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일주일 뒤, 태오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저녁 식탁이었다.
수프 그릇에서 옅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일 동쪽 숲으로 토벌을 나간다. 작은 마물 몇 마리 정리하는 정도야. 시우, 같이 가볼래?”
식탁 위 숟가락이 딸그락 소리를 냈다.
서아의 얼굴이 굳었다.
“여보, 애를 데려간다고요?”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위험하지 않은 정도야. 그리고…….”
태오가 시우를 바라봤다.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시험.
그 단어에 시우의 눈이 반짝였다.
계산은 이미 끝나 있었다.
숲에 나가면 뭐라도 얻을 게 있다.
가만히 방 안에서 마력 서적만 뒤적이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가겠어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서아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여보.”
“괜찮아. 옆에 붙여둘 거야.”
태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서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시우를 향한 눈빛이 오래 머물렀다.
그 눈빛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시우는 굳이 해석하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동쪽 숲으로 향하는 마차 안.
바퀴가 자갈길에 부딪히며 덜컹거렸다.
창밖으로는 아직 어둠이 남아 있었다.
태오는 화염 마법을 다루는 기사 두 명을 대동했다.
갑주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챙, 챙.
기사 하나가 시우를 힐끗 쳐다봤다.
어린애를 왜 데려왔냐는 눈빛이었다.
시우는 그 시선을 무시했다.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창밖을 봤다.
마차가 멈췄다.
숲 초입.
짙은 흙냄새와 젖은 나뭇잎 냄새가 동시에 밀려들었다.
나무들 사이로 뭔가가 움직였다.
크르르르릉.
낮은 울음소리.
덤불이 흔들리고, 초록빛 비늘을 가진 도마뱀형 마물이 튀어나왔다.
“코볼트리자드다. 흔한 놈이지만 조심해.”
태오가 검을 뽑았다.
기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 마물의 비명이 뒤섞였다.
챙, 챙!
크게 소란스러운 전투는 아니었다.
기사 둘이 좌우로 흩어져 마물을 몰아붙였고, 태오는 그 뒤에 서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정리는 순식간이었다.
“시우, 이걸 봐라.”
태오가 손에 쥔 작은 돌덩이를 시우에게 건넸다.
회색빛의, 별다를 것 없는 돌이었다.
“이걸로 뭘 하라고요?”
“네 힘으로 이 돌의 성질을 바꿔봐. 감정 때 사제가 그랬지, 물질을 바꾼다고.”
어떻게 하는 건데.
방법도 모른 채 손에 힘을 집중했다.
뭘 상상해야 하지.
뜨거운 걸 상상하면 되나.
아니면 그냥 손끝에 마력을 밀어넣으면 되는 건가.
시행착오였다.
정확한 이론도, 배운 공식도 없었다.
전생이었다면 이런 무모한 시도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데이터도 없고, 검증도 없는 방법.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었다.
실패해도 잃을 게 없었다.
뜨거운 감각이 손끝에서 시작됐다.
윙.
돌이 손 안에서 서서히 형태를 바꿨다.
표면이 거칠어지고, 안쪽에서 은은한 열기가 새어 나왔다.
손바닥이 후끈거렸다.
땀이 배어 나왔다.
“……됐다.”
돌이 마치 작은 화로처럼 발열하기 시작했다.
기사 하나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게…….”
“이걸 저 놈한테 던져봐.”
태오가 코볼트리자드를 향해 턱짓했다.
또 다른 코볼트리자드였다.
방금 잡은 놈과는 다른 개체.
숲 안쪽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던 것을 기사들이 붙잡아 놓고 있었다.
시우가 돌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이 마물의 몸에 닿는 순간, 태오가 그 위로 화염 마법을 덧씌웠다.
화르르르릉!
폭발이 일었다.
숲 전체가 잠시 붉게 물들 정도의 화력이었다.
원래 태오 혼자 썼을 때보다 최소 세 배는 커진 화염이었다.
기사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이, 이게 남작님의 화염이었습니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니.”
태오가 시우를 바라보며 웃었다.
“내 화염에, 저 녀석의 연금술이 더해진 거다.”
마물이 있던 자리에는 재만 남아 있었다.
숲속에 정적이 흘렀다.
기사 둘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시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이 아직도 뜨거운 것 같았다.
이게, 내가 한 거라고.
전생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가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감각.
연구소에서 밤을 새워 논문을 완성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성과는 조직의 것이었고, 이름은 지워졌다.
여기는 다르다.
아니, 다른 척하는 걸지도 모른다.
“잘했다, 시우야.”
태오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큰 손이었다.
투박하고 거친 손.
칭찬.
순수한 칭찬.
이상하게도 가슴 한쪽이 뜨거워졌다.
기사 하나가 옆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도련님께 저런 재능이 있으셨군요.”
다른 기사가 맞받았다.
“이거 남작님보다 더 대단한 거 아닙니까.”
태오가 그 말에 소리 내어 웃었다.
“이 녀석 재능이 아직 반도 안 나온 거다.”
웃음소리가 숲에 울렸다.
하지만 그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낯선 냉기가 등줄기를 훑었다.
이게 언제까지 갈까.
또 그 생각이었다.
전생의 부모도 처음에는 웃었다.
갓난아기 시절의 사진 속에서는 분명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사라졌다는 것만 확실했다.
성적이 떨어지던 날부터였을까.
아니면 첫 등수에서 밀려나던 날부터였을까.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웃음이 있던 자리에 침묵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만 기억했다.
이 웃음도, 언젠가는.
시우는 태오의 손을 슬쩍 올려다봤다.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지금은 웃고 있다.
지금은.
그 순간 숲 깊은 곳에서 굵고 낮은 울음소리가 울렸다.
크아아아아아아.
방금 잡은 코볼트리자드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의 울음이었다.
땅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기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남작님, 저 소리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물러나라.”
태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방금까지의 웃음기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시우, 내 뒤로.”
명령이었다.
시우는 아버지의 등 뒤로 물러서면서도, 숲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그 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
무거운 발소리.
한 걸음마다 땅이 눌리는 듯한 소리.
방금 전까지 느꼈던 온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건 그냥 흔한 마물이 아니다.
기사 둘이 무기를 고쳐 잡았다.
손이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숲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붉은 눈 한 쌍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