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녀 저택의 앞치마

2화

대문 손잡이는 차가웠다. 쇠붙이 특유의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팔뚝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손을 멈춘 채 숨을 골랐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흙먼지 냄새와 마른 풀 냄새가 섞여 코끝을 스쳤다. 삼 년 만에 맡는 마을의 공기였다. (괜찮을 거야. 오해가 있는 거겠지.) 나는 그 말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풀이했다. 포로로 잡혀 있던 삼 년 동안, 나를 버티게 해준 것은 오직 그 한 문장이었다. 윤아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 지긋지긋한 수용소에서 더 일찍 마음을 놓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마당 한쪽에 놓인 낯선 장화가 자꾸 눈에 걸렸다. 크고 투박한, 남자의 것이 분명한 장화였다. 흙이 잔뜩 말라붙어 있는 걸 보면 최근에도 자주 신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장화에서 시선을 억지로 떼어냈다. (별거 아닐 거야. 이웃집 사람이 들렀다 간 걸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설명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이미 조금씩 서늘해지고 있었다.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삼 년 동안 상상해온 순간이었다. 전쟁터에서, 포로수용소의 차가운 바닥에서, 걸어서 돌아오는 그 긴 길 위에서, 나는 이 문 앞에 서는 순간을 수백 번은 그려봤을 것이다. 한참 동안 인기척이 없었다. 바람이 마당의 낙엽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관절이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텅, 하고 울렸다.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느릿느릿, 마치 오지 않아도 될 손님을 맞이하는 듯한 걸음이었다. 그 걸음의 속도만으로도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오지.) 문이 열렸다. 노윤아였다. 삼 년 전보다 조금 더 살이 오른 모습이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틀어 올렸고, 옷차림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예전에 입던 낡은 무명옷이 아니라, 옷깃에 자수가 놓인 고운 천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잠시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 표정은 반가움이 아니었다. 놀람과 당혹,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냉정함이었다.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가, 곧 무언가를 억누르듯 가라앉았다. "...하준씨."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마치 이웃이 실수로 찾아온 것을 대하듯 했다. 내 이름 뒤에 붙은 '씨'라는 말이 유리 조각처럼 귓속을 긁고 지나갔다. "윤아야, 나 왔어." 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이 얼마나 어색하게 보일지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녀는 대답 대신 문틈을 조금 더 좁혔다. 몸으로 문을 가로막듯이. 그 작은 몸짓 하나가 문 하나보다 더 두꺼운 벽처럼 느껴졌다. "무슨 일로 왔어요." 존댓말이었다. 삼 년 전에는 서로 편하게 말을 놓던 우리였는데, 지금 그녀의 입에서 나온 존댓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하는 인사처럼 들렸다. (왜 존댓말을...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남이 됐지.)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 오늘 마을에 돌아왔거든."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애썼다. 목이 말라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렇군요." 그녀는 시선을 피했다. 마당 쪽을 한 번 흘깃 보고는 다시 나를 봤다. 그 짧은 시선이 향한 방향이 정확히 그 낯선 장화가 놓인 자리였다. (저 장화. 저게 누구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목구멍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았다. 질문을 던지면 돌아올 대답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 손도 좀 씻고 싶은데." 오랜 시간 걸어온 손은 흙과 먼지로 더러워져 있었다. 손톱 밑에는 검은 흙이 그대로 박혀 있었고, 손등에는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도 몇 개 있었다. 간단한 부탁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물 한 바가지, 잠깐의 자리.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짧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귀를 의심했다. 윤아가,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는 걸 처음 들었다. "그냥... 손만 씻으면 되는데." "안 된다고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 냉기는 처음의 당혹감과는 다른, 무언가를 지키려는 사람의 단단함이었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마당 안쪽, 부엌 문이 살짝 열리며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체구가 크고 건장한 남자였다. 어깨가 넓고, 팔뚝에는 오랜 노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뚜렷했다. 그가 우리 쪽을 보며 낮게 물었다. "누구야?" 낮고 무거운 음성이었다. 그 한마디에 마당의 공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노윤아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손님이 잘못 찾아왔어요." 손님. 그녀는 나를 손님이라 불렀다. 삼 년 동안 약속을 붙잡고 버텨온 나를, 그녀는 이제 낯선 손님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심장이 조금씩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쿵.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무겁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게 뭐지. 이게 정말...) 나는 그 순간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 삼 년 동안 밤마다 그려온 재회의 장면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내가 그려온 그 어떤 장면과도 닮지 않았다. "윤아야." 나는 목소리를 낮춰 그녀를 불렀다. "저 사람은 누구야?"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낮게,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제 남편이에요." 남편. 그 단어가 귓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며 울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 안쪽이 바짝 말라서 아무 소리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남편이라니. 언제부터.) "...언제." 겨우 그 한 마디를 내뱉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작년 겨울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차분해져 있었다. 마치 준비해둔 대답을 읊는 것처럼. "당신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어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그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씹었다. 삼 년 동안 나는 그 약속 하나로 버텼는데, 그녀는 그 시간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수용소의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오늘 이 순간을 상상하며 밤을 견뎌왔던 그 모든 시간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것 같았다. "미안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조금씩 닫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가주세요." "손이라도..." "안 돼요." 나는 그 순간에도 손을 씻고 싶다는 그 사소한 부탁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손이 아니라, 이 관계의 마지막 끈 하나를 놓지 못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이 완전히 닫혔다. 철컥. 자물쇠 걸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마당의 정적 속에서 크게 울렸다. 나는 그 닫힌 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문에 새겨진 나뭇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나뭇결 하나하나가 마치 나에게 아무 말도 해줄 것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마당 안쪽에서 두 사람의 나지막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가, 곧 조용해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남자의 낮은 음성과 윤아의 짧은 대답이 몇 차례 오가는 것만 느껴졌다. 그러다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해는 이제 거의 다 저물어 있었다. 하늘은 검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붕 위로 넘어가는 마지막 햇살이 골목 담벼락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그 그림자가 마치 내가 지나온 삼 년의 시간처럼 길고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문에서 몸을 돌려 골목을 걸어 나갔다. 손끝이 더러운 채로,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채로. 발끝에 걸리는 자갈 하나조차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어디로 가야 하지.) 갈 곳이 없었다. 마을에 돌아왔지만, 이제 나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삼 년을 버텨온 곳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발밑의 땅이 통째로 꺼져버린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둠이 서서히 골목을 덮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창문에 하나둘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불빛들은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온기였다. 그 온기가 지금 내게는 닿을 수 없는 것들처럼 느껴졌다. 나는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노윤아의 집이 점점 멀어졌다.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억지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시는 저 문을 두드릴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오늘 밤 잠잘 곳이 없다는 현실이 무겁게 어깨를 눌렀다. 차가운 밤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이제 어디로 걸음을 옮겨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채로 계속 걸었다. 골목 끝, 어둠이 짙게 깔린 그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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