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그날 이후로 매일 밤 같은 일이 반복됐다.
눈을 감으면 어둠이 열렸다.
그 어둠은 매번 다른 모양이었다.
어떤 날은 좁은 골목이었고,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이었다.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형체는 매일 조금씩 달랐다.
어제는 사람 형상이었고, 오늘은 짐승의 윤곽이었다.
싸움이 벌어졌다.
주먹이 오갔다. 발이 스쳤다. 살이 갈라지는 감각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현실이었다면 벌써 죽었어야 할 상처였다.
그런데 눈을 뜨면 몸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이기면 알림이 울렸다.
띠링.
[신규 스킬 【감각 확장】을 획득하였습니다.]
태오는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상태창을 확인했다.
스킬창에 새 항목이 추가돼 있었다.
이런 게 게임이면 좀 신나기라도 하지.
현실인데 게임식 알림만 붙어 있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음 날은 이랬다.
띠링.
[신규 스킬 【맷집·중】을 획득하였습니다.]
맷집이라니.
이름부터 성실하다.
태오는 픽 웃었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스킬은 매번 달랐다.
등급도 매번 높았다.
【감각 확장】은 등급 D였고, 【맷집·중】은 등급 C였다.
하루하루 계단을 오르듯 스킬 등급이 조금씩 뛰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자면서 스킬 파밍이라니.
남들은 던전 가서 목숨 걸고 싸운다는데, 나는 이불 속에서 이러고 있다.
태오는 통찰을 이용해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상태창]
이름 : 강태오
기본 스킬 : 【목각】
부가 스킬 : 【통찰】 【감각 확장】 【맷집·중】
목각.
등급 표시가 없었다.
다른 스킬은 다 등급이 붙는데, 목각만 아니었다.
뭔가 이상하다.
다른 놈들 각성 스킬은 하나만 있어도 어디 명함 내밀 수 있다는데.
목각은 이름만 봐도 하품 나온다.
나무를 깎는다는 건지, 나무처럼 굳는다는 건지.
설명조차 제대로 안 붙어 있었다.
태오는 통찰을 목각에 겨눠보았다.
[해당 스킬은 특수 조건에서만 등급이 표시됩니다.]
조건이 뭔데.
친절하게 좀 알려주지.
시스템이란 놈은 꼭 이럴 때만 입을 다물었다.
며칠 동안 태오는 잠들기 전 상태를 바꿔보았다.
일찍 자고, 늦게 자고, 배고픈 채로 자고.
카페인을 들이켜고 억지로 버텨보기도 했다.
그날은 악몽 전투가 아예 열리지 않았다.
빈속으로 자면 형체가 아예 안 나오는 건가.
반쯤 굶은 채로도 시도해봤다.
이번엔 형체가 나오긴 했는데 힘이 유독 약했다.
싸우는 시간도 짧고 얻는 스킬도 별거 없었다.
패턴이 있는 것 같은데, 뭔가 부족하다.
어느 밤, 유난히 몸이 피곤한 날이었다.
학교에서 종일 뛰어다닌 날이었다.
체육 시간에 오래달리기를 했고, 방과 후엔 청소 당번까지 걸렸다.
눈을 감자 곧바로 잠에 빠졌다.
숙면이었다.
평소라면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을 텐데, 그날은 눈을 감는 순간 바로 암전이었다.
그날 밤 악몽 전투가 유난히 선명했다.
형체도 더 강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전에 비해 훨씬 매끄러웠다.
공격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질 정도였다.
그런데 얻은 스킬도 더 강했다.
띠링.
[신규 스킬 【진동 감지】를 획득하였습니다.]
태오는 눈을 뜨자마자 상태창을 열었다.
【목각】.
등급 : S.
숨이 턱 막혔다.
방금까지 아무 표시도 없던 자리에 등급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그것도 S.
학교에서 S등급 스킬 가진 놈은 손에 꼽는다는데.
효과 : 사용자를 깊은 수면 상태로 유도, 악몽 전투 발생 확률 상승.
이 새끼가.
목각은 무능이 아니었다.
숙면을 유도하는 힘이었다.
숙면할수록 악몽 전투가 더 자주, 더 강하게 일어났다.
등급이 낮다는 건 남들 기준일 뿐이었다.
다들 무능이라 불렀지만, 사실은 매일 밤 스킬을 찍어내는 공장을 돌리고 있었던 거다.
남들은 던전에서 피 흘리며 스킬 하나 겨우 건지는데, 나는 이불 속에서 공장 라인을 돌리고 있었다.
이거 진짜 개꿀 아니냐.
다만 문제는, 잠을 잘 자야 한다는 거다.
숙면이 트리거라면, 스트레스받고 예민해지면 이 공장도 멈춘다는 소리다.
태오는 천장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다음 날 교실.
1교시 종이 울리기 전,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있었다.
최고동이 태오의 이마에 펜을 들이댔다.
야, 가만히 있어봐.
최고동이 낄낄거리며 뭔가를 그렸다.
펜 끝이 이마를 긁는 느낌이 간지러웠다.
태오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주변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는 배를 잡고 웃었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어 사진까지 찍었다.
거울을 확인하니 이마에 '개'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글씨체가 삐뚤빼뚤했다.
태오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웃었다.
오늘은 재밌겠다.
최고동은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다음 날, 최고동이 태오의 등 뒤에서 의자를 집어 들었다.
등받이를 붙잡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소리가 났다.
야, 목각.
의자가 날아왔다.
교실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누군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태오는 몸을 틀지 않았다.
손을 뻗어 의자 다리를 붙잡았다.
그 손끝에서 목재의 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손끝에 힘을 실었다.
빠지직.
의자 다리가 그대로 부서졌다.
나무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
최고동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 뭐야.
목소리가 떨렸다.
방금까지 낄낄거리던 여유는 흔적도 없었다.
태오는 부서진 다리를 바닥에 던졌다.
쿵, 소리가 났다.
앞으로 이런 거 하지 마라.
좋게 말할 때.
목소리는 낮았다.
그래서 더 무섭게 들렸다.
교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최고동은 뒷걸음질 쳤다.
발이 의자 다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담임 조현우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출석부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적당히들 해.
말은 그게 전부였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출석부로 돌렸다.
태오는 그 무심한 태도에 헛웃음이 나왔다.
적당히라는 말이 참 편하다.
누군 의자에 맞아 죽을 뻔했는데.
교실 뒷문에서 누군가 팔짱을 끼고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틀에 등을 기댄 채였다.
금발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서하린이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생각보다 재밌는 놈이네.
그녀는 그 말을 뱉고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발걸음 소리가 복도 너머로 점점 멀어졌다.
태오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