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악역인데 제자가 여신급이라니

4화

발자국의 주인은 사흘째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안심할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숲의 포식자는 대개 영역을 순찰하는데, 사흘씩 자리를 비운다는 건 다른 곳에서 먹이를 찾았거나, 더 큰 먹이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괜찮다.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나는 매일 아침 오두막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발자국의 흔적을 확인했다. 흙이 눌린 깊이, 발톱 자국의 간격, 냄새가 남은 정도. 사흘 동안 새로운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출 이유는 되지 않았다. 오히려 흔적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변수였다. 놈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었으니까. 서아의 상처는 예상보다 빨리 아물었다.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가 회복력에 도움을 준 모양이었다. 상처 부위를 살펴볼 때마다 새살이 조금씩 차오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채집 구역을 다시 정비하고, 서아에게 안전 수칙을 가르쳤다. 어떤 냄새가 위험한지, 어떤 발자국이 몇 시간 전 것인지, 물웅덩이 근처에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이 냄새는 뭔데?" "부패한 고기 냄새입니다. 근처에 매복해 있는 짐승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도망가야 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뛰면 오히려 표적이 됩니다." 서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냄새를 맡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알 수 없었다. 서아는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지나치게 빨랐다. 한번 보여준 함정 설치법을 그대로 따라 했고, 재료 손질법도 두 번 만에 손에 붙였다.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올가미도, 뿌리풀의 껍질을 벗기는 각도도, 한 번의 시범만으로 습득했다. 나는 그걸 그저 어린 나이의 재주라고만 생각했다. "아저씨,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서아가 완성한 올가미를 들어 보였다. 매듭의 위치도, 당김의 강도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나 재능 있나 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게 그냥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문제는 그날 밤에 일어났다. 나는 화로 앞에서 새로운 조합식을 시험하고 있었다. 늑대 발톱과 은빛 이끼, 그리고 최근 채집한 붉은 뿌리풀을 섞어 상처 회복력을 높인 물약을 만들어보려는 실험이었다. 게임에서 이 조합은 중급 회복 물약으로 분류됐다. 만들 수만 있다면 서아의 상처 같은 것도 하루 안에 아물게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첫 번째 시도. 늑대 발톱을 곱게 갈아 화로에 넣고, 은빛 이끼를 그 위에 얹었다. 열이 오르는 것까지는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끼가 녹지 않고 그대로 타버렸다. 매캐한 연기가 오두막 안에 퍼졌다. 됐다. 실패다. 두 번째 시도. 비율을 조금 바꿔봤다. 결과는 같았다. 세 번째 시도도 마찬가지였다. 재료는 응고되지 않고 그냥 재가 됐다. 게임 지식대로라면 이 조합은 틀림없이 성공해야 했다. 나는 노트를 다시 펼쳐 비율을 확인했다. 늑대 발톱 두 조각, 은빛 이끼 한 줌, 붉은 뿌리풀 뿌리 세 마디. 숫자는 정확했다. 화력도 적당했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이해가 안 됐다. 20년 동안 이 게임의 조합식은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달랐다. 서아가 옆에서 그걸 구경하고 있었다. 화로의 불빛이 서아의 얼굴에 붉게 어른거렸다. "아저씨, 이거 왜 계속 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해볼까?" "위험합니다. 화로는 다루기 까다로운 도구입니다." "그냥 만지기만 하는 것도 안 돼?" "…" 나는 대답을 미뤘다. 서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냥 손을 뻗어 재료를 만졌다. 은빛 이끼를 집어 든 순간, 그것이 손안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찰나였다. 눈을 깜빡이면 놓칠 정도의 짧은 빛. 나는 그 빛을 못 본 척하지 못했다. "손 떼세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딱딱해졌다. "왜? 뭐 잘못했어?" 서아는 손을 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빛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나는 이끼를 살펴봤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색깔도, 질감도 그대로였다.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 이끼를 다시 화로에 넣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조합이 매끄럽게 응고됐고, 완성된 물약은 게임 기준 상급 회복 포션에 가까운 빛깔을 냈다.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액체. 게임 속에서도 최상급 상인에게서만 구할 수 있던 물건이었다. 나는 그걸 손에 들고 한동안 말을 잃었다. 괜찮다.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이상한 우연이었다. "그거 왜 그렇게 봐?" 서아가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그 물약을 병에 담았다. 나는 다음 날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이번엔 조건을 하나씩 바꿔가며 진행했다. 서아 없이 진행하면 실패, 서아가 재료를 한 번 만지고 나면 성공. 재료의 종류를 바꿔도 결과는 같았다. 늑대 발톱을 여우 이빨로, 붉은 뿌리풀을 파란 뿌리풀로 바꿔도 서아가 손을 대면 성공이었다. 세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같았다. 나는 노트에 그 결과를 적어 내려갔다. 손끝이 자꾸 미끄러졌다.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결론은 하나였다. 서아의 몸에는 극히 미약하지만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력이 재료에 닿는 순간, 내 조합식이 원래 필요로 했던 마력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게임에서 나는 늘 마력 없이도 되는 최하급 조합만 만들 수 있었다. 마력이 필요한 상급 조합식은 알고 있어도 재현할 방법이 없었다. 조합법을 수백 개 외우고 있으면서도 절반 이상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서아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다. 마력이라는 것 자체를 이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괜히 겁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서아 씨." "응?" "이 화로 앞에 앉아서, 재료를 만지는 것만 해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합니다." "그게 다야?" "그게 다입니다." "이상한 부탁이네." "이상해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아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이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을지는 짐작도 못 하는 얼굴이었다. 나도 그때는 몰랐다. 이게 시작이라는 걸. 그날부터 나는 서아를 화로 앞에 앉히고, 조합식을 하나씩 시험했다. 노트에 적힌 조합법 중 마력이 필요하다고 표시된 것들부터 순서대로 꺼내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원래는 절대 못 만들 줄 알았던 중급 물약들이 하나씩 완성됐다. 상처를 완전히 봉합하는 연고. 바르면 몇 시간 안에 피부가 아무는 물건이었다. 독을 즉시 해독하는 알약. 삼키면 몸 안의 독소를 태우듯 없애는 효과가 있었다. 하룻밤 야간 시야를 밝히는 등불용 결정. 이건 특히 유용했다. 밤에 사냥을 나갈 때 횃불 대신 쓸 수 있었고, 연기도 나지 않았다. 작은 성공이었지만, 20년 동안 최하급만 만들던 나에게는 벽이 하나 무너진 것과 같았다. 마치 반쪽짜리 능력으로 살다가 갑자기 나머지 반쪽을 손에 넣은 기분이었다. 서아는 자기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즐거워했다. 화로 앞에 앉아 재료를 조몰락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나 도움 되고 있는 거지?" "많이 됩니다." "그럼 나중에 나도 뭐 좀 만들어볼래." "아직은 무리입니다." "치사하게." 서아가 입을 삐죽였다. 나는 그 표정을 무시하고 다음 재료를 준비했다. 속으로는 안도했다. 서아가 직접 조합에 손을 대는 건 아직 위험했다. 화로의 열기와 재료의 독성을 다루는 법을 모르는 채로 덤벼들면 다치기 십상이었다. 지금은 그저 손끝으로 재료를 스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근데 왜 나만 만지면 되는 거야?" "…재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역시! 나 재능 많다니까." 서아는 팔짱을 끼고 뻐기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굳이 마력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이 조합식의 성공률을 확인하는 데 열흘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완성된 물약들을 오두막 한쪽에 차곡차곡 쌓았다. 나무 선반을 새로 짜서 병들을 종류별로 분류했다. 회복 계열, 해독 계열, 조명 계열. 다행히 유효기간이 긴 재료들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 물약이면 상급 채집가 마을에 가서도 값을 꽤 받을 수 있을 물건들이었다. 열흘째 밤, 나는 화로를 정리하고 있었다. 재를 긁어내고 남은 재료를 정리하는 손놀림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서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낮 동안 재료 채집을 도와서 지친 모양이었다. 숨소리가 규칙적이었다. 오두막 밖에서 바람이 세게 불었고,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쏴아아. 쏴아아아.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파도처럼 들렸다 멀어졌다 했다. 나는 창문 틈으로 밖을 살폈다. 달빛이 흐릿했다. 구름이 많은 밤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낮게 으르렁거리는 울음이 들렸다. 손에 들고 있던 병이 멈췄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며칠 전 사라졌던 그 발자국의 주인이 돌아온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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