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벼락 맞고 드래곤 각성했다

2화

강태오의 시선이 서지아를 향했다가, 다시 이도현에게로 돌아왔다. 산길 위로 늦은 오후의 볕이 비스듬히 떨어지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빛이 강태오의 붉은 비단옷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강씨 무가의 장자,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학당 안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저 계집이 네 등 뒤에 숨은 것이냐." 그의 목소리에 이미 답을 정한 냉소가 배어 있었다. 이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말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잡역으로 살아온 세월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강자 앞에서 입을 여는 것이 대부분 더 큰 화를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서지아는 그 틈에 이도현의 등 뒤에서 슬며시 몸을 빼냈다. 그녀의 손끝이 이도현의 옷깃을 살짝 스쳤다가, 이내 떨어졌다. "공, 공자님. 저는 그냥..." 그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산길 아래로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다급하고 가벼운 발소리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나를 방패로 쓴 것이었나.' 이도현은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강태오의 얼굴이 붉어졌다.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 대상은 이제 이도현 하나뿐이었다. "네가 그년을 도망치게 했구나." 퍽!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발이 이도현의 복부를 걷어찼다. 이도현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숨이 턱 막혔다. 명치 언저리가 뜨겁게 저려왔다. 그러나 그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리를 내면 더 큰 조롱이 돌아올 것을 그는 잡역으로 살며 익혔다. 소리를 지르는 자는 약함을 드러내는 자였고, 약함을 드러낸 자는 더 오래, 더 깊이 짓밟혔다. "일어나라. 아니면 그대로 처박혀 있을 거냐?" 강태오가 발끝으로 그의 어깨를 밀었다. 발끝이 어깨뼈를 누르는 감각이 선명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길 위에 떨어진 돌을 발로 굴리는 듯한 손짓이었다. 이도현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팔에 힘을 주어 땅을 짚었다. 손바닥에 흙과 자갈이 박혔다. '일어나야 한다. 넘어진 채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유목현이 늘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강한 것과 높은 것은 다르다. 그 말을 처음 들은 것은 학당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유목현은 그때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반드시 강한 것은 아니다. 강한 자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자다." 그때는 그 말이 단순한 위로처럼 들렸다.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말이었는지를, 몸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말은 아무 힘이 되지 못했다. 일어선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시 맞기 위해 일어서는 것에 불과했다. +++ 강태오의 뒤에 따라온 동패들이 어느새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세 명이었다. 모두 붉은 비단을 걸친 귀족가 자제들이었다. 하나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살집이 있는 얼굴로 웃음을 흘리고 있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뒷짐을 지고 구경꾼처럼 서 있었다. "잡역이 감히 공자님 앞을 막다니." 한 명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저것도 사람 축에 들어가나." 다른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뒷짐을 진 자는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낀 채 이도현을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흥미도, 동정도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구경거리를 보는 눈이었다. 둔탁한 소리가 계속됐다. 발길질과 주먹질이 번갈아 이도현의 몸에 떨어졌다. 퍽! 퍽! 한 대는 옆구리에, 한 대는 등에 떨어졌다. 몸을 웅크릴 틈도 없이 다음 타격이 이어졌다. 살집 있는 자가 웃으며 그의 다리를 걷어찼고, 마른 자가 그의 팔을 밟았다. 피가 입가로 흘렀다. 눈앞이 흐려졌다. 흙바닥의 냄새와 피의 비릿한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이도현은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힘도, 저항할 명분도 그에게는 없었다. 저항이란 것도 결국 힘이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선택이었다. '참아야 한다. 참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는 그렇게 되뇌며 몸을 웅크렸다. 몸을 웅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배와 얼굴을 가리고, 등과 팔로 타격을 받아내는 것. 그것이 잡역으로 살며 그가 몸으로 배운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학생들 몇이 산길 아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쟤도 참 재수 없게 걸렸네." 한 학생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러다 죽지는 않겠지." 다른 학생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강 공자님 성격 알잖아. 오늘은 그나마 짧게 끝나는 거야." 세 번째 학생이 낮게 웃었다. 비웃음이 산속에 퍼졌다. 그것이 이도현의 귀에 그대로 박혔다. 웃음소리는 발길질보다 더 깊게, 더 오래 남는 상처였다. 몸의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겠지만, 저 웃음소리는 어딘가에 새겨진 채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웃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 그때 산 위쪽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유목현이었다. "멈추어라!" 그가 소리쳤다. 강태오의 동패들이 주먹질을 멈췄다. 발이 허공에서 멈춘 채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강태오는 여유롭게 옷깃을 털며 뒤로 돌아섰다. 그 동작에는 급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교도주임께서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강태오의 어조엔 존댓말이 섞여 있었으나, 그 안에는 조롱이 배어 있었다. 유목현의 눈이 이도현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잠시 굳었다. 흙바닥에 엎드린 이도현의 얼굴은 피와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옷깃도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이 아이는 내가 아끼는 학생이다. 이유가 무엇이냐." "별일 아닙니다. 그저 예의를 좀 가르쳤을 뿐입니다." 강태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조차 없었다. 유목현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의 손이 잠시 허공에서 멈췄다가, 이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강씨 무가의 공자.' 그 이름 하나가 유목현의 다음 말을 막았다. 강씨 무가. 학당의 절반이 그 가문의 후원으로 세워졌다는 말이 있었다. 교도주임이라는 자리도, 결국 그 가문의 그늘 아래 있는 자리였다. 유목현이 아무리 이도현을 아낀다 해도, 강씨 무가의 이름 앞에서는 그 애정조차 힘을 잃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 유목현이 그렇게만 말했다. 목소리에는 억눌린 무언가가 담겨 있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강태오는 가볍게 웃으며 동패들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발걸음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놀이를 찾아 떠나는 걸음이었다. 구경하던 학생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몇몇은 여전히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이도현은 땅바닥에 엎드린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흙 위로 떨어지는 핏방울이 작은 얼룩을 남겼다. "괜찮으냐." 유목현이 무릎을 꿇고 그의 어깨를 짚었다. 손끝이 조심스러웠다. 이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스승님이 왔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였다. '스승님도, 저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 생각이 처음으로, 이도현의 안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강한 것과 높은 것은 다르다고, 스승은 늘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말조차 무너지고 있었다. 스승은 강했으나 높지 못했고, 강태오는 강하지 않았으나 높았다. 그리고 높은 자 앞에서는, 강한 자의 말조차 힘을 잃었다. 피 냄새보다 그 생각이 더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는, 언젠가는 저 이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아직은 형체를 갖추지 못한 다짐이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