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삼 년이 흘렀다.
강시우는 세 살이 되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말이 빨랐다.
걸음도 빨랐다.
숟가락질도, 젓가락질도 남들보다 능숙했다.
무엇보다 눈빛이 달랐다.
유모는 종종 그 눈빛을 보고 흠칫 놀랐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눈빛이었다.
계산하는 눈빛.
관찰하는 눈빛.
그날도 저녁 식탁이었다.
따뜻한 스튜 냄새가 식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우는 포크를 만지작거리며 촛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저건 왜 저렇게 만들었어요?”
식탁 위 촛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세 살짜리의 발음이라기엔 지나치게 또렷했다.
“그, 그건 불이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는 거란다.”
태오가 얼떨떨한 얼굴로 답했다.
아들의 질문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낯설었다.
“구조가 비효율적인데요. 무게중심이 너무 위쪽에 있어요. 바닥을 좀 더 넓게 만들면 안정적일 텐데.”
“……뭐?”
포크가 접시 위로 떨어졌다.
달그락.
식당 안에 정적이 흘렀다.
시녀 하나가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 또 이랬다.
시우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방금 뭘 뱉은 거지.
세 살짜리가 무게중심이라는 단어를 알 리가 없는데.
“아, 그냥 그런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그림책에서 봤어요.”
시우는 급히 말을 돌렸다.
그림책 얘기는 즉석에서 지어낸 변명이었다.
다행히 태오는 그 말을 곱씹지 않았다.
실수했다.
또 이런다.
머릿속에는 전생의 언어가, 전생의 논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 살짜리 몸에 갇힌 어른의 사고.
그게 자꾸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무리 조심해도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말들이 있었다.
숨기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럴 거면 그냥 벙어리처럼 살아야 하나.
시우는 스튜를 한 숟갈 떠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조심하자.
조심하자.
말은 최대한 짧게, 어휘는 최대한 단순하게.
“여보, 애가 좀…….”
서아가 태오에게 작게 속삭였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시우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나도 알아. 그냥 똑똑한 거겠지.”
태오가 애써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끝이 살짝 굳어 있었다.
그 미묘한 균열을 시우는 놓치지 않았다.
역시.
똑똑한 것과 이상한 것은 다르다.
부모도 그 경계를 느꼈을 것이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걸 보면 확실했다.
언제까지 숨겨야 하나.
세 살에서 다섯 살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 전에 뭔가 터질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저택 대문 앞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였다.
급박하고 거칠었다.
평소 정기적으로 오는 물류 마차의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전령이 급히 말을 몰고 온 모양이었다.
“남작님! 왕성에서 급보입니다!”
하인이 다급하게 뛰어들었다.
숨을 헐떡이며 문설주를 붙잡았다.
태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끌 소리.
“무슨 일이냐.”
“마물…… 마물이 왕국 전역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부 국경 지대는 이미 세 개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고……!”
순간 식당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시녀들도 접시를 나르던 손을 멈췄다.
“급증이라니, 얼마나.”
태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낮아진 목소리에는 긴장이 배어 있었다.
“지난달 대비 세 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신전에서는 이걸 신탁의 이변이라고까지 말하는 모양입니다.”
신탁의 이변.
무거운 단어가 식탁 위에 내려앉았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서아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아이를 품에 끌어당기며 팔에 힘을 주었다.
숨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괜찮아요, 아가.”
괜찮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시우는 그 품 안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아이의 몸이라 심장은 빨랐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마물 급증이라.
전생에는 이런 게 없었다.
여기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마법이 존재하고, 마물이 있고, 신탁이라는 것도 있는 세계.
게임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실제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세계.
좋아, 정보 하나 확보.
냉정하게 계산이 돌아갔다.
이 세계의 위험도가 생각보다 높다는 뜻이었다.
안전하게 방구석에서만 살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언젠가는 저 마물들과 부딪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태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서아가 물었다.
목소리에 두려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걱정 마. 이 영지는 아직 안전해. 왕성에서 대책을 논의할 거야.”
태오가 서아의 어깨를 감쌌다.
하지만 그의 눈빛도 흔들리고 있었다.
말과 눈빛이 다르게 움직이는 걸, 시우는 놓치지 않았다.
하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다음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령은 어디 있느냐.”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태오가 냅킨을 던지듯 내려놓고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그날 밤, 시우는 잠든 척 눈을 감고 부모의 대화를 엿들었다.
방문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들어왔다.
“여보, 시우가 요즘 너무 이상해요. 세 살짜리가 그렇게 말을 하다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별일 아닐 거야. 그냥, 똑똑한 아이겠지.”
“태오, 혹시…….”
서아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혹시 뭐?”
“신탁에서 말하는 이변이랑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긴 침묵이었다.
문 너머로 옷깃 스치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신전에 데려가야겠어.”
태오의 목소리가 결심을 담고 있었다.
“마침 다음 달에 정기 감정식이 있잖아. 원래는 다섯 살부터인데, 특별히 요청하면 될 거야.”
감정식.
시우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남들보다 이르게, 신전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정체가 판가름 나는 자리.
전생의 기억을 가진 세 살짜리라는 게, 그 자리에서 뭐라고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이제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우는 눈을 뜬 채 어둠을 응시했다.
천장의 나뭇결이 흐릿하게 보였다.
감정식.
신전.
그리고 신탁의 이변.
이 세 가지가 한 달 안에 부딪힐 예정이었다.
운이 좋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운이 나쁘면.
시우는 그 뒷말을 애써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