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파멸 확정인데 성실이라니

5화

정식 검정. 마법부가 새로 발현된 고유마법을 공식 등록하는 절차라고 했다. 말이 좋아 등록이지, 그냥 국가기관이 내 뒤통수에 카메라 들이대고 "자, 특이한 거 있으면 다 뱉어" 하는 느낌이었다. 한서은이 상부에 요청서를 넣은 지 일주일 만에 승인이 났다. 일주일이라니. 보통 관공서 서류라는 게 도장 하나 받는 데도 한 달씩 걸린다는 게 국룰 아니었나? 근데 이번엔 승인이 번개처럼 떨어졌다. 이유는 뻔했다. 위에서도 이미 냄새를 맡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저택 대연무장. 마법부 소속 인원 셋이 아침부터 진영을 깔기 시작했는데, 그 규모를 보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바닥에 그려지는 문양이 무슬리 대접 하나 크기가 아니라, 거의 대연무장 절반을 채울 정도의 원형 방진이었다. 뭐야, 이거 무슨 아이돌 콘서트 스탠딩석 깔아놓은 줄. [역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격동하여] 격동하는 게 아니라 격침당하는 기분이었다. 방진 중앙에 서서 저 넓은 원을 내려다보니, 왜 이렇게까지 크게 깔았나 싶었다. 그냥 손끝에서 마법 한 번 부리는 거 아니었나? 근데 이건 뭐 원자력 발전소 안전 격리구역 만드는 수준이었다. "도련님, 겁내지 마세요. 저희가 안전 결계를 삼중으로 깔았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저택 밖으로 영향이 안 갈 거예요." 한서은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밝게 웃는 게 무서웠다. 마치 신상 롤러코스터 개장식에 신난 초등학생 같은 표정이었다. 아니, 초등학생이 아니라 놀이공원 개장 첫날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린 열성 팬 표정이었다. 저 여자는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 걸까. "저, 근데 이렇게 크게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에이, 안전이 최우선이잖아요! 도련님 마법이 어느 정도 규모로 터질지 아직 정확히 모르니까요!" 모르니까 이 정도로 깔았다는 거지. 내가 진짜로 뭘 터뜨릴까봐 무서워서 이렇게 깐 거잖아, 사실. 검정 절차는 간단했다. 지정된 결계 안에서 고유마법을 정식으로 한 번 발현하고, 마법부 측정관이 그 특성을 기록하는 것. 설명만 들으면 건강검진 받는 거랑 비슷했다. 피 한 방울 뽑고 결과지 받는 그런 느낌. 문제는 이번엔 도망칠 구멍이 없다는 거였다. 국법상 절차를 거부하면 오히려 더 큰 의심을 받는다. 마법부 규정집 몇 조 몇 항인지까지 한서은이 친절하게 설명해줬는데, 요약하면 "안 하면 더 수상해 보인다"였다. 그러니까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이수과목이었다. 학점 F 받으면 큰일 나는 그런. 나는 결계 중앙에 섰다. 심판관, 측정관, 그리고 백강호까지 도열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백강호는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그 자세가 마치 "이 자식이 또 무슨 사고를 치려나" 하는 감시자의 눈빛이었다. 검술단장이 이 자리에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 감시하러 온 것 같았다. 측정관 둘은 손에 이상한 계측 도구를 들고 있었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력 파장 재는 장치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 마법도 다 데이터화한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왕국 마법부가 무슨 연구소인 줄.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이번엔 저번처럼 통제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최대한 얇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치 설탕공예 하듯 살살, 아니면 얇은 유리잔 다루듯 조마조마하게. 솔직히 말하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저번에 벽 지웠던 그 사건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그때는 우연히 통제가 됐지만 이번엔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실패하면 그야말로 개쪽팔림에 더해서 왕국 최상위 위험인물로 등록될 판이었다. 촤르르르륵! 검은 균열이 손끝에서 피어올랐다. 이번엔 크기가 작았다. 손바닥만 했다. 다행이다, 진짜로. 나 자신에게 백점 만점에 백점 주고 싶었다. "...!" 측정관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터졌다. 한서은이 눈을 크게 뜨고 뭔가를 미친 듯이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손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저러다 손목 나가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이거... 이거 완벽하게 국소화된 존재 삭제 계열이에요! 마력 소모율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요! 이런 효율은 문헌에서도 본 적이 없어요!" 효율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다시 닫느냐가 문제였다. 균열 저편에서 뭔가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안이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저게 오래 열려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균열을 다시 손아귀에 움켜쥐듯 힘을 줬다. 촤악! 다행히 이번엔 잘 닫혔다. 삼십 초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 측정관들은 이미 필요한 데이터를 다 뽑아낸 모양이었다. 30초 만에 뭘 그렇게 많이 재는지 신기했다. 무슨 CT 촬영보다 빠르네. "기록 완료했습니다." 측정관 중 하나가 나서서 발표했다. 목소리가 딱딱하고 사무적이었는데, 그 어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섭게 들렸다. "고유마법명 <허공>, 계열 분류 존재 삭제형, 위험도 최상급. 마법부 본청에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최상급.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건 그냥 위험한 애 하나 등록됐다 수준이 아니라, 왕국 마법부 전체가 주목할 사건이었다. 마치 동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전국 매출 1위 찍은 것처럼, 나는 원치 않았는데 최상급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거였다. [다니엘 5:5, 왕궁 벽에 글자를 쓰더라] 왕궁까지 갈 것 같은 이 느낌, 기분이 안 좋다. 한서은이 흥분한 얼굴로 다가왔다. "도련님! 저 이거 꼭 연구하고 싶어요! 상부에 제가 파견 연구관으로 저택에 상주하겠다고 요청할게요!" 상주?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여자가 우리 집에 살겠다는 거야, 지금? 갑자기 룸메이트 구하는 앱에서 매칭된 기분이었다. "그, 그거는..." "괜찮죠? 도련님 걱정 마세요, 저 비밀은 철저히 지켜요. 마법부 규정상 위험도 최상급 고유마법은 정보를 봉인하고 담당 심판관만 접근권을 가지거든요. 그러니까 오히려 제가 곁에 있는 게 도련님한테 안전해요!" 나름 논리적인 말이었다. 근데 이게 순수한 선의인지, 마법 미치광이의 연구욕인지 구분이 안 됐다. 솔직히 반반이었다. 저 눈빛, 새로운 장난감 발견한 어린애 눈빛이랑 똑같았거든. "그리고 도련님, 제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접근 못 해요! 만약 다른 심판관이나 다른 부서에서 도련님 마법 조사하겠다고 나서면, 제가 다 막을게요! 이거 완전 제 전문 분야거든요!" 전문 분야라는 말에서 뭔가 이상한 확신이 느껴졌다. 마치 자기 최애 아이돌 콘서트 티켓 예매하듯이 저 여자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뭐 어쩌겠나. 이미 벽 하나 지운 마당에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거부하면 오히려 다른 놈이 들어와서 더 깊이 파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나마 한서은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최소한 이 여자는 순수하게 마법 자체에 미쳐있는 것 같았으니까. 다른 목적이 있는 놈보다는 나았다. "...감사합니다, 심판관님." 한서은이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이 어찌나 환한지, 순간 여기가 마법부 검정 현장인지 팬미팅 현장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백강호는 그 광경을 팔짱을 끼고 지켜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각오를 다지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저 표정, 뭔가 불길한데. 마치 "이제부터 내가 더 열심히 지켜봐야겠다"는 결의 같은 게 느껴졌다. 측정관들은 방진을 걷고, 도구를 챙기고, 조용히 저택을 빠져나갔다. 한서은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수첩에 뭔가를 더 적더니, 결국 저택 별관 한 켠을 자기 임시 연구실로 배정받고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갔다. 그날 밤, 마법부 본청에서는 이미 다른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 공작 선우태석은 서재에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마법부에서 올라온 정식 문서였다. 아들의 고유마법이 '위험도 최상급'으로 등록되었다는 소식과, 담당 심판관이 저택에 상주하며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요청서였다. 그는 처음엔 눈살을 찌푸렸다. 여덟 살 아들이 이렇게 위험한 마법을 각성했다는 것 자체가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최상급이라는 분류 자체가 왕국 내에서도 극히 드문 등급이었고, 그런 위험성을 가진 존재를 자식으로 두었다는 사실은 걱정과 동시에 미묘한 불안감을 함께 안겨주었다. 하지만 곧, 보고서 뒤에 첨부된 검술단장 백강호의 별도 첨언을 읽으며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도련님의 검술 실력이 이미 성인 상급 기사에 근접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마법 재능 역시 전례를 찾기 힘든 수준입니다. 다만 도련님 본인이 이를 감추려 하는 것으로 보아, 성정이 매우 신중하고 겸손합니다." 선우태석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밤하늘에 별이 드문드문 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보고서 모서리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원래 저 아들은 나태하고 오만한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검을 쥐어줘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학문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공작가의 후계자로서 부족함이 많다고, 그는 내심 오랫동안 생각해왔었다. 최근 몇 달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이렇게까지 두드러진 재능이 드러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검술단장의 보고, 그리고 마법부의 이 정식 문서. 두 가지가 겹쳐지면서 그는 아들에 대한 평가를 근본적으로 다시 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는 결심을 내렸다. 심판관의 저택 상주 요청을, 공작가의 이름으로 즉시 승인했다. "만약 저 아이가 정말로 특별한 존재라면, 왕국의 자산이 될 수도 있다." 그가 중얼거린 그 한 마디는, 아직 그 자신도 모르는 훨씬 큰 소용돌이의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이 순간 왕국의 반대편,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어느 지하 신전에서는, 이미 다른 이름으로 그 아이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공의 아이'.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결코 왕국 편이 아니었다. 지하 신전 깊은 곳, 촛불도 아닌 뭔가 알 수 없는 빛으로 밝혀진 그 공간에서, 낮고 무거운 목소리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목소리들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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