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울음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마치 오래된 라디오에서 나오는 잡음 같기도 했고, 거대한 짐승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 억지로 참아내는 신음 같기도 했다.
나는 랜턴도 아니고 스킬로 밝힌 희미한 빛 하나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발밑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뼛조각인지 돌조각인지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무시했다.
모르는 게 약이다, 이럴 때만큼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통로는 갈수록 좁아지다가 갑자기 확 넓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거대한 석실에 도착했다.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빛이 닿는 곳까지도 다 보이지 않았다.
벽면 전체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빈틈없이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이 벽에 인터넷 약관 전체를 깨알 같은 글씨로 새겨놓은 것 같았다.
안 읽어도 다 동의 누르는 그 약관 말이다.
물론 이건 동의하고 싶지도 않았고, 동의 안 한다고 빠져나갈 방법도 없어 보였다.
중앙에는 부서진 제단이 놓여 있었다.
돌이 갈라진 틈새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뭉쳐 있는 듯한 형체가 어렴풋이 그려져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그 안개는 살짝살짝 흔들렸다.
꼭 누가 숨을 쉬는 것처럼.
“이건…”
정민호 현자님이 눈을 크게 뜨며 다가갔다.
안경 너머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저 양반은 위험한 상황일수록 눈빛이 반짝거리는 타입이었다.
호기심과 공포가 같은 얼굴에서 동시에 재생되는 걸 보면 진짜 신기했다.
“사령마신의 봉인 흔적이다.”
뭐지, 이름부터 되게 무서운데.
사령이라는 글자가 붙는 순간 이미 등급 매길 것도 없이 무서운 거 아닌가.
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사령마신이요?”
“몰랐냐, 히든 보스야. 다른 대륙 길드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목격 소문만 있던 존재.”
리더님이 심각한 얼굴로 벽면의 문자를 살폈다.
손끝으로 문자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마치 오래된 임대차 계약서의 특약사항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신중하게 훑었다.
“【철산 길드】의 관측 기록에 따르면, 이 개체의 등급은 레벨 1000으로 추정된다고 했었지.”
[관측 기록 발췌: 사령마신, 전투 개체 등급 SS+. 관측된 최소 위력, 대륙급 재해 수준.]
대륙급 재해라니, 그거 그냥 태풍이나 지진 같은 걸 상대하는 거랑 뭐가 다른 거지.
아니, 태풍은 눈이 안 달려 있잖아.
저건 눈이 달려서 나를 노려볼 수 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1000레벨이라니, 우리 파티 전원의 레벨을 다 합쳐도 백 단위나 될까 말까 한데.
계산기를 두들겨봤다.
정민호 현자님 20, 윤서아 성녀님 18, 리더님 25, 강도현 형 22, 나 15.
합쳐봐야 백 자리 초반.
저쪽은 그냥 자릿수 자체가 달랐다.
이건 계급장 떼고 붙어도 지는 게 아니라 계급장을 붙이든 떼든 지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 존재를 왜 이제야 발견한 거죠?”
윤서아 성녀님이 물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끝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이런 순간에도 표정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유독 얼굴이 하얬다.
“봉인이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정민호 현자님이 대답했다.
“어쩌면 우리가 처음 목격한 파티가 될 수도 있어.”
최초 목격, 그 말에 잠깐 심장이 두근거렸다.
와, 그럼 우리 이름이 무슨 역사서 각주에라도 실리는 건가.
길드 사이트 인기 게시판 1위 정도는 찍겠는데.
하지만 곧 다시 서늘해졌다.
최초로 목격한다는 건, 최초로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게시판 1위는 죽은 다음에 찍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
[욥기 41:33, 땅 위에는 그것과 같은 것이 없나니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
두려움 없이 지음 받은 건 사령마신이고, 여기서 지금 두려움에 떠는 건 나였다.
성경이 이렇게 남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구나, 오늘 처음 알았다.
“일단 여기서 더 진행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리더님이 파티원들을 둘러봤다.
평소에는 장난기 많은 얼굴인데, 이럴 때는 딴사람처럼 눈빛이 가라앉았다.
나는 그 눈빛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이 사람이 저런 눈으로 판단을 내리면, 뭔가 잘못될 리가 없다고 믿었으니까.
“이 정도 등급이면 위험 부담이 크다. 만약을 위해서 탈출 결정계를 사용할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어.”
“탈출 결정계요?”
나는 처음 듣는 물건이라 물었다.
길드에 들어온 지 1년이나 됐는데도 여전히 처음 듣는 아이템이 수두룩했다.
이 바닥은 신입 사원이 평생 사원인 느낌이라니까.
“위급 상황에 파티를 안전한 곳으로 강제 이동시키는 아이템이야.”
정민호 현자님이 가방에서 작고 반투명한 결정을 꺼내 보였다.
푸르스름한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꼭 편의점 냉장고에서 파는 그 이온 음료 같은 색이었다.
목숨 걸린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조금 대단하기도 했다.
“다만 조건이 있어.”
리더님이 말을 이었다.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있고, 발동 시 누군가는 그 자리에 남아 시전자 역할을 해야 한다.”
“시전자요?”
“결정계를 활성화시키는 사람 말이야. 마력을 대량으로 소모하는 매개체 역할이지.”
나는 그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아, 위험할 때 쓰는 안전장치구나, 그리고 누군가는 매개체가 되어야 하는구나.
마치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는 꼭 계산을 해야 한다는 것처럼, 그 정도로만 이해했다.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전도서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노력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노력해서 좋은 상을 얻는 건 좋은데, 매개체가 되면 그 상을 받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상 받으러 갔다가 상 대신 관 짜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걱정 마, 이런 걸 쓸 일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진행할 거니까.”
리더님이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에 나는 다시 마음이 놓였다.
1년 동안 나를 지켜준 사람, 그 사람의 말이니까 믿을 수 있었다.
처음 이 세계에 던져졌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벌벌 떨던 나를 가장 먼저 붙잡아준 손이었다.
그 손을 기억하는데 어떻게 의심을 할 수가 있나.
강도현 형이 결정계를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큼직해서 그런지 작은 결정을 쥐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왠지 든든해 보였다.
“인원 제한은 몇 명까지죠?”
“네 명.”
네 명, 우리 파티는 정확히 다섯 명.
그 순간 나는 어렴풋이 계산이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숫자 감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5빼기4는 1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여분의 자리 정도로만 생각했다.
혹은 결정계를 하나 더 준비했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설마 그 남은 한 자리가 나일 거라는 생각은, 정말로, 조금도 하지 못했다.
일행은 조심스럽게 석실을 더 살펴보기 시작했다.
벽면의 문자를 정민호 현자님이 해독하는 동안, 나는 짐을 정리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윤서아 성녀님은 제단 근처에 결계를 하나 쳐두는 게 좋겠다며 조용히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가 낮게 울리는데, 이상하게도 무섭다기보다는 마음이 놓이는 소리였다.
강도현 형은 입구 쪽에 서서 계속 뒤를 살폈다.
“여기 들어올 때 뭔가 따라온 느낌 없었어요?”
형이 나한테 낮게 물었다.
“그런 느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아까부터 등 뒤가 서늘한 느낌이 계속 들었는데, 그게 긴장 때문인지 진짜 뭔가가 있어서인지 구분이 안 됐다.
제단 위 검은 안개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바람 한 줄기도 없는 석실에서, 저 혼자 살아 있는 것처럼.
나는 그걸 보면서 애써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려 했다.
그냥 오래된 마법 잔재일 수도 있잖아, 유통기한 다 지난 저주 같은 거.
크르르르...
그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훨씬 가까웠다.
아까는 벽 너머 어딘가에서 들리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바로 이 방 안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제단 위의 안개가 서서히 뭉쳐지며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뭉쳐 있던 안개가, 마치 조각가가 흙을 다듬듯 서서히 윤곽을 만들어갔다.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등줄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저게, 저게 지금 눈을 뜬 건가.
1년 전 마을이 사라졌던 그 순간처럼, 세상이 갑자기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숨소리마저 너무 크게 들리는 것 같아서,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전원 후퇴!”
리더님의 목소리가 석실을 울렸다.
하지만 안개는 이미 형체를 완성해가고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천장까지 치솟았고,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나는 다리가 얼어붙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뛰어야 한다고, 지금 당장 뒤로 돌아서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는데, 몸은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리더님의 시선이 아주 잠깐 나에게 머무는 것을 느꼈다.
그게 단순한 걱정의 눈빛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