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교 3등, 아이돌 과외

4화

딸랑. 카페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매니저가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어색하게 그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이런 데는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였는데, 평소에는 눈길도 안 주던 곳이었다. 커피 한 잔에 오천 원이 넘는 걸 보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매니저는 창가 쪽 자리로 나를 안내하며 정중하게 의자를 빼주었다. 그 손짓이 어딘가 익숙해서, 이런 대접을 자주 받아본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름은 박세연이라고 해요. 유리아 매니저 맡고 있어요." 명함을 내미는 그녀는 서른 초반쯤으로 보였는데, 눈 밑이 거뭇하게 그늘져 있었다. 며칠 밤을 못 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종업원을 불러 커피 두 잔을 시키고는, 테이블 위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잠시 숨을 골랐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아니, 아직 뭐 하는지도 모르는데요." 내가 대꾸하자 그녀가 옅게 웃으며 커피가 나오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커피 두 잔을 내려놓고 갔다. 나는 그 앞에서도 손을 대지 않았다. 뭔가 큰일에 발을 들이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유리아 사정이 좀 복잡해요. 집안 문제로 급하게 상경한 거라, 지금 소속사에서도 여러모로 신경 쓰고 있는데……. 학업 쪽은 저희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박세연은 손가락으로 커피잔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학교에서 보니까 성적이 좋으시더라고요. 담임 선생님도 추천해주셨고." "저는 못해요. 저도 제 공부해야 하고, 이런 건 부담스러워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사실 처음 매니저가 학교로 찾아왔을 때부터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연예인이랑 얽히는 일은 나 같은 평범한 애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보상은 확실히 해드릴게요. 시급도 원하는 대로 맞춰드릴 수 있고." 그 말에 나는 잠깐 흔들렸다. 우리 집 형편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돈 얘기가 나오자 마음 한구석이 흔들리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엄마가 병원비 걱정하며 한숨 쉬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돈 때문에 하는 건 좀 별로예요." "그러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는 셈으로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리아가 지금 진짜 힘들어해요." 박세연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이렇게까지 부탁드리는 게 좀 그렇긴 한데요. 리아가 지금 학교도 겨우 다니는 상황이라. 성적 떨어지면 계약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나는 잠시 말이 없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볼게요. 근데 진짜 안 되면 그만둘 거예요." "고마워요, 정말." 박세연이 그제야 안심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니 이 사람도 나름대로 짊어진 게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날 저녁, 나는 처음으로 유리아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매니저가 마련해준 오피스텔이었는데, 넓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공간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낯선 향이 코끝을 스쳤는데, 겨울바람처럼 시리면서도 묵직한 향수 냄새였다. 신발장에는 신발이 몇 개 안 되게 놓여 있었고, 거실엔 소파와 TV 말고는 별다른 가구도 없었다. 유리아는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학교에서와는 다르게 편한 옷차림에 안경을 쓴 모습이었다. 헐렁한 회색 후드에 검은 뿔테 안경을 낀 그녀는, 무대 위에서 보던 화려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와줘서 고마워."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별말 없이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일단 어디까지 아는지 봐야 될 것 같은데." 나는 간단한 수학 문제 몇 개를 풀어보라고 시켰다. 유리아는 펜을 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손가락으로 펜 끝을 톡톡 두드리며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몇 번이나 지우개로 종이를 지웠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반도 채우지 못한 답안을 내밀었다. 나는 그 답안을 훑어보다가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거 완전 틀렸는데." "……어." "기본 개념도 모르잖아. 이 정도면 중학교 수학부터 다시 봐야 해." 내 말에 유리아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도 굳이 말을 부드럽게 바꾸지 않았다. 원래 이런 식이었으니까. 상대가 누구든 틀린 건 틀린 거였다. "바보같이 이 부분에서 왜 틀렸어. 이건 그냥 공식만 알면 되는 건데." 순간 유리아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이 좀 당황스러워서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뭐, 화났어?" "……아니."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엔 화난 기색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신기해하는 듯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문제집을 펼쳤다. "이거부터 다시 풀어봐. 개념 설명해줄게." 나는 차근차근 기본 개념부터 설명했다. 볼펜으로 종이 위에 도형을 그려가며, 공식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하나씩 짚어주었다. 유리아는 뜻밖에도 놀라울 정도로 집중해서 들었는데, 이해가 안 되면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이건 왜 이렇게 되는 거야? 여기서 갑자기 숫자가 바뀌는 게 이해가 안 돼." "여기 봐. 이 부분에서 값을 대입하니까 그런 거지." 나는 다시 처음부터 짚어가며 설명했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평소 수업 시간에 창밖만 보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서, 나는 조금 놀랐다. 반에서 늘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던 애가, 지금은 눈을 반짝이며 펜을 놀리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스스로 문제를 하나 풀어냈다. 마지막 숫자를 적어놓고는 펜을 내려놓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답을 확인한 나는 무심코 말했다. "오, 맞았네. 생각보다 빨리 이해하네." "진짜?" 그녀의 얼굴이 순간 환하게 밝아졌다. 그 표정이 너무 순수해서,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TV에서 보던 화려한 미소와는 전혀 다른, 뭔가 진짜 같은 웃음이었다. 안경 너머로 눈이 반달처럼 접히는 게, 순간 심장이 이상하게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잘했다고 칭찬한 거 아니야, 그냥 사실 말한 거야." 내가 서둘러 덧붙이자 그녀가 작게 웃었다. "그래도 좋아. 아무도 나한테 이렇게 솔직하게 말 안 해줘서." 그 말에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그녀를 어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하는데, 정작 그녀는 그 조심스러움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매니저도, 소속사 사람들도 다들 리아, 리아 하면서 떠받드는데, 정작 이 여자애는 누구한테 제대로 혼나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애들이 말 안 걸어?" 내가 무심코 물었더니,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다들 어색해하는 것 같아서. 나도 뭐라고 말 걸어야 할지 모르겠고." 그 말이 어딘가 쓸쓸하게 들려서, 나는 괜히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시계를 보니 벌써 두 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다음엔 이 부분 예습해와." "응, 고마워." 그녀가 문 앞까지 나를 배웅했다. 슬리퍼를 신은 채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오는 모습이 학교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녀가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손끝이 닿은 자리가 화끈거렸다. "저기, 다음에도 와줄 거지?" 그 손길이 닿은 순간 나는 흠칫 놀라 팔을 뺐다. "어, 갑자기 왜 그래." "……미안. 그냥 확인하고 싶어서." 그녀가 손을 거두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조금 전 문제를 맞혔을 때의 웃음과는 다르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왜인지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걸 느끼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손끝이 잡혔던 자리가 이상하게 뜨거웠다. 나는 그게 뭔지 몰라서, 그냥 빨리 걸었다. 오피스텔 건물을 나서자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는데도, 이상하게 팔목의 온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는 그 감각이 낯설고 불편해서, 애써 다른 생각을 하며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녀의 마지막 표정이 눈앞에 떠올랐다. 뭔가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듯한, 그런 얼굴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문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오늘 있었던 일이 전부 꿈처럼 느껴졌다. 유리아의 방, 그 낯선 향, 처음 보는 표정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그 손끝의 온기까지. 앞으로도 계속 저 집에 드나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조금 무겁게 다가왔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