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몸을 감싸는 온기였다.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낡았지만 깨끗한 목재 천장이었다.
나뭇결을 따라 옹이 자국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잠시 멍하니 누워 있다가, 저택의 가정부 방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온몸의 근육이 뻐근하게 저항했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마치 밤새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것 같은 통증이 스며 있었다.
천천히 상체를 세우자 이불이 스륵 미끄러져 내렸다.
두꺼운 솜이불이었다.
어제 방을 안내받았을 때는 없던 것이었다.
베개도 새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손끝으로 이불의 감촉을 문질러보았다.
따뜻하고, 조금 낡았지만 정성스레 손질된 느낌이 났다.
(누가 이걸...)
방 한쪽에 놓인 나무 대야가 눈에 들어왔다.
안에는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남은 물이 담겨 있었다.
옆에는 깨끗한 수건과 비누 한 조각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한참 바라봤다.
누군가 시간을 들여 준비한 흔적이었다.
어젯밤 쓰러진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바닥에 쓰러졌는데, 지금은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누군가 나를 옮겨준 것이다.
그것도 조심스럽게, 옷매까지 정돈해서.
(그 사람이... 나를 여기까지.)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조여왔다.
삼 년 만에 받아본 다정한 손길이었다.
낯선 마을에서, 낯선 사람에게서, 이런 배려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목이 살짝 메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애써 그것을 삼켰다.
나는 대야의 물로 얼굴과 손을 씻었다.
물은 부드럽고 차분한 향이 났다.
약초를 우린 것 같은 냄새였다.
씻고 나니 조금은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손등에 남은 상처가 물에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지만, 그 통증조차 이상하게 견딜 만했다.
방문 밖으로 나가자 복도는 아침 햇살로 밝았다.
창문 틀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바닥에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먼지 한 톨조차 그 빛 속에서 반짝이며 떠다녔다.
부엌에서 낮은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다루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
도마 위에서 무언가를 써는 규칙적인 소리도 섞여 있었다.
부엌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화로 앞에 서 있었다.
어젯밤과 같은 검은 옷, 같은 부리 마스크, 같은 녹색 안경.
아침 햇살 속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보다 더 또렷하게, 이질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어났군요.]
그녀가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어제는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불이랑 물... 준비해주신 거죠?"
[가정부가 쓰러져 있으면 곤란하니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무심했다.
특별히 다정한 기색도, 특별히 냉정한 기색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말투와 이 배려는 어울리지 않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화로 위에는 냄비가 끓고 있었고, 도마 위에는 손질된 생선과 근채류가 놓여 있었다.
생선의 살결이 유난히 희고 깨끗했다.
누군가 새벽부터 장을 봐온 것 같았다.
"아침 준비는 제가 해야 하는데..."
[오늘은 제가 했습니다. 내일부터 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식사는 생선과 근채 위주로 준비해주세요. 가끔은 단 것도 좋습니다.]
나는 그 말을 머릿속에 새겼다.
"알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쉬세요.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아 보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냄비를 저었다.
숟가락이 냄비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달칵, 달칵.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리듬이었다.
나는 부엌 한쪽 의자에 앉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검은 옷자락 아래로 드러난 손목이 유난히 희고 가늘었다.
움직임마다 그 손목이 아침 햇살을 받아 옅게 빛났다.
(저 안경 너머엔 어떤 얼굴이 있을까.)
궁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어젯밤 그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질문은 최소한으로.
그럼에도 궁금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든, 어제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보인 태도에는 분명한 온도가 있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이상하게 균일한 온기.
그것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다.
"저...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뭡니까.]
"이 마을에는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짧은 정적이 흘렀다.
숟가락 소리가 멈췄다.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로 위 불꽃이 타닥,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반년 전.]
그녀가 대답했다.
[그 이상은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반년이라니, 마을 사람들이 말한 그대로였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화로 위 냄비에서 올라오는 냄새에 집중했다.
생선을 우린 맑은 국물 냄새였다.
은근한 단맛이 섞인 듯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이었다.
식사는 조용히 진행되었다.
그녀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혼자 밥을 먹으며, 가끔 그녀 쪽을 힐끔거렸다.
그녀는 부엌 한쪽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세가 마치 조각처럼 미동도 없었다.
창밖으로 마당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나뭇잎들이 반짝이며 색을 바꿨다.
평화로운 풍경이었지만, 그녀의 뒷모습에서는 어딘가 낯선 파문이 느껴졌다.
마치 저 창밖의 풍경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그릇을 정리했다.
[오늘은 청소는 안 해도 됩니다. 쉬세요.]
그녀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요."
[...그럼 마당 정리라도.]
그녀는 짧게 대답하고 부엌을 나섰다.
검은 옷자락이 복도를 따라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나는 문득 그녀의 걸음걸이가 유난히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나는 마당으로 나가 낙엽을 쓸기 시작했다.
빗자루를 움직이며, 어젯밤의 기절과 오늘 아침의 배려를 곱씹었다.
(질문하지 말라면서, 왜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거지.)
빗자루 끝에 낙엽이 쓸려 모이는 소리가 사각사각 울렸다.
마당 곳곳에 쌓인 낙엽은 이미 색이 짙게 바스러져 있었다.
마당 한쪽 구석에서 낙엽을 쓸다가, 나는 낯선 물건을 발견했다.
작은 은색 브로치였다.
까마귀 모양이었다.
부리 부분이 유난히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었다.
날개 끝의 깃털 무늬까지도 세심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이건 뭐지.)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뒷면에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너무 흐릿해서 잘 읽히지 않았지만, 숫자 같은 것이 언뜻 보였다.
손끝으로 문질러 보아도 글씨는 더 이상 선명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브로치를 손에 감췄다.
돌아보니 그녀가 마당 입구에 서 있었다.
안경 너머로도 그녀가 이쪽을 똑바로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공기가 순간적으로 팽팽해졌다.
[그거...]
그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미세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어디서 찾았습니까.]
나는 손을 펴서 브로치를 보여줬다.
"여기, 낙엽 밑에서요."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검은 옷자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손을 뻗어 브로치를 받으려는 순간, 그녀의 손이 잠시 허공에서 멈췄다.
그 짧은 정지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가 브로치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소매 속으로 재빨리 집어넣었다.
그 동작이 지금까지 봐온 그녀의 모습 중 가장 다급했다.
"저건 뭡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했잖아요. 대답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마당을 가로질러 저택 안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저 사람은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다.)
반년 전 갑자기 이 마을에 나타난 이유, 검은 옷과 부리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이유, 그리고 저 까마귀 브로치까지.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브로치의 흐릿한 숫자, 그녀의 순간적인 동요, 그 모든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맞춰지지 않는 퍼즐처럼 맴돌았다.
저택 안으로 사라진 그녀의 그림자가 복도 끝에서 잠시 멈춰 섰다.
나를 돌아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고, 저택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나는 빗자루를 손에 쥔 채,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당의 나뭇잎들이 다시 바람에 흔들렸고, 그 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그녀가 사라진 복도 쪽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 전 느꼈던 그 미묘한 파문의 정체를 곱씹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이 저택에서 보내게 될 시간이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