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교 3등, 아이돌 과외

5화

그날 이후로 유리아의 과외는 일주일에 세 번, 화요일과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으로 정해졌다. 처음엔 학교 끝나고 곧장 그 집으로 달려가야 하는 그 시간표가 못마땅하고 부담스러웠는데, 그건 순전히 유리아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조금씩 견딜 만해졌다. 그녀는 매번 예습을 철저히 해왔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었으며, 심지어 내가 준 숙제를 밤늦게까지 붙잡고 있었는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얼굴로 나타나는 날도 있었다. "이 부분 다시 설명해줄 수 있어?" "아까 말했잖아." "그래도 모르겠어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볼펜 끝으로 문제집을 툭툭 두드리다가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 설명했지만, 사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조금 놀랍기도 했다. 화면 속에서 반짝거리며 손 흔들던 화려한 아이돌과, 지금 눈앞에서 펜을 쥐고 낑낑대며 미간을 좁히는 이 여자애는 도저히 같은 사람 같지 않았다. "근데 너 진짜 신기해." 어느 날 수업 중간에 유리아가 펜을 내려놓고 턱을 괸 채로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뭐가." "다른 사람들은 다 나한테 조심스럽게 말하는데, 넌 그냥 다 있는 그대로 말하잖아. 틀렸다고 하면 틀렸다고, 못한다고 하면 못한다고." "그게 뭐 이상해? 틀린 건 틀린 거니까." "그래서 좋아."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마치 오늘 날씨가 좋다는 말을 하듯 툭 던진 그 말에 나는 순간 펜을 놓칠 뻔했다. 손끝이 살짝 저릿했다. 뭐야, 갑자기. 나는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문제집으로 돌렸다. 심장이 괜히 한 번 쿵 하고 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순전히 착각일 거라고 스스로 다잡았다. "딴생각 말고 문제 풀어." "응." 그녀가 순순히 대답하며 다시 펜을 쥐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손이 슬쩍 내 손 위로 닿았다. 손등에 닿은 온기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워서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뺐다. "뭐 하는 거야." "……어? 아, 미안. 그냥 펜 좀 빌리려고." 그녀가 서둘러 둘러댔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게, 마치 들킨 걸 감추려는 아이 같았다.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무시하며 펜을 건넸다. 그날 이후로 유리아는 은근히 스킨십을 시도하는 일이 잦아졌다. 문제를 풀다가 팔을 슬쩍 붙잡거나, 어깨를 부딪치듯 가까이 다가오거나, 심지어 답을 맞춰보자며 얼굴을 바짝 들이대는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옅은 샴푸 냄새가 훅 끼쳐왔고, 나는 매번 단호하게 그 손길을 피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거리 좀 지켜." "왜? 나 안 무서운데."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이상해서 그래." "뭐가 이상해." "그냥 다." 그녀는 매번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음 수업 시간이 되면 언제 서운했냐는 듯 다시 슬쩍 다가오곤 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이해가 안 됐다. 왜 자꾸 이렇게 가까워지려 하는지. 설마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럴 리 없다고 곧바로 지워버렸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그녀가 나를 배웅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도현, 라인 있어?" "있는데." "교환하면 안 돼? 수업 일정 조율할 때 편할 것 같아서." 그 말이 그럴듯한 이유긴 했다. 매번 매니저를 통해서 시간을 조율하는 것도 번거로울 테고, 문자로 몇 마디 하는 게 뭐 대단한 일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휴대폰을 꺼내 아이디를 알려줬다. 그녀가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아이디를 검색해 추가하는 모습이 어딘가 신나 보였다. 손가락이 액정 위를 몇 번이나 빠르게 두드리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화면을 내게 들이밀었다. "됐다. 이제 연락할 수 있어."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흔들었다. 그 웃음이 유난히 눈부셔서, 나는 그 웃음을 보며 왜인지 가슴이 살짝 뛰는 걸 느꼈다. 아니, 이게 무슨 반응이야. 나는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가방을 챙겼다. "그럼 다음 수업 때 봐." "응! 조심히 가." 그녀가 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는 휴대폰을 꺼내 방금 추가된 그녀의 아이디를 다시 확인했다. 프로필 사진은 화면 속에서 보던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안경을 쓰고 소파에서 편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무대 위에서 카메라를 향해 짓는 웃음과는 전혀 다른, 어딘가 허술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문득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 애가 나한테만 보여주는 얼굴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내가 뭐라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창가 자리에 앉아서도 나는 몇 번이나 휴대폰 화면을 켰다가 껐다. 집에 돌아온 나는 씻는 것도 미루고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녀의 프로필을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봤다. 사진 속 그녀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 카메라를 향해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는데, 그 사소한 동작 하나가 왜 이렇게 눈에 밟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휴대폰이 진동했다. 유리아였다. [오늘 고마웠어. 다음엔 더 잘할게!] 짧은 메시지였는데, 나는 그걸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별거 아닌 문장인데도 자꾸만 눈에 걸려서, 나는 화면을 켰다 끄는 걸 반복하다가 답장을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했다. 너무 길게 쓰면 이상해 보일 것 같고, 아예 안 보내면 또 무시하는 것 같을 것 같았다. 결국 짧게 [ㅇㅇ]이라고만 보냈다. 그런데 곧바로 답장이 왔다. [너무 무뚝뚝해ㅋㅋ] 나는 그 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화면 너머로 그녀가 웃는 얼굴이 그려지는 것 같아서, 나는 애써 그 상상을 지우려 휴대폰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 휴대폰이 또 진동했다. 딸랑. 알림음이 울렸다. 이번엔 다른 번호였다. 모르는 번호였는데, 발신자 표시에 이상한 기호가 떠 있었다. 국가번호도 아니고, 그냥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나열된 낯선 표시였다. [유리아 학생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누구지, 이 번호는.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메시지를 눌러봤지만, 더 이상 아무런 내용도 뜨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 문장 하나만 보내려고 연락한 것처럼, 화면은 그 짧은 한 줄만 남긴 채 조용했다. 나는 답장을 보내야 할지 말지 고민하며 손가락을 화면 위에 얹었다가, 다시 뗐다. 뭐라고 물어봐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누구세요, 라고 보내야 하나. 아니면 무슨 일이시죠, 라고 보내야 하나.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못한 채 휴대폰을 손에 쥔 채 한참을 멀뚱히 앉아 있었다. 방 안의 시계 초침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뭔가 잘못된 곳에 발을 들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켰다가, 그 짧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읽을 때마다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서늘함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누구세요. 나는 결국 그 세 글자를 눌러 전송했다. 그리고 답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도록, 그 번호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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