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거짓말이 쌓아 올린 성

5화

첫 화살이 날아온 건 순식간이었다. 쉬익. 성벽 위 병사 하나가 목을 관통당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비명도 없었다. 그냥 쓰러졌다. 그 소리가, 그 짧고 건조한 파공음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엄호해! 방패 들어!" 노인이 목이 터지도록 소리쳤다. 신도들이 허둥지둥 방패로 몸을 가렸다. 대부분 나무판자를 대충 엮은 것들이다. 저게 화살을 막아줄 리가 없는데, 그래도 아무것도 안 드는 것보다는 나은가. 한 번. 또 화살이 날아왔다. 이번엔 다행히 방패에 튕겼다. 퍽, 소리가 났다. 방패를 든 청년이 그 충격에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버텼다. 두 번. 두 번째 화살은 성벽 틈새로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맞지 않았지만, 그 소리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신도가 그대로 주저앉아 오줌을 지렸다. 나무라지도 못했다. 나였어도 저랬을 거다. 세 번째는 성벽 아래 부상자를 옮기던 젊은 남자의 어깨에 꽂혔다. 남자가 쓰러지며 짐수레를 놓쳤다. 짐수레가 성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안에 실려 있던 붕대와 약초 뭉치가 흙바닥에 쏟아졌다. 다혜가 그 남자에게 달려갔다. 화살을 뽑고 지혈을 시작했다.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옷자락을 찢어 상처를 감싸는 손놀림이 서툴렀지만, 서투른 채로도 계속 움직였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다혜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괜찮을 리가 없는데도, 저 말이 그나마 신도들을 붙잡아주고 있었다. 거짓말이 사람을 살릴 때도 있다는 걸, 나는 이 종교를 만들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성문 쪽에서 큰 충격음이 들렸다. 콰앙! 공성 망치가 성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거다. 나무가 우는 소리, 쇠 장식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버텨! 조금만 버텨!" 버티라고 소리치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뭘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나도 모르는데. 사기꾼이 전쟁터에서 지휘관 흉내를 내고 있다. 이게 웃긴 상황이 아니면 뭐가 웃긴 상황일까. 서유리가 신도들 사이를 돌며 기도문 비슷한 것을 외치기 시작했다. 원래 마고교에서 대충 지어낸 문구였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상하게 효과가 있었다. 신도들의 눈빛이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서유리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성녀님이 계신다! 여신님의 축복이 있다!" 누군가 외쳤다. 그 말이 퍼지자 방패를 놓으려던 사람들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웃긴 일이다. 진짜 여신이 있다는 걸 안 지 하루도 안 됐는데, 정작 신도들은 그걸 사기라고 믿고 있는 게 오히려 힘이 되고 있다. 진실이 위로가 되지 못하고, 거짓이 방패가 되는 순간이다. 또 콰앙 소리가 울렸다. 성문이 흔들렸다. 성문 틈새로 나무 파편이 튀어나왔다. "교주님! 성문이 곧 뚫립니다!" 노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낫을 쥔 손에 힘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나는 성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공성 망치를 밀고 있는 병사들 뒤로, 백마를 탄 한지헌이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태도였다. 저 여유. 저건 확신에서 나오는 여유다. 이길 게 뻔한 싸움을 구경하는 얼굴. 순간 뭔가 눈에 걸렸다. 한지헌 옆에 서 있는 부관이 뭔가를 보고하는데, 한지헌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눈 한 번 깜빡이면 놓칠 정도로. 뭐였을까. 부관이 손짓으로 성벽 뒤쪽, 정확히는 서쪽 방향을 가리켰던 것 같다. 그쪽에 뭐가 있길래. "저기 봐요." 서유리가 옆으로 다가와 같은 곳을 가리켰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방금까지 신도들 사이를 뛰어다닌 여파였다. "저 사람, 표정이 이상했어요. 지금 막." "봤어요? 저도 봤는데." "부관이 뭐라고 하니까 저런 얼굴을 했잖아요." 우리는 서로를 쳐다봤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남자, 뭔가 약점이 있다. "교주님이 이따 포로라도 잡아서 알아봐요." "성녀님이 잡으시면 되잖아요." "저는 신도들 안심시켜야 한다니까요." "저도 지휘해야 하는데요." 또 핑퐁이었다. 이 여자와는 위기 앞에서 항상 이런 식이다. 성벽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서유리와 마주하면 나는 저절로 말을 받아치고 있다. 이게 습관인지 방어기제인지 나조차 헷갈렸다. 그 순간, 성문이 마침내 부서졌다. 콰앙!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밀고 들어왔다. 갑옷 부딪는 소리, 발소리, 고함이 한꺼번에 마당을 채웠다. "막아! 물러서지 마!" 노인이 낫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신도 몇이 그 뒤를 따랐다. 손에 든 무기라고는 부엌칼이나 곡괭이가 전부였다. 서걱. 낫이 갑옷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용없었다. 상대는 제대로 무장한 병사들이다. 갑옷에 흠집도 못 냈다. 노인이 창에 찔려 쓰러졌다. 순식간이었다. 창끝이 배를 관통하고 빠져나가는 순간, 노인의 몸이 뒤로 꺾이며 흙바닥에 떨어졌다. "할아버지!"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저 노인, 어제까지 나에게 지시를 청하던 사람이다. 하촌에서 땔감이나 팔던 사람이 지금 창에 꿰뚫려 쓰러졌다. 어제는 웃으면서 나에게 겨울 준비를 언제 시작해야 하냐고 물었던 사람인데. 속이 뒤틀렸다. 이게 진짜다. 사람이 진짜로 죽는다. 무대 위 연기가 아니고, 시나리오도 아니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진짜 죽음이다. "교주님, 지시를!" 다른 신도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입이 벌어졌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서유리가 내 옷깃을 잡았다. 손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뭐라도 해요! 지금!" "뭘 하라는 거예요! 저는 사기꾼이라고요, 사기꾼이 전쟁을 어떻게 지휘합니까!" 소리쳤다. 처음으로 진심을 뱉었다. 지금까지 눌러왔던 말이 결국 이런 순간에 터져 나왔다. 서유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그 뒤로 병사들이 계속 밀고 들어오는 소리, 신도들의 비명, 무기가 부딪는 소리가 뒤섞여 그 침묵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성문 안쪽 마당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방패를 든 신도들이 뒤로 밀려났고, 몇몇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흙과 피가 섞인 냄새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짙고 역겨웠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나는 아까 봤던 한지헌의 굳은 표정을 다시 떠올렸다. 저 남자가 흔들린 이유. 그걸 찾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전투에서 살아남으려면 그게 유일한 실낱같은 길이다. 저 여유로운 얼굴에 균열이 갔던 순간,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비명 소리 사이로 다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주님! 부상자가 너무 많아요! 도와주세요!" 나는 그 목소리를 향해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서 있는 것조차 사치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성문 너머로 새로운 병력이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사람이었던 것들이 흙바닥 위에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그 사이로 병사들의 창끝이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이대로는 다 죽는다. 서유리가 다시 내 팔을 붙잡았다. 이번엔 도발도 아니고 핑퐁도 아니었다. 그냥, 붙잡았다. "정신 차려요. 지금 안 움직이면 진짜 다 죽어요." 그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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