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빛이 사그라들며 허공에 글자가 떠올랐다.
[스킬 : 넷쇼핑]
사당 안이 완전히 정지했다.
누군가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마저 그 순간엔 멈춘 것 같았다.
건이 미간을 좁히며 그 글자를 되짚어 읽었다.
"넷…쇼핑?"
낯선 단어를 입에 올리는 그의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몇 번을 곱씹듯 다시 읽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발음이었다.
연옥이 앞으로 나섰다.
"그게 무슨 스킬입니까."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이미 답을 알고 묻는 말이 아니었다.
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수백 년 기록에 남아 있는 스킬 목록 어디에도 그런 이름은 없었다.
전투용도 아니고, 생산용도 아니고, 치유용도 아니었다.
분류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나쁜 신호라는 걸,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들어본 적도 없는 스킬이야."
"쓰레기 스킬이 나온 거 아니야?"
"저거 스킬은 스킬 맞아? 이름부터 이상하잖아."
작게 시작된 말이 점점 커졌다. 파도처럼 밀려와 사당 안을 채웠다.
귀가 저절로 등에 붙었다.
아니라고, 뭔가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 속에서 그 단어를 분명히 본 적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물건을 고르던, 어딘가 익숙한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여기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 세계엔 화면도, 손가락으로 누를 유리판도 없었다.
건이 나를 향해 말했다.
"시연해 보아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연.
그 단어가 목에 걸렸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데.
전생의 꿈에서 본 감각을 흉내 내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손을 뻗어 허공에 대고 무언가를 눌러보는 시늉을 했다.
전생의 꿈속에서 봤던 그 손짓, 화면을 누르던 손가락의 감각을 흉내 냈다.
손끝에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그냥 허공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한 번.
허공은 그냥 허공이었다.
손목을 좀 더 꺾어보고, 손가락 끝을 좀 더 세워보았다.
두 번.
식은땀이 흘렀다. 등줄기를 타고 차갑게 흘러내리는 감각이 선명했다.
세 번.
웅성거림이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저것 봐, 아무것도 못 하잖아."
"애초에 저 아이한테 뭘 바라."
"시간 낭비였네. 저럴 줄 알았어."
누군가 킥킥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재밋거리를 발견한 웃음이었다.
연옥의 얼굴이 굳었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그 얼굴에 처음으로 스쳤다.
하지만 나를 향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신에게 향한 것이었다.
저런 걸 맡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의 손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가 다시 풀렸다.
"됐다."
연옥이 딱 잘라 말했다.
"쓸모없는 건 확실해졌으니, 더 볼 것도 없어."
건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쓰레기 스킬한테 밥 먹여봐야 손해지."
"어차피 저 애 부모도 없잖아."
"저런 걸 왜 여태 데리고 있었는지 몰라."
말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부모도 없잖아, 라는 말이 가슴 어딘가를 긋고 지나갔다.
아프다고 느낄 새도 없이 다음 말이 이어졌다.
"내다 버려."
그 말이 나온 순간, 마당 전체가 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결말처럼,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누구 하나 그 말을 되짚지 않았다. 당연한 결론이라는 듯이.
연옥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손아귀에 힘이 실려 있었다. 뼈가 아릴 정도였다.
"가자."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녀의 걸음은 빨랐다. 발이 걸려도 멈추지 않았다.
숲 입구까지 끌려가는 동안, 다리가 저절로 후들거렸다.
마을 사람들 몇몇이 뒤따라오며 구경했다. 재밋거리를 찾아온 것처럼.
그들의 발소리는 가볍고 즐거워 보였다.
누군가는 잘 가라는 말까지 던졌다. 조롱인지 진짜 인사인지 알 수 없었다.
숲 앞에 도착하자 연옥이 손목을 놓았다.
손목에 남은 손자국이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알아서 해."
그녀의 목소리에 미안함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쓸모를 증명하지 못한 대가야."
"저는…"
말을 이으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다.
등돌린 그녀의 어깨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망설임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숲 입구의 나무들이 어둡게 서 있었다.
안으로 밀려 들어가듯 발이 움직였다.
등 뒤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누군가 웃는 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고,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남지 않았다.
혼자였다.
처음으로 완전히, 정말로 혼자였다.
돌아보니 숲 입구가 이미 나무들 사이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마을의 불빛도, 목소리도, 냄새도, 아무것도 닿지 않는 곳.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며 낮은 소리를 냈다. 그것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소리였다.
손끝이 떨렸다.
추워서였다. 그리고 아마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전생의 기억 속 화면이 다시 떠올랐다. 손가락 하나로 물건을 고르고, 손가락 하나로 결제를 하던 그 세계.
여기엔 그런 화면이 없었다. 화면도, 결제도, 아무것도.
그 스킬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걸음을 옮겼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숲의 어둠이 발밑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에도 심장이 튀어 올랐다.
발밑에서 마른 잎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온몸이 얼어붙었다.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진짜인지, 상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숨을 죽이고 걸었다. 소리를 내면 무언가가 나를 찾아낼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그 숲이 나를 살릴지, 삼킬지 알지 못한 채 걸었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눈동자 같은 것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