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추방됐더니 만능설계사라니

3화

온기는 등 뒤가 아니라 마차 바닥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어…" 다은이 먼저 알아챘다. "따뜻해졌어요!" 나는 손을 바닥에 대봤다. 정말이었다. 차가운 나무 바닥이 미세하게 따뜻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그 온도가 낯설어서, 나는 손을 뗐다가 다시 붙였다. 세 번을 그렇게 했다. 마차 문을 열었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런데도 발밑은 서늘하지 않았다. 작은 사람들이 마차 바퀴 아래, 그리고 바닥 틈새마다 뭔가를 설치해 놓았다. 손바닥만 한 금속 판. 그 안에서 은은한 열기가 흘러나왔다. 표면에는 잔글씨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무슨 원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완성되었습니다." 아까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작은 사람 중 하나가 허리를 숙였다. "명칭, 휴대형 온열판. 설계자님이 제공한 이미지 기반으로 제작." 나는 무릎을 꿇고 그 판을 만져봤다. 뜨겁지 않았다. 딱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온도였다. 너무 뜨거우면 위험하고, 너무 미지근하면 무의미하다. 그 경계를 정확히 짚어낸 온도였다. "이게 진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지, 놀랍다는 말을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은이 마차 안에서 손을 뻗었다. "도련님, 진짜 따뜻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추워서 떨리는 게 아니었다. 눈가가 붉었다. 울려는 걸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울지 마." "안 울어요." 안 우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못 본 척했다. 밤이 지나고, 마부가 마차를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말들도 온열판 옆에서 하룻밤을 버텼는지, 눈빛이 조금 살아 있었다. 동틀 무렵, 우리는 설한촌 초입에 도착했다. 마을은 예상보다 더 참혹했다. 지붕 절반이 눈 무게에 무너져 있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긴 했지만, 그 연기조차 힘이 없어 보였다. 바람이 불면 픽 꺾여버릴 것 같은, 가늘고 마른 연기였다.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도 등을 최대한 굽히고, 옷을 몸에 최대한 감아 붙인 채 빠르게 걸었다.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마차 소리가 들리면 오히려 더 빨리 걸음을 옮겼다. 마을 입구에서 한 남자가 우리를 막았다. 검은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단단했다. 눈매가 날카로웠다. "누구십니까." "선우진입니다. 후작가에서 보냈습니다." 남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굳었다. "박요한입니다. 이 마을 신부입니다." "후작가에서 사람을 보낸 이유가 뭡니까." 말투에 날이 서 있었다. 환영이 아니었다. "추방입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숨길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숨긴다 해도 오래가지 못할 거짓말이었다. 박요한 신부는 잠깐 나를 훑어보고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 시선이 발끝부터 얼굴까지 훑고 지나갔다. 값을 매기는 눈이었다. 헐값에 팔려 나온 물건을 보는 눈. "묵을 곳은 저기 빈 창고입니다." 환영은 없었다. 동정도 없었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뒤따르던 몇몇 주민들도 조용히 흩어졌다. 아무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창고는 낡았다. 바닥에 짚이 깔려 있었고, 지붕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그래도 그 안에 온열판을 몇 개 깔자, 견딜 만한 온도가 되었다. "여기서 지내야 하는 건가요?" 다은이 물었다. "응." "괜찮아요. 도련님이랑 같이 있으니까."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날부터 나는 마을 사람들을 관찰했다. 아침이면 사람들은 물을 길으러 나왔다가, 얼음을 깨는 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낮에는 집 안에서 웅크린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화로 하나에 온 가족이 모여 자야 했다. 장작은 부족했고, 그마저도 아까워 태우지 못했다. 노인과 아이들이 먼저 죽었다. 죽는다는 말이 그렇게 가벼운 말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 마을에서 다시 배웠다. 전생에 뉴스에서 보던 통계 숫자와, 지금 눈앞에서 실제로 줄어드는 사람의 숫자는 전혀 다른 무게였다. 이틀째 되던 밤, 나는 창고 안에서 다시 종이를 펼쳤다. 촛불 하나가 흔들렸다. 그 불빛에 종이 위 글씨가 일렁였다. "난방 장치가 필요해."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다시 대답했다. "그려봐." 전생의 기억을 총동원했다. 온수 파이프를 벽 속에 두르는 구조. 중앙에서 물을 데우고, 순환시키는 방식. 한국 아파트에서 흔했던 온돌과 유사한 원리였다. 바닥 밑에 열을 흐르게 하고, 그 열이 벽을 타고 방 전체로 퍼지게 만드는 구조. 전생에서는 흔했던 기술이, 이곳에서는 존재 자체가 상상 밖의 것이었다. 스케치북 몇 장을 채웠다. 다은이 옆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다. 손이 시린지 촛대를 자꾸 바꿔 쥐었다. "이게 마을 전체에 될까요?" "몰라." "그래도 해보실 거죠?" "응." 다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늘 그랬다. 확신이 없어도 내가 하겠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작은 사람들이 다시 종이 밖으로 나타났다. 이번엔 열 명 정도였다. 저마다 손에 도구를 들고 있었다. 망치, 못, 두루마리로 된 설계도 같은 것. "규모가 큽니다." 리더처럼 보이는 하나가 말했다. "자재 확보에 시간이 걸립니다. 완성까지, 사흘." "사흘 안에 몇 명이나 더 죽을지 몰라." 나는 말했다.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차가운 대답이었다. 숫자로 치환된 목소리, 감정이 삭제된 어조. 그래도 작은 사람들은 곧장 작업에 들어갔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몸을 돌려 흩어지고 있었다. 사흘. 그 사흘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평소보다 몇 배는 느리게 느껴졌다. 초침 하나가 움직이는 것도 눈으로 좇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첫째 날. 마을 노인 한 명이 죽었다. 박요한 신부가 장례를 치렀다. 관도 제대로 없이, 낡은 천에 감싸인 채로 땅에 묻혔다. 땅이 얼어 있어서 삽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남자 몇이 번갈아 땅을 팠다. 나를 보는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당신이 여기 온 뒤로 사람이 죽었소." 한 주민이 스쳐 지나가며 던진 말이었다. 사실이 아니었다. 그 노인은 내가 오기 전부터 앓고 있었다고, 다은이 옆에서 조용히 알려줬다. 그래도 나는 그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정정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둘째 날. 작업 소리가 마을 지하에서 계속 들렸다. 땅을 파는 소리,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 주민들은 불안한 얼굴로 수군거렸다. "저 귀족 아이가 뭘 하는 거야." "땅을 파헤치고 있대." "묘를 파는 건 아니겠지." 나는 그 말들을 다 들었다. 못 들은 척했다. 박요한 신부가 창고 앞까지 찾아왔다. 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봤다.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마을을 데우려는 겁니다." "말이 됩니까, 그게."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믿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막지도 않았다. 다은만이 나를 믿었다. "도련님, 밥 드세요." 그녀는 매번 같은 말을 건넸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 말 안에 다른 뜻이 다 들어 있었다. 괜찮다는 말, 잘하고 있다는 말, 그리고 곁에 있겠다는 말. 셋째 날 밤. 작업 소리가 멈췄다. 마을 전체가 조용해졌다. 바람 소리만 남았다. 나는 창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집집마다 굴뚝 옆 벽에서 미세한 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벽이… 벽이 따뜻해!" 그 소리를 따라, 다른 집에서도 하나둘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손을 벽에 대고,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나는 그 광경을 창고 앞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성공이라고 확신하지도 못한 채로,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때, 박요한 신부가 자신의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처음 보는 표정이 걸려 있었다.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 발걸음이, 아까와는 전혀 다른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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