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장의 죽음 징크스

3화

출격 명령이 내려졌을 때, 나는 대검을 등에 지고 있었다. 이제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이 대검을 등에 졌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냥 몸의 일부 같았다. 여전히 이상했다. 하지만 몸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머리가 이해하지 못한 걸 몸이 먼저 알아버린 느낌이었다. 숲으로 들어서는 길, 발밑에서 젖은 흙냄새가 올라왔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대열의 그림자를 잘게 쪼개놓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긴장을 씹어삼키고 있었다. 윤성민이 내 옆에서 걸었다. 그는 신병들 중에서도 유독 눈빛이 형편없이 반짝거렸다. 마치 이 숲길이 끝나면 뭔가 대단한 게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영웅이 될 거야."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 뭔가 해낼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뭘 해낸다는 생각조차 위험하게 들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몸이 굳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넌 안 그래?" 윤성민이 다시 물었다. "안 흥분돼?" "흥분되면 죽어." 내가 짧게 대꾸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앞을 봤다. 저 웃음이 언제까지 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검의 손잡이를 다시 고쳐 잡았다. 숲을 지나 협곡에 도착했을 때, 흑마군 척후병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열 명 남짓. 소규모라는 말이 사실이길 바랐다. 분대장이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다. 다들 숨을 죽였다. 협곡 사이로 부는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다. "전방 배치, 후방 대기." 분대장이 낮게 말했다. "신호 전까지 움직이지 마라." 김하늬가 활을 조용히 꺼내 시위를 당겼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나는 봤다. 저 사람도 떨고 있구나. 그런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전투는 순식간에 시작됐다. 콰앙! 첫 충돌음이 협곡을 울렸다. 김하늬가 화살을 날렸다. 하나가 명중했다. 척후병 하나가 무릎을 꺾으며 쓰러졌다. 박지훈이 창을 들고 달려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바닥을 두드리는 리듬처럼 들렸다. 나는 대검을 뽑았다. 손이 떨렸다. 한 번. 칼끝이 허공을 갈랐다. 헛스윙이었다. 상대는 이미 옆으로 몸을 틀었다. 두 번. 간신히 상대의 무기를 막았다. 손목이 저릿했다. 충격이 팔뚝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세 번. 뭔가가 몸에서 다시 움직였다. 어제 훈련장에서 느꼈던 그 이상한 감각이었다.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 그냥 낯선 손이 내 몸을 대신 조종하는 느낌. 대검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 몸이 대검의 무게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서걱. 적의 무기가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미친..." 박지훈이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야, 너 방금 뭐 한 거야?" 나도 모른다.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눈앞에 다음 적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협곡 전체에 울렸다. 카앙, 서걱, 콰앙. 소리들이 서로 겹쳐지며 하나의 소음으로 뭉개졌다. 그 안에서 나는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후방에서 새로운 기척이 나타났다. 덩치가 다른 흑마군 병사들과 확연히 달랐다. 검은 갑주, 얼굴을 반쯤 가린 가면. 존재 자체에서 압도적인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걸음걸이 하나에도 무게가 실려 있었다. "간부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 한마디에 전장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방금까지 창을 겨누던 병사들의 손이 멈칫했다. 간부라 불린 존재가 손을 들자, 주변 공기가 무겁게 짓눌렸다. 숨이 턱 막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이건 예정에 없던..." 분대장이 창백해진 얼굴로 후퇴 신호를 외쳤다. "전원 후퇴! 즉시 후퇴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간부가 지면을 밟았다. 그 순간 땅이 갈라지며 검은 파장이 퍼졌다. 콰아앙! 대열의 절반이 그대로 튕겨나갔다. 흙덩이와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누군가의 비명이 짧게 끊겼다. 나는 눕혀진 채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귀가 먹먹했다. 눈앞에서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방금까지 옆에서 창을 휘두르던 얼굴들이었다. "도훈아, 조심해!" 윤성민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검격을 대신 막아섰다. 서걱. 그의 팔에서 피가 튀었다. 붉은 방울들이 바닥에 흩어지는 걸 나는 느린 속도로 지켜봤다. "성민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물러나!" 괜찮지 않아 보였다. 팔이 반쯤 갈라진 채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 마치 이게 자신이 원하던 영웅의 순간인 것처럼. 그 웃음이 나는 무섭게 느껴졌다. "넌 왜 웃어." 내가 낮게 물었다. "모르겠어." 그가 대답했다. "그냥... 웃음이 나." 미친놈. 나는 그 말을 삼켰다. 지금은 저 웃음의 이유를 따질 시간이 아니었다. 간부는 다시 손을 들었다. 이번엔 나를 향해서였다. 뭔가가 다가온다는 감각이 온몸을 훑었다. 도망칠 수 없었다. 피할 수 없었다. 다리가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대로 끝인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동시에, 그 순간, 등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카앙! 장무결이었다. 그가 대검으로 간부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충돌의 여파로 흙바람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신병은 뒤로 물러나라."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방금 세상을 반쪽으로 가를 듯한 힘을 정면으로 받아낸 사람의 목소리가 저렇게 태연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간부와 장무결의 힘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대지가 진동했다. 협곡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가루가 비처럼 쏟아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진짜 힘의 격차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방금까지 내가 대검을 지배한다고 느꼈던 그 감각이, 저 두 존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윤성민이 내 옆에서 피 흘리는 팔을 부여잡으며 낮게 말했다. "저 두 사람... 진짜 뭐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저 압도적인 격돌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대검의 무게가 다시 낯설게 느껴졌다. 김하늬가 부상병들을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후방으로! 빨리!" 박지훈이 창을 짚고 겨우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도 핏기가 없었다. "이게 간부 하나야? 하나가 이 정도라고?" 아무도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후방에서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아군 마법 부대의 광역 지원 요청이었다. 무전이 지지직 울리며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 병력 즉시 대피, 반복한다, 즉시 대피!"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협곡 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걸 지켜봤다. 이 전투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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