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흑련학원 등교 첫날.
건물은 낡은 창고 같았다.
페인트 벗겨진 담벼락에 금이 가 있었다.
정문 옆 안내판은 반쪽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자 아이들 몇이 태오를 흘끗 쳐다봤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렸다.
관심조차 오래 두지 않는 눈빛이었다.
태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 1반이라는 팻말을 확인했다.
문을 열었다.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야, 저거 목각이래.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웃음소리가 터졌다.
비웃음이었다.
등급 없는 놈이 여기까지 왔냐는 웃음.
태오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찾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할 이유도 없었다.
자리는 이미 없었다.
책상 하나가 창밖으로 던져져 있었다.
뭐야.
태오가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1층 화단 위에 책상 다리가 부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누가 저걸 던졌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네 자리야, 목각.
최고동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놈이었다.
눈빛에 벌써 서열이 새겨져 있었다.
주변 아이들이 킥킥거렸다.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태오를 가리키며 낮게 속삭였다.
담임 조현우는 교실 뒤에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고개도 들지 않았다.
선생님.
태오가 조현우를 불렀다.
적당히 해라.
조현우가 서류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태오는 별 수 없이 바닥에 앉았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엉덩이에 닿았다.
바닥에 앉은 채로 태오는 교실을 둘러봤다.
등급이 새겨진 팔찌를 찬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붉은색, 은색, 금색.
등급 낮은 놈들도 최소한 뭐라도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
태오의 팔찌는 회색이었다.
등급 없음.
목각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하루 종일 그런 취급이었다.
필기구를 숨기고, 도시락을 발로 차고, 이름 대신 목각이라 불렀다.
쉬는 시간마다 누군가 지나가며 어깨를 툭 치고 갔다.
사과는 없었다.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점심시간엔 도시락 뚜껑이 열린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반찬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태오는 그것도 줄줄이 주워 담았다.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하면 안 빌려주고, 안 빌려달라고 하면 억지로 던져줬다.
말이 안 되는 짓거리였다.
그게 하루 종일 반복됐다.
태오는 그 모든 걸 묵묵히 견뎠다.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속으로는 계산이 굴러가고 있었다.
버텨야 이긴다.
첫날부터 튀어봐야 좋을 게 없었다.
등급 없는 놈이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태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문으로 들었다.
어느 학교든 목각은 조용히 지내다가 자퇴하거나, 반항하다가 더 심하게 밟히거나.
두 갈래뿐이었다.
그래서 태오는 세 번째 길을 만들어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하나둘 가방을 챙겨 나갔다.
누구도 태오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밤, 태오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한참 올려다봤다.
어깨가 뻐근했다.
하루 종일 바닥에 앉아 있었던 탓이었다.
눈을 감자 세상이 뒤틀렸다.
─
어둠뿐인 공간이었다.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악몽 전투가 시작됩니다.]
낮은 알림음이 울렸다.
태오는 주위를 둘러봤다.
바닥도, 벽도, 하늘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저 검은 색뿐이었다.
앞에서 검은 형체가 일어섰다.
사람 형체를 한 무언가였다.
눈이 없었다.
말도 없었다.
숨소리도 없었다.
이건 또 뭐야.
태오가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덤벼드는 게 빨랐다.
태오는 몸을 틀었다.
어깨가 스치듯 베였다.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다.
이거 진짜 죽일 셈으로 덤비네.
옷깃 사이로 붉은 게 번졌다.
피인지 뭔지도 모를 액체였다.
주먹을 뻗었다.
형체의 몸이 순간 흩어졌다.
손이 허공을 갈랐다.
잡을 게 없었다.
다시 뭉치더니 팔을 뻗어왔다.
태오는 재빨리 피했다.
바닥을 굴렀다.
등이 아렸다.
숨이 가빴다.
팔다리가 무거워졌다.
이거 진짜 죽는 거 아니야.
머릿속으로 그 생각이 스쳤다.
동시에 형체가 다시 달려들었다.
태오는 무릎을 꿇었다가 몸을 낮췄다.
숨을 삼켰다.
그 순간, 형체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공격이 어디로 올지 보였다.
오른쪽.
몸을 비틀었다.
주먹이 빗나갔다.
동시에 태오의 팔이 형체의 목을 걷어냈다.
깔끔한 동작이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검은 형체가 흩어지며 사라졌다.
연기처럼, 먼지처럼.
[악몽 전투 종료.]
[신규 스킬 【통찰】을 획득하였습니다.]
알림이 울렸다.
태오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통찰.
이름부터 뭔가 있어 보이는 스킬이었다.
등급도 함께 표시됐다.
S랭크.
태오의 눈이 커졌다.
이게 뭐야.
다시 확인했다.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S랭크 【통찰】.
등급 없는 목각을 받은 놈이 S랭크 스킬을 얻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태오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어 물었다.
대답할 사람은 없었다.
다음 순간 눈이 떠졌다.
방 천장이 보였다.
식은땀이 이마에 흘렀다.
숨은 가빴지만 몸은 개운했다.
뭐지, 이거.
태오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분명히 꿈이었다.
그런데 스킬은 진짜였다.
손끝에 새로운 감각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뭔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이게 우연은 아닐 것 같은데.
태오는 손바닥을 펼쳐 봤다.
아무것도 없는 손이었다.
그런데도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낮에 최고동이 던진 책상.
교실 안의 시선들.
조현우의 무심한 얼굴.
전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위로 검은 형체의 움직임이 겹쳐졌다.
오른쪽.
방금 전 전투에서 봤던 그 감각이 다시 손끝을 스쳤다.
이게 통찰이라는 건가.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다음 날이 올 때까지, 태오는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등급 없는 목각이 S랭크를 갖게 됐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내일 교실에 들어가면, 최고동의 얼굴부터 다시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