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벼락 맞고 드래곤 각성했다

3화

밤이 깊었다. 학원 뒤편 작은 의무실에는 등불 하나만 켜져 있었다. 창밖으로 풀벌레 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 소리마저 없었다면 방 안은 숨소리만 남을 뻔했다. 이도현은 팔에 감긴 천을 내려다보았다. 갈비뼈 하나가 다친 듯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가 찢어지는 듯했다. 숨을 얕게 쉬는 버릇이 벌써 몸에 붙어 있었다. 깊게 들이쉬면 통증이 등줄기까지 타고 올랐기 때문이다. 의원은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다. 급한 처치만 해주고는 "이만하면 죽지는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위로랄 것도 없는 말이었지만, 이도현은 그 말조차 곱씹었다. 죽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처지였다. 유목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엔 미안함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표정을 지웠다. 그는 학원의 교도주임이었고, 이도현이 유일하게 사부라 부르는 이였다. "괜찮으냐." 그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이도현이 짧게 답했다. 거짓말이었다. 몸도, 마음도 괜찮지 않았다. 옆구리는 여전히 뜨겁게 저렸고, 마음 한쪽은 그보다 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유목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등불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그러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강씨 무가는 학원의 큰 후원자다. 내가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는 속으로 그렇게 물었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유목현이 그런 그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을 떼었으나, 결국 다시 다물었다. 학원의 사정이 그러했다. 강씨 무가에서 매년 내는 후원금이 학원 살림의 절반을 채운다는 것을, 이도현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 유목현의 말은 변명이 아니라 사실의 나열이었다. 그것이 더 서글펐다. "쉬어라." 유목현이 등을 돌렸다. "내일은 몸을 움직이지 말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이도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어릴 적 아버지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힘없는 자의 억울함은 아무도 대신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오늘, 그는 스스로 말할 곳조차 마땅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목현이 방을 나간 뒤, 이도현은 홀로 등불을 바라보며 밤을 보냈다. 등불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흔들릴 때마다, 강태오의 비웃는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사라졌다. 잠은 오지 않았다. 옆구리의 통증과 마음의 통증이 번갈아 그를 깨워댔다. +++ 다음 날 아침, 이도현은 절뚝이며 학원 관리처로 향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동이 튼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학원 마당엔 잡역 학생들이 벌써 나와 물을 긷고 있었다. 몇몇이 이도현을 보고 흠칫 놀랐다가, 곧 시선을 피했다. 이미 어젯밤의 일이 학원 안에 퍼진 모양이었다. 관리처는 학원의 행정을 담당하는 곳으로, 학생 간의 분쟁도 이곳에서 다루었다. 붉은 기둥 두 개가 서 있는 건물이었는데, 그 앞에 서면 늘 위축되기 마련이었다. 잡역 학생들에게는 그러했다. 정식 제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지만. 문 앞에 선 늙은 문지기가 이도현을 위아래로 훑었다. 다 낡은 도포 자락에, 붕대를 감은 팔. 문지기의 눈에 그것은 볼 것도 없는 초라함이었다. "무슨 일로 왔느냐." 문지기의 말투엔 하대가 뚝뚝 묻어 있었다. "관리 어른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도현이 존댓말로 답했다. "잡역 놈이 관리 어른을 뵈러 왔다고?" 문지기가 큰 소리로 웃었다.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났느냐." 문지기의 웃음소리에 지나가던 몇몇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이도현은 그 시선들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 정도 구경거리는 감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관리 어른을 뵙는 데 신분이 문제가 됩니까." 이도현이 되물었다. "문제가 되고 안 되고를 네놈이 정하느냐." 문지기가 눈을 부라렸다. "썩 물러가라." 이도현은 침착하게 상처를 드러내 보였다. 붕대를 걷어 팔의 멍 자국을 보였고, 걸을 때마다 저는 다리를 굽혀 보였다. "강태오 공자에게 부당하게 폭행당했습니다. 이를 알려야 합니다." 문지기의 웃음이 뚝 멈췄다. 그 이름이 나오자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방금까지의 여유로운 조롱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경계심이 들어섰다. "강, 강태오 공자를 걸고넘어질 생각이냐."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경고에 가까운 어조였다. "네놈, 목숨이 몇 개나 되느냐." "부당한 일은 부당하다 말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배운 게 잘못됐구나." 문지기가 혀를 찼다. "돌아가라. 잡역 놈의 말을 관리 어른이 들어줄 것 같으냐."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듣고 물러나겠습니다." 문지기는 그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잡역 학생 하나가 이렇게까지 물러서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몇 마디 위협에 슬그머니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이놈 봐라." 문지기가 헛웃음을 지었다. "제법 뻣뻣하구나. 그 뻣뻣함이 얼마나 가는지 보자." 이도현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 없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문지기가 큰 소리로 안쪽을 향해 뭐라 소리쳤다. 곧 안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 결국 소란이 일자 관리처의 하급 관리 하나가 문 밖으로 나왔다. 살이 오른 얼굴에 관복을 입은 사내였다. 나이는 마흔 줄쯤으로 보였고, 표정에는 이미 귀찮음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냐." 관리가 귀찮은 듯 물었다. 이도현은 다시 상처를 보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제 낮, 연무장에서 강태오와 마주쳤던 일. 강태오가 별다른 이유 없이 시비를 걸었던 일. 그리고 여러 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매질을 당했던 일까지, 빠짐없이 말했다. 관리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하품을 참는 표정이었다. 중간에 손톱을 매만지기까지 했다. 그 무성의함이 이도현의 속을 더 끓게 만들었지만, 그는 끝까지 말을 마쳤다. "강태오 공자가 그랬다는 증거가 있느냐." 관리가 물었다. "현장에 있던 학생들이 여럿입니다. 확인하시면 될 일입니다." "허, 그 학생들이 순순히 증언을 해 줄 것 같으냐." 관리가 비웃듯 말했다. "강씨 무가와 척을 지려는 학생이 어디 있겠느냐." 이도현은 말을 잃었다. 그 말이 정확히 사실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어제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 중 누구도 강태오를 말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은 슬쩍 웃음을 참고 있었다. "게다가." 관리가 말을 이었다. "네가 먼저 시비를 걸었을 수도 있는 일 아니냐. 잡역 놈들이 공자님들 눈밖에 나면 무슨 트집을 잡히기 마련이지." "저는 시비를 건 적이 없습니다." "그건 네 말이고." 관리가 손을 저었다. "잡역학생끼리 다툰 일이면 몰라도, 공자님과 잡역의 다툼이라니. 이건 다툼도 아니지." 관리가 손을 휘저었다. "돌아가서 하던 일이나 해라." "이대로 물러가면,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럼 다음에도 여기 와서 하소연을 하면 되겠구나." 관리가 조소를 흘렸다. "허나 그때도 답은 똑같을 것이다." 문이 다시 쾅 닫혔다. 이도현은 굳게 닫힌 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문 너머로 문지기가 이죽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웃음의 종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억울함을 말할 곳조차 없구나.' 그 사실이 매질보다 더 아프게 그를 파고들었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옆구리를 짚었다. 통증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이 가슴 한복판에 얹혀 있었다. 이 학원이라는 곳이, 강함과 배경이 없는 자에게 얼마나 얇은 얼음판인지 새삼 깨달은 무게였다. '배운 것이 잘못되었다면, 다시 배워야 한다.' 그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부당함을 말해도 듣지 않는다면, 부당함을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이번엔 관리처가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해서였다. 절뚝이는 걸음이었지만, 그 걸음에는 전과 다른 무언가가 실려 있었다. 뒤에서 문지기가 뭐라 소리쳤지만, 이도현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학원 뒤편, 인적이 드문 산길 쪽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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