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당장 그 상인한테 가서 물러달라고 해."
나는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도련님, 그건…"
다은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가서 말할게."
나는 다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상점으로 뛰었다.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뛸 때마다 눈이 신발 안으로 들어와 발이 시렸다.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오후 3시 20분.
상점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목걸이, 그거 다시 살 수 있습니까."
숨이 차서 말이 끊어졌다.
상점 주인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손에 들고 있던 저울을 내려놓았다.
"그게, 이미 팔았습니다."
"팔았다고요?"
"오늘 아침에 순회 상인한테 넘겼어요."
머리가 하얘졌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 세공품, 딱 봐도 값이 나가는 물건이더라고요."
주인이 손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그런 세공품은 여기선 못 팔거든요. 도시로 가야 값을 제대로 받아요."
"순회 상인이 마침 왔길래, 잘됐다 싶었죠."
잘됐다, 라니.
그 말이 귀에 박혔다.
"그 상인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마 벌써 마을을 떠났을 겁니다."
"보름에 한 번씩 도는 사람인데, 다음엔 언제 올지 몰라요."
다리에 힘이 빠졌다.
나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뛰었다.
마을 입구까지 가는 동안, 발이 눈에 자꾸 걸렸다.
숨이 목구멍을 긁었다.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릎을 짚고 헐떡였다.
눈밭 위로 마차 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다.
두 줄로 길게, 지평선 끝까지.
이미 멀리, 하얀 벌판 끝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작은 점 하나가 움직였다.
그게 마차인지, 그저 눈이 반사된 빛인지도 알 수 없었다.
쫓아갈 방법이 없었다.
말을 빌릴 수도 없었다.
설령 빌린다 해도, 저 벌판을 가로질러 잡을 재간이 없었다.
손이 떨렸다.
이가 갈렸다.
내가 뭘 그렸는지도 모르는 채로 힘을 썼고, 그 대가를 다은이 대신 치렀다.
그것도 모른 채, 나는 마을 사람들의 감사를 받고 있었다.
우물을 고쳤다고, 온실을 지었다고.
설계도 한 장에 마을이 살았다고.
그 모든 것의 대가가 다은의 손목에서 사라졌다는 걸,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알고 있었다.
창고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발자국이 아까 뛰어나갈 때보다 훨씬 무거웠다.
창고로 돌아왔을 때, 다은은 여전히 빨래를 널고 있었다.
젖은 천을 펴는 손이 붉게 얼어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올라왔다.
"못 찾았어요?"
그녀가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응."
"괜찮아요."
빨래를 너는 손이 멈추지 않았다.
"안 괜찮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어머니 유품이었잖아."
다은이 잠깐 눈을 감았다.
빨래를 든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도련님."
"응."
"저도 알아요. 그게 어머니 유품인 거."
"그런데도 팔았어."
"네."
짧은 대답이었다.
그 안에 담긴 무게가 나를 눌렀다.
"왜 그랬어."
"관개 시설 자재비, 부족했잖아요."
"도련님이 신부님한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들었어요."
"그래서 네가 그걸."
"저 혼자 결정한 거예요."
"도련님한테 물어보면 안 팔게 하실 거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천장을 보면서 그녀의 목걸이를 떠올렸다.
은으로 만든 작은 새 모양의 세공품이었다.
언젠가 다은이 목에 걸고 있는 걸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웃으면서, 어머니가 남겨준 유일한 물건이라고 했었다.
그 말에 코끝이 시큰해졌던 기억이 났다.
다음 날, 박요한 신부가 나를 찾아왔다.
"들었습니다. 다은 양 이야기."
마을은 좁았다.
소문이 빨랐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순회 상인, 사실 제가 압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숨을 죄고 있던 것이 순간 풀렸다.
"정말입니까."
"보름에 한 번씩 이 근방 마을을 돕니다."
"다음에 올 때, 물건을 되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필요합니까."
신부가 잠깐 나를 살폈다.
대답하기 전에 뜸을 들이는 모습이 낯설었다.
"은화 삼백."
숫자가 머릿속에 박혔다.
삼백.
"많은 돈입니까."
내가 물었다.
"작은 돈은 아닙니다."
신부가 짧게 대답했다.
그날 밤, 나는 창고에서 계산을 했다.
삼백 은화.
관개 시설에 필요한 목재는 은화 이백사십.
철물 값은 은화 백오십.
합쳐서 삼백구십.
지금 가진 돈은 은화 이백일흔.
부족한 금액을 채우려면, 다른 데서 줄여야 했다.
목걸이를 되사는 데 삼백을 쓰면, 관개 시설엔 손도 못 댄다.
관개 시설에 삼백구십을 다 쓰면, 목걸이는 영영 못 찾는다.
마을 전체 관개 시설을 짓는 데 필요한 목재와 철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다은의 유품을 되찾을 돈이자, 마을 절반을 살릴 돈.
둘 중 하나였다.
둘 다는 안 됐다.
나는 종이 위에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적었다.
삼백을 여기에 쓰면, 저기서 뭐가 빠지는지.
어떻게 짜도 답은 같았다.
나는 스케치북을 펼쳤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펜을 쥔 손끝이 차가웠다.
종이 위에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밤 11시가 넘었을 때, 다은이 창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련님."
"응."
"고민하시는 거 알아요."
책상 위에 흩어진 종이들을 그녀가 힐끗 봤다.
숫자들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
"저 때문에 고민하지 마세요."
"어떻게 안 해."
목소리가 커졌다.
"네가 나 때문에 그걸 팔았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마을 자재로 쓰세요."
다은이 단호하게 말했다.
"목걸이는 물건이에요. 마을은 사람이고요."
"너한텐 어머니잖아."
"어머니는 이미 안 계세요."
다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으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근데 마을 사람들은 아직 있잖아요."
"토마스 할아버지도, 강가 옆에 사는 애들도, 다 아직 살아 있잖아요."
눈물이 흘러야 하는데, 흐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웃었다.
웃으면 안 되는 얼굴로 웃었다.
"저 괜찮아요, 도련님."
"목걸이 없어도 어머니 기억은 여기 있으니까."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짚었다.
그 손짓 하나가 나를 무너뜨렸다.
나는 그 밤, 결정을 내렸다.
종이 위의 숫자를 지우고 다시 적었다.
이번엔 삼백구십, 오직 그 숫자만 남겼다.
다음 날 아침, 박요한 신부에게 말했다.
"자재를 사겠습니다."
"목걸이는요."
"…못 찾습니다."
말을 뱉는 순간, 목이 잠겼다.
박요한 신부가 나를 오래 쳐다봤다.
그 시선이 무슨 뜻인지 처음엔 알 수 없었다.
"그거,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요."
"쉽지 않았습니다."
"다은 양은 압니까."
"이미 저한테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신부가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그 웃음이 오래 가지 않았다.
"그 아가씨, 보통이 아니군요."
"…네."
"도련님도, 그 말을 따르는 걸 보면 보통이 아니시고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열흘, 나는 우물과 온실 설계도를 그렸다.
작은 사람들은 매번 더 정교하게 움직였다.
목재를 나르고, 돌을 쌓고, 관을 이었다.
첫째 날, 관개용 수로 기초를 파는 데 하루가 걸렸다.
셋째 날, 온실의 뼈대가 올라갔다.
일곱째 날, 우물 두 개가 완성됐다.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작은 사람들이 흙을 나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종종 다은의 옷깃을 곁눈질했다.
다은은 목걸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빨래를 널 때, 물을 길을 때, 그녀의 목엔 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밤마다, 그녀가 없는 옷깃 자리를 볼 때마다 뭔가가 가슴에 걸렸다.
작은 새 모양의 은세공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빈자리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 지나갈 무렵, 마을에서 더는 얼어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우물에서 물이 끊이지 않고 나왔고, 온실에서 채소가 자랐다.
아이들이 굶지 않았다.
박요한 신부가 처음으로 나를 '설계자님'이라 불렀다.
"설계자님 덕분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웃어야 하는데 웃지 못했다.
그 호칭이 왜 이렇게 무겁게 들렸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은의 목에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것을,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