는 심장이 터질 듯 뛰었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못 봤어요..." 내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릴까 봐, 나는 일부러 감자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거지들이 이 근방에 많이 산다던데." 다른 한 명이 말했다.
그는 수레를 슬쩍 쳐다봤고, 나는 그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쓸모없는 애다, 가자."
그들은 나를 향해 침을 뱉듯 코웃음을 치고는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하나씩 멀어질 때마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할 때까지, 나는 감자를 손에 쥔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내뱉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수레 속에서 박현 할아버지가 짚더미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눈빛만은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
"고맙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오늘 잡혔을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였다.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게 아려왔지만, 그게 무슨 감정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박현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줬다.
우리는 창고 뒤편,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좁은 틈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별빛 하나 없는 하늘이 유난히 낮게 느껴졌다.
"나는... 예전에 대현자라 불렸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무게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대현자... 그게 뭘까.'
나는 그 단어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박현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침묵이 길게 이어질수록, 나는 괜히 숨을 죽이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오래된 원한이다." 그가 말했다.
"너는 몰라도 된다."
나는 그 말에 서운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가 나를 지키려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왜 말 안 해주는 거지. 나도 알고 싶은데.'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박현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오른손에 찬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그 팔찌는 낡고 흠집이 많았지만, 은빛 문양만은 여전히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문양이 아까 그 검의 손잡이에 새겨진 것과 똑같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저 사람들이 쫓는 게, 저 팔찌 때문일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등 뒤에서 낮은 발소리가 다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