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날부터 훈련이 시작됐다. 훈련이라기보단 생존 테스트에 가까웠다.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웠다. 막사 밖으로 나서자마자 콧속이 얼얼했다. 어젯밤 잠은 거의 못 잤다. 장무결이라는 이름, 김하늬가 했던 경고, 그리고 이 낯선 세계에 떨어졌다는 실감이 뒤섞여 머릿속을 헤집어놓았으니까.
훈련장은 넓었다. 흙바닥에는 발자국이 겹겹이 찍혀 있었고, 한쪽에는 온갖 무기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검, 창, 도끼, 그리고 내 시선을 붙잡은 저 대검.
"들어봐."
교관이 대검을 가리켰다.
날이 아침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손잡이만 봐도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걸 어떻게 든다는 거지. 옆에서 다른 신병들이 자기 무기를 붙잡고 씨름하는 소리가 들렸다. 철커덕. 쿵. 낮은 신음.
나는 손잡이를 잡았다. 무게가 온몸을 짓눌렀다.
"못 들겠는데요."
"다시."
교관의 목소리에는 인정이 없었다. 그냥 명령이었다.
한 번.
손목이 떨렸다.
두 번.
어깨가 비명을 질렀다.
세 번.
이마에서 땀이 흘러 눈으로 들어갔다. 시야가 흐려졌다. 팔에 힘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손잡이를 놓지 못했다. 왜 놓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놓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갑자기 뭔가가 달라졌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여전히 무거웠지만 몸이 그걸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원래 내 팔의 일부였던 것처럼. 뼈와 근육이 재배열되는 듯한 낯선 감각이 스쳤다.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냥, 알던 것처럼 아는 감각.
대검이 허공으로 들렸다.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숨소리마저 멈춘 것 같았다.
교관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지금."
"...저도 모르겠어요."
정말 몰랐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내 몸이 어떻게 그걸 해낸 건지. 손에 쥔 대검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이 이상한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야, 이도훈."
박지훈이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
"방금 그거 뭐야. 너 원래 그렇게 힘 좋았어?"
"아니요."
"그럼?"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조차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박지훈의 눈에는 놀라움과 함께 약간의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밥 먹고 잡담하던 사이였는데, 지금 그 눈빛은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신병들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낮게 퍼졌다.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무겁고 규칙적인 걸음이었다.
땅이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발밑의 흙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어젯밤 창밖으로 봤던 그 거대한 형체가 서 있었다.
검은 피부, 산처럼 큰 체격. 등에 진 대검은 내 것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얼굴에는 오래된 흉터가 여러 개 있었다. 하나같이 깊고 길었다. 저런 흉터를 남긴 상대는 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저놈이군."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방금 대검 든 놈."
교관이 급히 자세를 고쳤다. 등이 곧게 펴지고, 턱이 살짝 당겨졌다. 방금까지 나를 몰아붙이던 사람이 순식간에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장무결 대병사님."
그 이름이 나오자 주변 병사들이 일제히 얼음처럼 굳었다. 훈련을 하던 이들도, 대검을 놓고 쉬던 이들도 하나같이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장무결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걸음마다 땅이 낮게 울리는 것 같았다. 걸음 하나에 소리가 두 배는 큰 것 같았고,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이 목을 조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름이 뭐냐."
"이, 이도훈입니다."
목소리가 떨린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사람 앞에서 떨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장무결의 눈빛이 나를 훑었다. 뭔가를 재는 듯한, 감정을 읽기 힘든 눈이었다. 마치 물건의 가치를 매기는 상인의 눈 같기도 했고, 먹잇감을 관찰하는 짐승의 눈 같기도 했다.
"방금 그 대검, 어떻게 들었지."
"모릅니다. 갑자기..."
"갑자기?"
"그냥, 됐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는 정말로 몰랐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다. 뭐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몸이 반응했다고?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고? 어느 쪽이든 미친 소리처럼 들릴 게 뻔했다.
장무결은 한동안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길게 이어질수록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그러다 무언가 결심한 듯 짧게 말했다.
"내 부대로 와라."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신병이 대병사 직속 부대로 발탁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저게 뭐야", "장무결 대병사님이 직접?" 같은 말들이 파편처럼 귀에 들어왔다.
"싫습니다."
내 대답에 정적이 흘렀다. 이번엔 진짜 정적이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장무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방금 뭐라고 했지."
"싫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뭔가 불길했다. 이 사람 곁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유를 설명할 순 없었지만, 몸 깊은 곳에서부터 경고음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어젯밤 김하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사람한테 호의 받은 사람은 다 죽었대. 그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낮고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거짓말이나 헛소리를 하는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장무결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화가 난 건지, 재밌어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 같기도 했고, 눈매가 날카로워진 것 같기도 했다.
"거절하는 놈은 처음 보는군."
그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뭔가 무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등에 진 대검이 흔들리며 낮은 쇳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야, 너 미쳤어?"
박지훈이 내 어깨를 잡았다.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저런 제안 거절하는 사람 없어. 죽을 확률이 반으로 줄어드는 거라고."
"근데 왜 다들 저 사람을 피해요?"
박지훈이 대답을 망설였다. 시선이 잠깐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나를 향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그냥, 저 사람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죽었어. 우연일 수도 있고."
우연. 그 단어가 이상하게 무겁게 들렸다. 마치 우연이라는 말로 덮어두고 싶어 하는 진실이 그 아래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교관이 다가와 훈련을 다시 시작하라고 했다. 나는 대검을 다시 들었다. 이번엔 아까처럼 그 이상한 감각이 곧바로 오지 않았다. 대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방금 있었던 일이 실제였는지 스스로 확인하듯, 손잡이를 몇 번이나 고쳐 잡았다.
그날 오후, 첫 실전 배치 명령이 내려왔다. 흑마군 척후 부대와의 소규모 접전이라고 했다.
명령서를 받는 순간, 손이 살짝 저렸다. 소규모. 그 단어를 몇 번이고 되씹었다. 정말로 소규모일까.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같이 예상을 벗어났는데, 이번만은 예외일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소규모. 그 말이 얼마나 가벼운 거짓말인지, 나는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