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교 3등, 아이돌 과외

2화

알람이 울렸을 때, 나는 분명 그 소리를 들었다. 문제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거였다. 이불 속에서 두어 번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눈을 감았고, 결국 두 번째 알람이 울릴 때쯔에야 겨우 눈을 떴다. 부스스한 머리로 세수도 제대로 못 하고 뛰쳐나온 탓에, 나는 평소보다 십 분이나 늦게 교실 문을 열게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교실이 조용했다. 어제보다도, 아니 평소보다도 훨씬 더. 그런데 그 조용함이 유리아가 없어서 생긴 게 아니라 유리아가 있어서 생긴 조용함이라는 걸, 나는 자리를 찾아 걸어가는 짧은 순간에 깨달았다. 그녀는 창가 자리에 앉아 턱을 살짝 괴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어제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안경이었다. 테가 얇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화면에서, 광고판에서,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서 봤던 그 화려하고 완벽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유난히 순해 보여서, 나는 걸음을 멈춘 채 잠깐 그 얼굴을 바라보고 말았다. 정말 저게 그 유리아인가. "안경 썼네."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갔다. 유리아가 화들짝 놀란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안경알 너머로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게 보였다. "눈이…… 좀 안 좋아서." "잘 어울리는데."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냥 그랬는데,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는 걸 보고 나는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귀 끝까지 발갛게 물드는 걸 보면서, 뭐야 저 반응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서둘러 시선을 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이상한 말을 한 것처럼 느껴져서 뒷목이 슬그머니 뜨거워졌다. 수업이 시작되고, 나는 필기를 하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유리아의 노트를 슬쩍 봤다. 필기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페이지 맨 위에 날짜만 적혀 있고, 그 아래로는 몇 글자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함수 그래프와 수식을 빽빽하게 채워 넣는 동안, 유리아는 펜을 쥔 채 그저 멀거니 칠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마치 낯선 외국어를 읽으려 애쓰는 사람의 눈빛 같았다. 가끔 펜을 움직이려다 멈추고, 다시 칠판을 보고, 다시 멈추고. 나는 괜히 신경이 쓰여서 몇 번이나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가 황급히 거둬들이곤 했다. 쉬는 시간,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복도로 나서는데 담임과 처음 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는데, 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는 걸로 봐서는 유리아의 매니저 같았다. "부모님 쪽 사정이 있어서 급하게 상경한 거라, 학교 측에서도 배려를……"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성적이 이대로면 특기자 전형이라도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어서요." 나는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옮겨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방금 들은 몇 마디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갑작스러운 가정사. 급한 상경.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검은 세단 창문 너머로 봤던 그 축 늘어진 어깨가 다시 떠올랐다. 손을 씻으면서도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자꾸 그 장면만 떠올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 체육 시간이었다. 반 애들이 운동장에 나가 축구 편을 짜는 사이, 나는 벤치에 앉아 물병 뚜껑을 돌려 열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유리아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오긴 했지만, 애들 무리에서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 혼자 서 있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공을 패스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와 같은 팀이 되려 하지 않았다. 다들 어렵고 조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힐끔거리기만 할 뿐,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거나 같이 뛰자고 손을 내미는 애는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국민 아이돌이면, 다들 서로 챙겨주고 특별하게 대해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다들 그녀를 어려워했고, 거리를 두려 했고, 결국 유리아는 반 안에서 완벽하게 혼자였다. 공을 쫓아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녀만 우두커니 서 있는 뒷모습이, 이상하게도 눈에 오래 남았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 계단을 오르던 유리아가 발을 헛디뎌 앞으로 휘청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손끝에 닿은 체온이 이상하게 따뜻해서, 나는 잡았던 손을 서둘러 뗐다. "조심해." "……고마워." 그녀가 작게 대답했다. 말끝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별말 없이 다시 계단을 올랐는데, 등 뒤에서 유리아가 뭔가를 말하려다 도로 삼키는 기색이 느껴졌다.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나는 가방을 던져놓고 침대에 누워 하루를 곱씹었다. 안경 쓴 얼굴, 텅 빈 노트, 혼자 서 있던 뒷모습, 손끝에 닿았던 온도. 왜 자꾸 그 애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 없다고,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스스로 몇 번이나 되뇌었으면서, 어째서 하루 종일 그 애의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밟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밥 먹어."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부르는 소리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식탁에는 된장국과 반찬 몇 가지가 단출하게 놓여 있었다. 아빠는 야근이라 늦게 온다고 했고, 엄마는 마트 계산원 일을 마치고 온 지 얼마 안 됐는지 여전히 조끼 유니폼 차림으로 국을 뜨고 있었다. "학교에서 그 아이돌이랑 같은 반 됐다며?" "어떻게 알았어." "뉴스에 다 났어, 이 동네 학교라고. 기자들이 학교 앞에서 사진도 찍어 갔다더라." 엄마가 웃으며 숟가락을 건넸다. 나는 대충 그렇다고만 대답하고 밥을 떠먹었다. 뉴스에까지 났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유리아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니고 사는지, 그 무게가 얼마나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지, 나는 국그릇을 비우는 동안에도 자꾸만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나는 자꾸만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운동장 한쪽에 혼자 서 있던 그 좁은 어깨. 그 어깨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서, 나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도 한참을 뒤척여야 했다. 그리고 잠이 완전히 들기 직전, 문득 이상한 예감이 스쳤다. 이 반에서, 이 학교에서, 어쩌면 나만 저 애를 다르게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다음 날 아침, 나는 그 예감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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