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용사님, 저한테 기대세요

5화

가게 문을 닫으려던 참이었다. 하준은 카운터 위에 쌓인 빈 병들을 정리하며 하루의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남은 정적을 음미하고 있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이미 인적이 끊긴 지 오래였고, 걸어둔 램프의 불빛만이 홀로 흔들리며 텅 빈 진열장을 비추고 있었다. '오늘은 좀 이르게 문을 닫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카운터 뒤로 손을 뻗어 열쇠를 찾던 순간, 다시 종소리가 울렸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서윤이었는데, 낮에 보았던 갑옷도 검도 걸치지 않은 평상복 차림이었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으며, 걸음걸이는 낮에 보았던 것보다도 훨씬 더 불안정해서 문턱을 넘는 것조차 위태로워 보였다. 하준은 순간 카운터 위에 올려두었던 열쇠를 다시 내려놓았다. '저 상태로…… 이 시간에 혼자 여기까지 왔다는 건가.' 의문이 스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고, 하준은 재빨리 카운터를 돌아 나오며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늦은 시간에 실례합니다." 서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힘없이 흘러나왔는데, 낮에 보았던 그 냉소적이고 단호한 어조와는 전혀 다른, 마치 다 짜낸 물기처럼 메마른 소리였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그렇게 묻는 순간, 서윤이 손에 쥐고 있던 저번의 그 포션 병을 힘없이 내려다보다가, 한참을 망설이는 듯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걸 써도…… 낫지 않아서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절박함이 하준의 귀에 선명하게 박혔고, 그는 곧바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소매를 걷어 올렸는데, 그 손목이 너무나 가벼워서, 마치 뼈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하준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붕대로 감춰졌던 상처는 이미 시커멓게 곪아 있었고, 그 주변 피부는 푸르스름하게 죽어가는 듯 변색되어 있었다. '……단순한 외상이 아니야.' 하준은 순간 숨을 삼켰다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 그녀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서윤의 몸이 이미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듯 뜨거운 것이 느껴져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하준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짚어 열을 확인했고, 손끝에 닿는 뜨거운 감촉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 손목의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곪은 살 사이로 옅게 비치는 검붉은 실핏줄 같은 무늬가 상처 주변을 타고 퍼져 있었는데, 그것이 단순한 감염이 아니라는 것을 하준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건 마력 역류로 생긴 상처군요. 시중 포션으로는 안 됩니다." 마력 역류라는 것은, 몸속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이 어떤 이유로든 정상적인 경로를 벗어나 역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현상을 뜻했는데, 대개는 감당할 수 없는 상급 마법을 무리하게 사용하거나, 혹은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마나를 강제로 끌어올릴 때 발생하는 것이었고, 그 후유증은 단순한 외상보다 훨씬 깊고 집요하게 몸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하준은 오래전 자신이 겪었던 경험으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진단에 서윤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붕대 아래 감춰진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말을 끝맺지 못한 서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는데, 그 순간 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방으로 향했다. 뒷방 선반 깊숙한 곳에는 하준이 오래전부터 조합해두었던, 아무에게도 팔지 않고 숨겨두었던 특제 포션이 하나 있었는데,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조합까지 며칠이 걸리는 귀한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이건 팔지 않는 겁니다. 그냥 드리는 거예요." 서윤이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의아함과 동시에 옅은 경계심이 섞여 있었고, 하준은 그것을 눈치채면서도 태연하게 웃으며 병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손님이 여기서 쓰러지면, 제가 곤란해서요."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려는 계산이 숨어 있었고, 하준은 그 계산이 서윤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유지했다. 서윤은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듯 옅게 웃으며 병을 받아들었다. "……친절하시네요." 그 한마디에 하준은 속으로 확신했다. '이렇게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이었구나.' 낮에 보았던 그 냉랭하고 거리를 두는 태도와는 전혀 다른, 지금 이 순간의 서윤은 그저 힘없이 지쳐 있는 한 사람일 뿐이었고, 하준은 그 낙차 속에서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서윤이 포션을 받아 천천히 병을 열고 마시는 동안, 하준은 그녀의 옆에 나란히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목을 넘어가는 액체의 흐름을 따라 서윤의 창백했던 뺨에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효과가…… 빠르네요." 서윤이 작게 중얼거리며 손목을 내려다보았는데, 검붉게 부어 있던 상처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스쳤다. "제가 만든 것 중에는 가장 잘 만든 겁니다." 하준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 말은 사실 절반의 진심이었는데, 그는 이 포션을 만들 때 들였던 정성과 시간을 서윤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오랜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 속에서 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그 질문에는 단순한 궁금증 이상의 무게가 담겨 있었는데, 마치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아무런 대가 없이 무언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듯한 어조였고, 하준은 그 목소리에서 그녀가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 질문에 하준은 잠시 망설이는 척했지만, 곧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요. 그냥, 강한 사람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요." 말을 마친 순간, 서윤의 눈빛이 흔들리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하준은 놓치지 않았고,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 앞에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속으로 옅은 전율을 느꼈다. '이 여자, 예상보다 훨씬 빨리 무너지겠군.' 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 끝에는 이미 아물어가는 상처와 함께,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무언가가 함께 담겨 있는 듯했고, 하준은 그녀가 애써 그것을 삼키려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저는……" 서윤이 무언가 말을 이으려던 순간, 목소리가 갈라지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는데, 그 짧은 침묵 사이로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얕아지는 것이 하준의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윤의 몸이 갑자기 옆으로 기울어지며 하준의 어깨에 힘없이 쏠렸는데, 미약하게 뜨거운 숨결이 하준의 목덜미에 닿는 순간 그는 그녀가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하준은 순간 당황하여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는데, 축 늘어진 몸의 무게가 고스란히 자신의 팔에 실리는 것을 느끼며, 방금까지 흘렸던 눈물의 흔적이 그녀의 뺨 위에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 순간, 램프의 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고, 가게 안은 다시 깊은 정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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