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딸랑,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습관처럼 고개를 들었다. 3월 둘째 주, 아직 새 학기의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교실 안으로 담임이 들어오는 건 당연했지만,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키가 작고 얼굴이 손바닥만 한 여자애 하나가 담임의 등 뒤에서 반쯤 숨은 채 걸어 들어왔는데, 순간 교실 안의 공기가 통째로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누구야, 저거.
뒷자리 어딘가에서 누군가 낮게 속삭였고,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여기저기서 휴대폰을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딸깍딸깍, 카메라 셔터음을 죽이려는 헛된 노력들이 교실 곳곳에서 터졌다. 어떤 애는 아예 책상 밑으로 손을 넣어 촬영을 시도했고, 또 어떤 애는 짝꿍의 팔을 붙잡고 소리 없이 입만 벙긋거리며 뭔가를 전달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칠판 쪽을 다시 보려다가, 담임이 그 여자애를 향해 손짓하며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서야 눈을 떼지 못했다.
"유리아입니다. 다들 알겠지만."
담임의 목소리엔 은근한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마치 자기 반에 그런 아이가 배정된 게 자기 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깨가 살짝 펴져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국민 아이돌 유리아. TV를 잘 안 보는 나조차도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드라마에서, 광고에서, 심지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까지 저 얼굴을 안 본 날이 없었으니까. 편의점 냉장고 음료수 라벨에도,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도 저 얼굴이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내 교실 문턱을 넘어 걸어오고 있다는 게,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교실 안이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여자애들은 서로 팔을 붙잡고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고, 남자애들은 애써 무심한 척하면서도 눈동자만은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옆 반에 문자를 보내는지 휴대폰 화면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빠르게 자판을 두드렸고, 창가 쪽 애들은 아예 몸을 반쯤 일으켜 유리아를 향해 목을 길게 뺐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멀거니 지켜보다가,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유리아가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교실 전체를 훑던 그녀의 눈이 잠깐 멈춘 곳이 나였다. 짙은 쌍꺼풀 아래 눈동자가 이쪽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 눈빛에는 흥미도 경계도 아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묘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나는 별다른 반응 없이 시선을 마주쳤다가 곧 창밖으로 눈을 돌렸는데, 그 순간 옆자리 애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쟤 너 봤어."
"그런가 보지."
"너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가 보지가 나와?"
"안 나오면 어떡해."
나는 대충 대답하고 말았다. 그게 뭐 대수라고. 아이돌이든 뭐든 나랑은 상관없는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담임은 자리를 지정해주려는 듯 좌석표를 뒤적이며 손가락으로 짚어가다가, 하필이면 내 옆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유리아, 저기 이도현 옆에 앉아라."
순간 교실 전체에서 낮은 탄식과 함께 웅성거림이 터졌다. 여기저기서 부러움 섞인 한숨과 원망 섞인 시선이 동시에 날아왔는데, 그 온도차가 뒤통수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왜 하필 내 옆이야. 유리아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걸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그 순간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꽃도 아니고 향수도 아닌, 뭔가 청량하면서도 달큰한 냄새였다. 마치 갓 씻은 유리컵에 레몬 한 조각을 떨어뜨린 것 같은, 그런 냄새.
"안녕."
그녀가 짧게 인사를 건넸다. 목소리는 화면에서 듣던 것보다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담백했다. 나는 고개만 까딱하고 다시 앞을 봤다. 뒤에서 누군가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게 나를 향한 조롱인지 부러움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첫 시간부터 이 모양이라니.
1교시가 시작되고도 아이들의 시선은 좀처럼 앞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몇 번이나 주의를 줬지만 소용없었다. 칠판을 보라는 말이 무색하게, 삼십여 개의 눈동자가 자꾸만 내 옆자리로 미끄러졌다. 나는 곁눈질로 유리아를 살폈다. 그녀는 노트를 펼쳐놓고 뭔가를 적고 있었는데, 손끝이 유난히 하얗고 가늘어서 저러다 펜을 놓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필기하는 속도는 느렸고, 가끔 펜을 멈춘 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교실은 아예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다른 반 애들까지 복도에 몰려와 유리아를 구경했고, 몇몇은 대놓고 창문에 매달려 사진을 찍어댔다. 복도 쪽 창문에는 아예 얼굴들이 판자처럼 붙어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그중 누군가는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유리아는 그 시선들에 익숙한 듯 별다른 반응 없이 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 무표정한 얼굴 안쪽에서 뭔가 조금씩 지쳐가는 기색을 읽었다. 어깨가 미세하게 굳어 있었고, 손가락은 책상 위에서 의미 없이 펜 뚜껑을 열고 닫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기."
그녀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나는 별로 대답할 마음이 없었지만 무시하면 더 귀찮아질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왜."
"넌 신기하네."
"뭐가."
"안 쳐다봐서."
나는 잠깐 그 말을 곱씹었다. 그게 신기할 일인가. 교실 안 서른 명이 넘는 애들이 죄다 저 하나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 안에서 안 쳐다보는 게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는 게 좀 이상했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관심 없어서."
그 말에 유리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는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순간 묘하게 변하는 걸 보고 아차 싶었다. 이거 뭔가 실례였나. 화면 밖에서, 이렇게 정면으로 관심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걸까. 그녀는 잠깐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옅게 웃었는데, 그 웃음이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그러나 정정할 새도 없이 종이 울렸고, 나는 다시 앞을 보며 수업에 집중하는 척했다.
그날 하루 종일 학교 전체가 유리아 얘기로 들끓었다. 급식실에서도, 복도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온통 그 이름뿐이었다. 누구는 유리아가 데뷔 전에 다니던 학교가 어디인지 안다고 했고, 누구는 매니저가 아침마다 학교 앞까지 태워다 준다더라는 소문을 전했고, 누구는 그냥 실물이 화면보다 더 예쁘다는 감탄만 반복했다. 나는 그 소란 속에서 그저 조용히 밥을 먹고, 조용히 수업을 듣고, 조용히 집에 가고 싶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옆자리에서 나던 그 청량한 향기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급식실 식판을 앞에 놓고도, 오후 자율학습 시간에 문제집을 펼쳐놓고도, 그 냄새가 코끝에 붙어 떠나지 않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 어귀에서 나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저 멀리 검은 세단 한 대가 학교 앞 도로변에 서 있었고, 그 차 창문 너머로 유리아가 무거운 표정으로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녀를 태우려는 매니저인지 뭔지 모를 사람이 다급히 뒤따라가며 뭔가를 다급하게 말을 걸었지만, 유리아는 대답 없이 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어깨가 이상하게 축 늘어져 있었고, 걸음걸이는 아침 교실에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무거웠다.
뭐지, 저 표정은.
낮에 봤던 그 무표정과는 전혀 다른, 뭔가에 짓눌린 듯한 얼굴이었다. 차 문이 열리고, 유리아가 뒷좌석에 몸을 실을 때 잠깐 스친 옆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지만, 그 얼굴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검은 세단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뒤통수에 오래 남았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그 방향을 한 번 더 돌아봤다.