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김도윤."
내 이름이 불렸다. 유골함을 품에 안고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등 뒤에서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는 게 들렸다.
"그럼 우리 여기서 못 돌아가는 거잖아요! 이거 사기 아니에요?"
"조용히 해, 신한테 사기라니."
"신이 사기 안 친다는 법 있어요?"
맞는 말이다. 나도 속으로 동의했다. 신이라고 사기를 안 친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오히려 신 정도 되는 존재면 사기 쳐도 처벌받을 일이 없으니 더 안심하고 칠 것 같은데.
마지막 순간까지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나는 이미 이동 중이었고, 다음 순간 완전히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작은 방이었다. 창문도 없고 벽만 밝게 빛나는 곳.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이 밋밋한 사각형 공간이었는데, 굳이 따지면 은행 대기실보다 좀 더 좁고 좀 더 하얬다. 아까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는데, 이번엔 어딘가 지쳐 있는 것 같았다.
[마물사라… 이건 좀 곤란하구나.]
"뭐가 곤란한데요?"
[요즘 이 세계에 오는 자들은 대체로 전투 계열 직업이 필요하느니라. 마물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직업이지. 안 그래도 결원이 많은데.]
결원.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취업 준비생 시절 자소서에 수백 번은 썼던 단어였다. 결원 충원, 결원 발생, 결원 대체 인력. 그런데 그 단어가 사후 세계에서, 나를 떨어뜨릴지 말지 결정하는 목소리 입에서 나오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죽어서까지 채용 시장 논리를 들어야 하나.
"결원이라는 게 무슨 뜻인데요."
[…아무것도 아니니라.]
능글맞게 넘기는 어조가 딱 부러지게 걸렸다.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게 뻔했다. 저 말투는 딱 면접관이 "혹시 궁금한 점 있으세요?" 하고 물었을 때 "저희 회사 이번 달에 퇴사자가 몇 명이었나요?"라는 질문에 돌려주는 어조랑 똑같았다. 이럴 때 캐물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궁금해졌다. 결원이라니, 그게 왜 마물사랑 상관있다는 건지. 설마 마물사로 배정된 사람들이 이전 세계에서 죽어서 지금 자리가 비었다는 뜻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스치자마자 나는 서둘러 다른 생각으로 화제를 돌렸다. 정신 건강에 좋을 게 없는 추측이었다.
"그럼 저 지금 반려당하는 거예요? 반려당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주나요?"
[돌려보내는 건… 규정상 어렵느니라. 다만 재배치 절차가 있으니.]
재배치. 이번엔 인사팀 용어가 나왔다. 신도 결국 조직 생활을 하는 존재였던 걸까. 위에 뭔가 더 높은 관리자가 있고, 그 밑에서 결원과 재배치를 처리하는 실무자가 있고, 그 실무자가 지금 내 앞에서 목소리로만 존재하며 곤란해하고 있다. 뭔가 짠했다. 신도 힘들구나.
그때 방 전체가 진동했다.
쿠구구궁.
바닥이 흔들리고 벽에서 균열 같은 게 번쩍였다. 처음엔 지진인가 싶었는데, 그 진동은 규칙적이었다. 마치 뭔가가 걷는 소리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방 안의 공기가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발밑에서 미세한 진동이 전해질 때마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이런.]
목소리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당황한 기색이 뚜렷했다. 방금까지 결원이니 재배치니 하며 사무적으로 굴던 목소리가 갑자기 반 박자 빨라졌다.
"뭐예요, 이거 왜 이래요?"
[아무것도 아니니라, 잠시 대기하거라.]
대기하라니, 뭘 대기하라는 건지도 안 알려주고. 어디 병원 대기실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상황에서 대기라는 단어가 나오니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나는 유골함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이상하게 그게 유일한 안전지대처럼 느껴졌다. 뼛조각이 든 항아리를 끌어안고 방패로 삼겠다는 발상 자체가 우스웠지만, 지금 이 방에는 그거 말고 잡을 게 없었다.
손끝이 시렸다. 방금까지 그런 느낌 없었는데, 갑자기 온도가 몇 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구멍이 서늘했다.
그리고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것보다 훨씬 낮고, 훨씬 위압적인 목소리였다. 저음이라기보다는 아예 다른 대역의 소리였다. 마치 사람 목소리를 몇 배로 늘려 재생한 것 같은, 듣는 순간 뼛속까지 진동이 전해지는 종류의 목소리.
[제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다. 원인 개체를 추적한다.]
[아니, 잠깐, 그건 아직 처리 중이었느니라!]
[처리는 늦었다. 이미 반응이 시작되었다.]
방금까지 나를 상대로 곤란해하고 능글맞게 굴던 목소리가, 이번엔 자기보다 높은 존재 앞에서 굽신거리는 어조로 바뀌었다. 신도 위아래가 있구나. 그것도 이런 순간에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느 조직이든 위에서 누르면 아래는 말이 빨라진다는 진리는 사후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모양이었다.
두 목소리가 부딪히는 사이 방 벽이 완전히 갈라졌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에 금이 뻗어나갔다. 그 틈으로 빛이 아니라 어둠이 쏟아져 들어왔다. 시커먼 안개 같은 것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며 내 발밑까지 스며들었다. 발목부터 서서히 차가워지는 감각이 올라왔다. 마치 얼음물에 발을 담근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뭔가 거대한 존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챘다. 이유도 모르겠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등에서는 이미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머리로는 아직 상황을 정리 못 했는데 몸은 벌써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망칠 곳이 없었다. 창문도 없고 문도 없는 방이었으니까.
"저기요, 이거 뭔가 진짜 위험한 상황 아니에요?"
대답이 없었다. 목소리 두 개 다 조용해졌다. 그게 더 무서웠다. 방금까지 그렇게 말이 많던 것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는 건, 지금 이 상황이 저것들 입장에서도 설명이 곤란한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나 같은 하급 존재를 상대로도 뭔가 둘러대던 것들이 아무 말도 못 한다는 게, 계급으로 치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짐작하게 했다.
어둠 속에서 뭔가 눈을 떴다. 붉은빛이 두 개, 아니 그 이상. 여러 쌍의 눈동자가 안개 사이에서 나를 향해 정확히 고정됐다. 하나둘 세어보려 했는데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 눈들이 전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한으로 바뀌었다.
[찾았다.]
그 한마디가 방 전체를 울렸다. 유리창이 있었다면 다 깨졌을 거다. 벽에 붙어 있던 균열들이 그 진동에 맞춰 더 크게 벌어졌다.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망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방금까지 결원이니 재배치니 하는 사소한 걱정을 하던 게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문제는 취업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거대한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늘로 덮인, 인간 몇 명은 우습게 삼킬 수 있을 만한 몸통. 날개가 펼쳐질 때마다 방 안 공기가 통째로 밀려났다. 그 바람에 내 머리카락이 뒤로 넘어갔고, 유골함을 안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
드래곤.
그것도 그냥 드래곤이 아니라, 온몸이 흑색으로 뒤덮인, 보고만 있어도 숨이 막히는 존재였다. 비늘 하나하나가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새까맸고, 몸통 크기만으로도 이 작은 방을 몇 번은 채우고 남을 것 같았는데, 저게 어떻게 이 좁은 공간에 들어와 있는 건지조차 이해가 안 됐다. 물리 법칙이니 공간이니 하는 것들이 저 존재 앞에서는 그냥 무의미한 개념 같았다.
그리고 그 붉은 눈동자가 나를 정확히 향했다.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